가을에는 통상 단풍 구경을 위해 산을 찾는 게 관행이었지만 올해는 바다를 택했다. 몇 년 전에 설악산 단풍을 보러 갔다가 차량들이 몰려 도로에서 많은 시간을 빼앗겼던 일, 가는 곳마다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뤄 걷기조차 힘들 있던 일, 음식점에서 줄 서서 기다렸던 일들이 악몽처럼 떠올라 복잡하지 않을 것 같은 동해와 삼척의 바닷가로 정했다. 아무래도 바닷가는 여름처럼 붐비지 않을 거란 계산에서였다.
고속도로가 정체될 것을 우려해 강릉까지 KTX를 이용하고 그곳에서 렌터카를 빌리는 등 전과는 패턴을 달리한 여행이었다.
동해와 삼척은 생각했던 것보다 길이 막히지 않아 원하는 곳을 어디든 편하게 갈 수 있었고, 주차공간도 넓게 마련되어 주차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높은 언덕에 있는 전망대에서 확 트인 하늘과 경계가 불분명한 바다를 원 없이 바라보고, 바다 위를 건너는 케이블카를 타고, 여유롭고 바닷가를 거닐고, 뷰가 정신 차릴 수 없도록 아름다운 카페에서 편안한 의자에 반은 눕다시피 하고 맛깔나는 커피와 함께 충분한 힐링의 시간을 가졌다.
금강산도 식후경 이란 말이 있듯이 여행의 즐거움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게 음식이다.
도착한 날은 바닷가에서 싱싱하고 쫀득한 회로 만족한 식사를 했고, 그다음 날이 밝자 맛있는 아침식사를 할 만한 곳을 찾았다.
숙소가 에어비앤비이기 때문에 주방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정원에 바비큐 시설까지 구비되어 있었지만, 번거롭고 시간을 많이 빼앗기는 식사 준비가 싫어 아예 음식재료를 가져오지도 않은 상태였다.
초행길 낯선 곳에서 성에 차는 음식점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인터넷을 이용해 찾거나 지역 주민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는데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다. 과장되게 포장해서 인터넷에 올리는 음식점들이 많을뿐더러 어떤 지역 주민은 자신의 친척이나 지인이 운영하는 음식점을 소개하기도 하니까.
그래도 의지할 것은 인터넷뿐이 없어 열심히 살피고 있는데 그중 한 곳이 시선을 빼앗았다. 메뉴는 한정식 한 가지인데 올린 사진을 보니 해산물이 다양하게 제공되고, 댓글을 보니 평도 괜찮았다.
기대를 가지고 그곳을 향했다.
음식점은 오래된 단층 건물이었다. 옛날 시골집처럼 정감을 주는 곳이었다.
안으로 들어섰다. 손님들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텅 비어 있었다.
할머니 두 분이 주방 쪽에서 나오며 우리를 반겼다. 한 분은 80이 넘었을 것 같고 한 분은 70대 중반으로 보였다. 두 분이 운영하는 식당 같았다.
혀의 감각이 무딜 것 같은 고령의 할머니들이 음식 맛을 제대로 낼 수 있을까 하는 의아심과, 맛집이라면 아침부터 손님이 붐벼야 하는데 한 명도 없다는 것에 실망하며 되돌아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가 물병과 물컵을 테이블에 가져다 놓고 주방으로 음식을 가지러 가셨으니 그럴 수도 없었다.
할머니가 음식을 2단으로 가득실은 밀차를 밀고와 테이블 위에 옮겨 놓았다.
할머니들은 음식 준비야 같이 하겠지만 70대 할머니는 주방 일을, 80대 할머니는 홀 서빙을 담당하시는 것 같았다.
테이블 위는 잘 구운 가자미, 잘게 썬 회, 생선조림, 간장게장, 찐 새우, 삶은 고동, 조개 넣어 끓인 미역국, 김, 멸치볶음, 해초 나물류 등이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음식은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으며 순수한 자연의 맛이었다.
아내와 딸은 맛있다며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 한두 명씩 손님이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금방 자리가 채워졌다.
홀 담당 할머니는 서빙을 하느라 주방과 홀을 분주히 들락거렸다. 자세히 보니 할머니는 걸음걸이가 정상이 아니었다. 발을 뗄 때마다 심하게 절뚝거렸다. 무릎관절이 나쁜지 심한 안짱다리였다. 그런데도 젊은이 못지않게 씩씩하고 손놀림이 빨랐다.
홀 서빙을 마친 할머니는 내실 쪽으로 들어가더니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피곤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나 보다 생각했다. 화장실을 가기 위하여 주방과 내실 사이의 통로를 걷다 보니 30여 명 수용할 수 있는 방이 보였고, 할머니는 거기에서 예약 손님이 있는지 상차림을 하고 있었다.
선물과도 같은 식사를 마치고 카운터로 가니 할머니 두 분이 온화한 얼굴로 서 계셨다. 맛있다는 말을 건네자 흡족한 미소를 지으셨다.
그동안 셀 수없이 많은 음식점을 다녀봤지만 7-80을 넘긴 할머니들이 직접 운영하는 곳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간혹 할머니가 계신 집이 있었지만, 의자에 앉아 자식이나 직원들이 일하는 것을 보고 무엇을 지시하거나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면 맛을 보며 평가하는 것만 보아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고령인 두 분이 규모가 작지 않은 식당을 운영한다는 것은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 연세면 노인정에서 푼돈 내기 고스톱이나 치시고, 바닥에 누워 두런두런 살아온 아기를 나누시고 계셔야 어울린다. 부침개에 막걸리를 한 사발 들이켜고 흥에 겨워 덩실덩실 춤이나 추며 시간을 보내실 연세다.
할머니들의 밝은 표정을 보면 생계를 위해 어쩔 수없이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오랫동안 음식점을 운영해왔으니 노후를 편안하게 보낼 돈도 충분히 비축해 두었을 터였다. 할머니들은 일이 즐거워서 하시는 것 같았다.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손님을 보는 데서 보람과 즐거움을 찾는 것 같았다.
그들의 그런 모습은 꽃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꽃을 필수 없는 고목에서 피어난 꽃과 같았다
난 오래전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정성을 가득 담아 차리신 음식을 먹은 것 같은 기분으로 음식점을 나왔다. 언젠가 다시 찾았을 때도 고목의 꽃을 볼 수 있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