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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준 Nov 08. 2023

별거 연습, 그리고 별거                 





어느새 가을이 익어가고 있었다나무들은 붉은 꽃들을 풍성하게 피워 놓고 자신들의 임무는 여기 까지라는 듯이 도도하게 서 있었다.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오전 10에 두 딸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기 위해 오데뜨는 어김없이 우리 집을 찾았고아내와 나는 여느 때처럼 집을 나와 동네 카페를 찾았다바람이 불었지만우리는 야외에 있는 테이블을 차지하고 마주 앉았다

얼굴에 부딪치는 서늘한 바람과 함께 따스한 커피를 마시는 것도 싫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던 아내가 의자를 앞으로 당겨 앉으며 우리의 장래를 이야기하자면서  입을 열었다아내의 이야기 요지는 이랬다

두 딸의 교육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한국에 있는 돈을 더 이상 가져다 쓰게 되면 머지않아 바닥나버리고 만다뭔가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자신은 랭귀지 스쿨에서 가장 높은 레벨까지 공부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그것을 달성하였으니 굳이 이곳에 남아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한국에 돌아가 돈을 벌겠다는 내용이었다. 

 

우리가 외국생활을 시작한 지가 어느덧 3년 반이 다가오고 있었다그동안 우리는 현지에서 수입 이라고는 동전 한 푼 없이 한국에서 꼬박꼬박 가져다 쓰는 것에 의존했다

우리나라는 1997 IMF 경제위기 사태로 기업은 연쇄적으로 도산하고직장인들은 대량 해고되었으며외환보유고는 바닥이 나면서 환율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물가가 비싸기로 악명 높은 런던과 뉴욕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과도 같았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은 국제 통화 기금의 모든 차관을 상환하였고, IMF위기에서 벗어났다고 공식 발표하였지만그 후로 2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환율을 높게 유지되고 있었다

외국에 자녀를 유학 보낸 많은 부모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견디지 못해 끝내는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불러들이고 일이 비일비재했다

 

우리의 원래 계획은 내가 석사코스를 마칠 때까지 외국생활을 하다가 공부를 마치면 가족 모두가 함께 귀국하는 것이었다그러나 두 딸이 외국에서 적응을 잘하고 있고 학교생활을 만족하고 있는데그 길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솔직히 사교육과 학교폭력이 없는 이곳에서 계속 공부하는 게 옳은 것 같았다.   

영국(런던)에서는 사교육은 먼 나라 이야기였고학생들 간에 폭력왕따인종차별 행위는 없었다모든 학생들이 매우 심각한 범죄로 인식하기 때문이었다만에 하나 이런 행위가 발생하면 학교에서는 가해자에게 강제 전학 또는 퇴학처분 등 무거운 징계가 내려졌다.

  

아내는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보내고 한국으로 떠나기 위해서 12 28일 런던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예약했다그때까지 채 두 달도 남아있지 않았다

11월 초 첫째 일요일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아내는 두 딸 앞에서 앞날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두 딸은 예기치 않았던 말에 말문이 막혀버린 듯 입을 꼭 닫고 있었다. 눈에 눈물만 그렁그렁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두 딸은 아내와 잠시도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두 딸에게 오랫동안 별거한다는 것은 순탄하게 걷던 길에 갑자기 절벽이 나타난 것만큼이나 난감한 일일 것이다

 

아내가 한국으로 떠날 날이 확정된 후로 우리는 주말을 더욱 소중하게 보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오데뜨와 두 딸의 프랑스어 과외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을 가족이 함께했다

주로 런던의 중심가를 향하던 발길을 돌려 런던의 외곽에 위치한 한적한 리치먼드 파크를 찾아 산책하기도 했다

광활한 파크에 끝없이 늘어선 고목들은 한결같이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공원의 중앙에 자리 잡은 크고 작은 호수에는 우아함을 뽐내는 백조와 오리들이 잔물결을 가르고 있었고너른 풀밭에서는 무리를 지어 사슴들이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길 잃은 짐승처럼 정신없이 헤매다가 오아시스 같은 카페에 찾아들었다. 

오래전 영국 수상의 저택이었던 하얀 건물인데 언젠가부터 카페로 운영하는 곳이었다.  

카페는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 잡고 있어 창밖을 바라보면 나무숲과 잔디밭이 끝 간데없이 눈아래로 펼쳐져 있고머리를 들지 않아도 바다처럼 너른 하늘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잉글리쉬 애프터 눈 티와 스콘을 먹으며 피로를 녹여냈다.

킹스턴의 템스강 가에는 뷰가 좋은 레스토랑들이 즐비했다그중에는 HAHA(하하)라는 재밌는 상호의 펍(Pub)을 겸한 레스토랑이 있었다. 가족 중 생일이나 축하할 일이 있을 때, 하하 웃으며 기분 좋게 식사하던 곳이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그전처럼 밝은 시간을 되찾으려 다시 방문하기도 했다.

 

12월이 다가오면서 런던의 거리는 크리스마스 장식물들로 뒤덮였다밤이면 아름다운 꽃을 피워 낮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코벤트 가든, 피카딜리 서커스, 옥스퍼드 스트리트는 천국처럼 황홀했다.

트래펄가 광장에는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져 특별함이 더해졌다.

우리는 밤이 깊도록 거리를 정신없이 헤맸다집에 들어가면 다가올 별거를 생각하느라 우울한 시간을 보낼 것이 두려워 늦게까지 머물렀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자신이 영국을 떠난 후 가사와 음식 때문에 무척 염려하고 있었다살림과 음식에 젬병인 내가 걱정이 되어서였다. 

솔직히 나는 그동안 주방과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결혼 전에는 어머니와 형수가 주방 출입하는 것을 채신없다고 허용하지 않았고결혼 후에는 장모님이 교직생활을 하는 아내를 위하여 살림을 해 주셨는데남자가 좀스러워진다고 주방에서 물 한번 묻히게 하신 적이 없으셨다

외국에 나와 생활하는 동안 아내의 일손을 덜어주기 위해 간혹 설거지를 하고음식 재료 손질을 돕기는 했지만음식은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아내는 안면이 있는 교민 중 한 아줌마에게 부탁하여 일주일에 2 – 3회 우리 집에 와서 가사와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겠다고 했다

아내의 말 대로 하면 모든 일이 쉽게 해결되겠지만인건비가 비싼 런던에서 그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하여 한국에 가는 아내를 생각할 때 한 푼이라도 허투루 쓸 수가 없었다.

나는 내 힘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그 후로 아내는 밥 짓는 것국 끓이는 것찌개 만드는 것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그 밖에도 아내는 두 딸과 내가 학교에 간 사이에는 뉴 몰든에 있는 한인마켓인 송가네나 고바우에서 김장재료를 사들여 며칠 동안  배추김치와 깍두기를 담갔으며총각김치까지 했다

마른반찬도 이것저것 만들었고런던을 떠나기 임박해서는 국과 찌개를 한 솥 씩 끓여 놓았다.

냉장고 안은 아내가 준비해 놓은 음식물로 가득 채워져서 바늘 하나 집어넣을 틈이 없을 정도였다

 

12 28일이 되었다아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비행기는 오후 8시에 출발하기 때문에 공항에 여유 있게 3시간 전에 도착하려면 집에서 4시에는 떠나야 했다그날은 토요일이어서 두 딸이 오데뜨와 함께하는 프랑스어 과외가 오전을 채우고 있었다

과외가 끝나자 아내는 점심 준비를 해서 식탁에 둘러앉았지만그 누구도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밥이 아니라 모래를 목에 넘기는 것만큼이나 힘들었다

 

예약한 시간에 맞춰 교민이 운영하는 미니 캡(영국의 택시는 블랙 캡이라 함) 집 앞에 도착했다아내가 꾸린 짐은 본인의 의류와공부하던 책뿐이어서 여행가방 두 개로 단출했다.  

아내는 공항까지 따라가겠다는 두 딸을 다독이며 한참 동안 포옹해 주고는 집을 나섰다두 딸이 현관문을 나서지도 못하게 했다

미니 캡에 오르자 차는 히드로 공항을 향해 출발했고아내는 두 딸 앞에서 보이지 않던 눈물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두 딸 앞에서는 태연한 것처럼 행동하며 눈물을 보이지 않았을 뿐 아내는 한국행을 결심한 후로는 줄곧 눈물과 함께 생활을 했다밤에 자다 가도 일어나서 눈물을 훔쳐내며 밤을 밝히기도 했었다

 

공항에 도착하여 항공사 카운터에서 짐을 부치고 좌석 티켓을 받았다우리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국장을 향했다마치 발에 무거운 추라도 달아 놓은 것 같았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표정이 밝았고대화와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우리만 세상의 슬픔을 다 끌어안은 것 같았다.

아내와 나는 실어증 환자처럼 출국장 앞에서도 두 손을 꼭 잡고 있을 뿐 입을 닫은 채였다서로가 마음에 담고 있는 말을 알고 있기에 대화가 필요 없었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출국장 안으로 걸어가면서 뒤돌아보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고나는 그때마다 머리만 가볍게 끄덕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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