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의 취미생활

by 김정준




취미생활을 그 누구보다도 활발하게 하는 친구가 있다. 한때는 옻칠공예에 빠져 차로 2시간 거리에 거주하는 명장을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가 오전부터 밤까지 도제식 교육을 받았다. 집에 작업실을 만들어 놓고 목재를 다듬고 옻칠을 해서 건조하느라 많은 시간을 정신없이 보내기도 했다.

젊어서부터 플라스틱을 자르고 가공하는 일을 해왔기 때문에, 섬세함이 생명인 옻칠공예는 그에게 안성맞춤으로 보였다.

그는 장, 반다지, 소반, 함 같은 부피가 나가는 작품은 하지 않았고, 잔, 잔 받침대, 사발, 대접, 접시 같은 작은 것들을 위주로 만들었다. 완성된 작품들은 집안 곳곳에 진열해 놓고 감상을 했고, 친구나 지인에게 예쁘게 포장해 선물을 하기도 했다. 작은 것이지만 정성과 애정이 담긴 것이어서 받는 사람들의 감동은 컸다.

나는 친구를 보며 앞으로도 계속 그 작업을 꿋꿋이 하며 살겠거니 했다. 그런데 나의 예견을 조롱이라도 하듯이 어느 순간 슬그머니 손을 놓았다.


뒤이어 시작한 것은 문인화였다. 그림 하고는 담을 쌓고 살아온 그가 어떻게 그것을 하겠다고 생각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기야 말을 안 했어도 어렸을 때의 꿈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문인화로 화단에 잘 알려진 한 중견작가의 작업실에서 기초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붓에 먹물을 묻혀서 가로 세로획을 긋고, 농담(짙고 옅음)을 표현하는 연습을 몇 주 동안이나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지루해서 두 손 들고 물러날 작업이었지만 그는 그저 신바람만 났다.

그런 과정을 거친 후, 사군자 (매난국죽) 중 난을 치기 시작했다. 한 획 한 획을 정성을 다했다. 스스로가 보아도 발전하는 모습에 힘이 솟아 더욱 열심히 매달렸다. 이어서 대나무, 국화, 매화 순으로 주제를 확대해 나갔다.

작업량이 얼마나 많은지 화선지는 하루가 다르게 수북이 쌓였다.

배우기 시작한 지 일 년쯤 되었을 때 지방 도시에서 개최한 미술작품 공모에 출품하여 입선을 했다. 다음 목표는 특선, 그리고 개인전까지 이어지는 무지갯빛 청사진을 그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문인화에 관한 말이 그의 입에서 사라졌다, 의아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작업을 접은 상태였다.


지금은 사진에 온통 마음이 빼앗겨 있다. 대학교 평생교육원 사진과에서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우고, 동호회에 가입하여 수시로 회원들과 어울려 출사를 다닌다. 일 년에 몇 차례 외국에 나가 사진을 찍기도 한다.


내가 친구의 취미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그의 끈질기지 못하고 오뉴월 식혜맛 변하듯 하는 행동을 비웃거나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평소에, 혹은 어려서부터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도전해 보고 경험을 하는 것은 용기 있는 일이고, 뜻깊은 일이며, 노후를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 일이기에 박수를 보낼 일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할 일없어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이 너무나 많다. 집안에 틀어박혀 소파에 고정된 자세로 앉아 TV채널이나 돌리고 있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배회하고, 공원 벤치에 붙박이가 되어 멍청히 허공만 주시하고 있다.

이런 무미건조한 삶은 얼마나 지루하고 건강을 해치게 만들까? 이런 생활에서 오는 고독감은 우울증을 불러오게 될 것이고, 살기싫다는 생각까지 들게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노인 빈곤율 1위, 노인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다.

가난 때문에 자살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상관관계라면 아프리카를 비롯하여 남미, 동남아시아의 많은 빈국에서 노인들 자살률이 높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노후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고, 노후에는 본인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그런 준비와 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즉, 마음이 허하고 가난하기 때문이다.


취미생활은 정신적인 안정감을 주며 활기차게 해 주고 건강한 삶을 영위하게 하는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노후에 취미생활을 활발하게 했던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무릇 진정으로 행복하고 안정된 삶을 누리려면 적어도 두세 가지의 취미를 갖고 있어야 하며, 그것도 가식이 아닌 아주 진솔한 것으로 지니고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 말했다.

그는 나이가 들어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취미생활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90세까지 장수한 것도 그 영향이 크다고 본다.


취미를 가지고 있어도 실행에 옮기지 않는 노인들이 많다. 젊었을 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일속에 파묻혀 살아오느라 취미와 담을 쌓았기 때문이다.

취미생활을 하려면 돈을 많이 지출해야 한다는 이유로 아예 거들떠보지 않는 노인들도 있다.

돈이 없어 취미생활을 못한다는 것은 옛날이야기다. 지금은 경로당, 노인복지관, 사회 복지관, 여성회관, 공공 여가 문화 교실, 노인교실에서 다양한 취미활동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음악 감상, 노래 부르기, 악기 연주, 바둑과 장기 교실, 독서와 글쓰기, 그림 그리기, 스포츠 댄스, 연극하기, 요가하기, ·명상하기, 건강 운동 등 프로그램의 종류도 다양하다


2021년에 TV에서 방영한 나빌레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우체부 생활로 정년퇴직을 한 덕출은 나이 70이 되도록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발레 연습을 하는 채록을 발견한다. 우아한 몸짓으로 나비처럼 허공을 훨훨 나는 채록의 동작에 덕출은 넋을 잃는다.

어린 시절에 그는 발레를 하는 발레리노의 모습을 보고 자신도 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가정환경이었기에 감히 이룰 수 없는 허황된 꿈이었다. 그는 그 꿈을 꼭꼭 접어 마음속 깊은 곳에 넣어두어야만 했다. 그런데 반백 년 이상이 흐른 지금, 잊고 살았던 어린 시절의 꿈이 헤집고 나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덕출은 이제라도 꿈을 펼쳐 보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느꼈다.

덕출은 매일 발레 연습장을 찾아 청소와 궂은일을 하며 채록이 발레 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틈틈이 발레 동작을 따라 하기도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덕출은 채록에게서 발레를 배울 수 있도록 지도자에게서 허락을 받는다.


덕출은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고 다리와 허리통증으로 참기 힘든 고통이 따랐지만, 어렸을 때 좌절됐던 꿈을 이제라도 펼치게 된 것이 행복하기만 했다. 발레 연습실에서 피나는 연습을 하면서도 집에서까지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드디어 발레 무용수들 앞에서 정식으로 발표회를 하는 날이 왔다. 덕출은 긴장감을 떨쳐버리고 채록에게 배운 대로 유연하고 우아한 동작으로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되어 높이높이 날았다. 어려서 그토록 원했던 꿈이 나이 70이 되어서야 이루어지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모든 취미의 시작은 꿈에서 기인된다.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다는 꿈이 없으면 취미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어 고령이라도 꿈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렸을 때 하고 싶었던 것, 그러나 여건이 맞지 않아 접어 두었던 꿈들도 있을 것이다.

이젠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펼치도록 해야 한다.

이 나이에 무슨 꿈이야? 이 나이에 무슨 취미생활?.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버려야 한다.

나이 70에 발레리노의 꿈을 이룬 덕출처럼,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취미생활을 맘껏 펼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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