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엔 무슨 재미로 살아야 할까(?)

by 김정준



나이가 들면서 친구나 지인들을 만나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재미를 찾기가 힘들다는 것일 게다.

재미란 사전적 의미로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을 말한다. 미국의 심리학자며 저술가인 어니 J. 젤린스키는 가장 재미있는 일이란 승진이나 출세에 얽매이지 않고, 보수를 받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것, 바로 노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재미있게 만들까?
사람마다 성격이나 체력, 기호, 취미가 다르기 때문에 추구하고 느끼는 재미는 각기 다를 것이다.
여행을 하며 새로운 세상을 맛보는 것을 최고의 재미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좋은 집을 사서 안팎을 가꾸고 꾸미는 일, 골프를 하면서 재미를 얻는 사람, 등산이나 캠핑, 낚시에서 재미를 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무슨 재미로 살까?

뒤돌아 보면 재미도 계속 변해왔다.

학창 시절에는 독서에 빠져 살았다. 등하굣길 복잡한 버스 안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수업시간에는 교과서로 가림막을 만들어 위장해 놓고 소설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대학 시절엔 영화, 연극에 매료되어, 개봉하거나 초연하는 날 보지 못하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좌불안석했다. 어느 땐 티켓을 사느라 수백 미터나 되는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고래 힘줄 같은 인내심을 발휘하면서도 피곤한 줄 몰랐다. 내가 젊은 시절을 보냈던 7. 80년대만 해도 연극을 보려면 극장 앞에서 줄을 섰다가 공연시간 임박하여 표를 구입해야 했다. 영화관은 지금처럼 스크린 수가 많지 않은 단독 영화관이었고, 예매도 없었기 때문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대학 졸업 후, 한때는 산에 미쳐서 산신령처럼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저 산에서 이 산으로, 산 순례자가 되었었다. 산 정상에서 느끼는 성취감과 쾌감에 중독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80년대 초에는 드라마 극본 쓰느라 끼니도 잊은 적이 허다했다. 200자 원고지를 천장에 닿게 쌓아놓기도 했었다. 그 당시에는 정전이 자주 있었는데 촛불에 머리카락을 지지직 태우면서도 원고지와 씨름을 멈추지 않았다. 그 덕분에 MBC 방송국에서 2년 연속 극본 공모에 당선되고, 가족계획 협회에서 공모한 극본에서도 당선되어 분에 넘치는 보상을 받기도 했다.

그 후로 지금까지는 걸핏하면 해외여행을 떠나 바람처럼 구름처럼 방랑자가 되었다.


지금까지는 나는 나름 재밌는 생활을 영위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 밀물처럼 쉬지 않고 다가오는 노후가 문제이다. 17세기 프랑스 고전작가인 라 로슈푸코는 어떻게 늙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고 했다. 현재를 사는 우리도 처음 경험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늙어야 하는지 당연한 모른다.

100세 시대가 펼쳐졌다고 기뻐할 일 만은 아니다.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약자가 되는 고령자들에겐 두려움이 커질 수밖에 없다. 미래에 대한 준비가 없다면 축복이 아닌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걱정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노후를 재밌게 보낼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만 한다.

노후를 재미있게 보내기 위해 컴퓨터, 제과. 제빵, 요리 등을 배우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나는 어떻게 노후를 대비해야 하나? 그동안 나를 재밌게 해 주었던 것 중에 버려야 할 것과 유지할 것을 정리해야겠다. 등산이나 해외여행은 고령이 되면 서서히 손을 놓아야 한다. 높은 산을 오르거나 장거리 해외여행은 체력이 허락하지 않아 불가능하다. 영화 감상, 독서와 글쓰기는 계속 진행할 수 있다.

영화감상은 극장을 가지 않더라도 앱을 이용하여 얼마든지 가능하다. TV에도 영화채널이 많기 때문에 작품을 선별하여 감상할 수 있다. 독서는 그전처럼 종이 책을 읽는 것은 불편하겠지만, e북으로 다운로드하여 글자를 크게 만들어 보면 지장이 없을 것 같다. 글쓰기는 소설이나 극본처럼 긴 호흡이 필요한 것은 불가능하다. 단상이나 에세이가 적합할 것 같다. 노후에 내가 가장 재밌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글쓰기가 될 것 같다. 글을 쓰는 이유는 내 삶의 흔적들을 잊지 않기 위한 기록이기도 하지만, 나라는 사람을 알리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나의 경험이나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이 읽게 하여 공감하고 소통하기 위한 목적이다.

다행히 글을 쓸 수 있는 플랫폼이 있고,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7-8년 전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간암 말기 환자 한 분이 투병생활과 일상생활에 대한 글들을 자주 SNS에 포스팅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글을 읽고 격려와 응원의 댓글을 수도 없이 달았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환자는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소통하는 사람들로 힘든 시간이 결코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노후에 나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글 쓰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겠다. 거북이기 기어가는 속도처럼 느릴지라도 열심히 연구하고 쓰다 보면 좀 향상된 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 노후엔 플랫폼을 놀이터 삼아 재미있게 놀아야 하겠다. 마음껏 글을 쓸 수 있고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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