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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미 Dec 28. 2023

런던 살인 사건 9 (폭풍전야)

블루베리와 만나기로 한 약속을 잡은 것이 오후 세시였다. 당장 그들은 계속 붙어있을 필요도 없었고 오전부터 시작된 추적이 그들을 기진맥진하게 한 관계로 조금 쉬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 세 사람은 타워브리지 남단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경태는 민희의 이모를 픽업하러 히드로 공항으로 갔고 김성현 영사는 저녁을 먹으려 집에 갔다. 영욱은 근처 카페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며 책을 읽었다. 영욱은 습관처럼 자전거에 빈 시간에 읽을 책 한 권씩은 늘 챙겨다니곤 했다.



“유라씨… 여동생… 스토커… 뭔가가 있는데……. 그게 뭘까?”



어려운 수학 문제를 접할 때 느껴지는 금새 풀릴 듯 말 듯 한 긴장감에 책을 읽으면서도 집중이 잘 안 되었다. 영욱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혹시……. 혹시 그거라면?”



영욱은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떨리는 손으로 테이블 위에 있던 쿠키를 냅킨에 싸서 주머니에 넣었다.



#



런던 타워브리지 남단에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영욱이었다. 약속 시간이 지난 조금 뒤 슬프고 기진맥진해 보이는 초로(初老)의 여성과 경태가 그곳에 함께 도착했다.



“민희 씨 이모님이십니다. 이 분은 통역과 조언을 해주시는 영욱 홈즈 군입니다. 캠브리지 의대에 다니고요.”



“아. 네. 감사합니다. 저는 최서원이라고 합니다. 민희의 이모이고요.”



영욱은 눈을 들어 최서원을 살펴보았다. 최서원에게는 나이에 걸맞는 고상함이 살아있었다. 민희의 미모가 타고난 것이라는 느낌이 왔다. 조금 뒤 김영사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아침부터 일을 너무 많이 했더니 피곤해서 그만 잠깐 잠이 들었지 뭔가? 그런데 아직 민희의 여동생이라는 블루베리는 아직 만나지 못했나? 블루베리인지 스트로베리인지 진짜인지 사기꾼인지 밝혀내야지.”



김영사는 아직 잠이 덜 깬 것 같았다. 김영사의 얼굴에는 뒷머리는 눌려 있었고 턱에는 침 흘린 자국이 있었다. 영욱은 조용히 티슈와 거울을 챙겨주었다. 김영사는 거울을 보고 외모를 가다듬은 후에야 경태와 함께 있는 여성을 알아보았다.



“혹시 최서원씨 아니십니까? 예전에 영화 ‘말은 아무나 타나’에 나오셨던……. 민희의 이모님이셨어요?”



최서원은 김영사가 본인을 알아본 것이 쑥스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걸 아직 기억하시는 분이 계시네요. 그 이후로 제가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아서 저도 잊어버리고 있던 작품입니다.”



“제가 중학교 때 서원 씨를 꿈에서 얼마나……. 아닙니다. 완전 여신이셨지요. 우리 중학생 남자애들에게는...... 그나저나 그 이후로는 활동을 안 하시고 무슨 일을 하신 거지요?”



“그게...... 그 무렵에 언니 부부가 차 사고로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어요. 언니 부부는 훌륭한 외교관이었는데 아이들을 친정에 맡겨놓고 잠깐 나들이를 간 틈에 그만 사고가 나고 말았지요. 가해 차는 음주운전이었지요. 저희 어머니께서 민희를 키우다가 돌아가시고 제가 맡아서 키우게 되었어요. 민희는 제 딸이나 다름없는 아이입니다.”



서원은 민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먹이면서 말했다. 영욱은 서원에게 질문했다.



“그런데 처음에 아이들이라고 하셨는데 언론에는 민희 씨가 외동으로 알려져 있거든요. 그런데 민희 씨에게 자매가 있었나요?”



최서원은 망설이며 말했다.



“네. 민희에게는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여동생이 있었어요. 그런데 3살 때 누군가가 어머니와 아이들이 있는 집에 침입해서 민희의 동생, 윤희를 데려가 버렸어요. 그 이후에 어머니는 충격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시고 말았죠. 아이를 잃어버리셨다는 자책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셨어요. 민희도 자신을 외동이라고 알고 자라왔습니다. 민희가 크면서 할머니에게 동생의 존재를 물어보면 어머니께서 더욱 충격받으실 거 같아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서원 씨도 아주 힘드셨겠어요. 오늘 그 여동생이라고 주장하는 여성분을 만나려고 하고 있어요.”



김성현 영사가 말했다. 최서원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저도 놀랐어요. 하지만, 왠지 저도 이 아이를 만나면 많은 궁금증이 풀릴 것 같네요. 그런데 여기서 이 시간에 그 사람을 만날 수가 있을까요?”



최서원은 그제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주변은 야경을 즐기려는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누군지도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이런 곳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조금만 기다려보십시오. 거의 다 왔습니다.”



영욱은 템즈강 너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다 왔습니다.”



조금 뒤 영욱이 말했다.



“뭐가 말인가? 이 많은 사람 사이에서 누구란 말이야?”



"어디? 어디?"



그곳에는 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있었다. 경태, 서원, 김영사는 그 관광객들 사이에서 민희의 여동생으로 의심되는 이십 대 여성을 찾아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그건 모래 속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었다.



"영욱군. 약속을 잘못 한 거 아닌가? 저분들은 한국말을 할 줄도 모른다네. 내가 저분들 사진만 열 장은 찍어드린 것 같네."



김성현 영사는 투덜댔다.



"영사님이 인기가 많으시네요. 주무시고 오셔서 피부가 좋아져서 그런가 봐요."



영욱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저기 블루베리가 오네요. 저기 보이시죠?"



영욱의 말에 경태가 말했다.



"제가 한국에서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다고 놀리시는 겁니까? 이 강은 템즈강 아닙니까? 여기 뭐가 있다고 그러십니까? 그렇게 문자로 약속을 잡는 게 아니었는데 이러다가 혹시 블루베리와 못 만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저기 오고 있잖아요."



"저기는 배 하나 빼고는 아무것도 없지 않나? 자네 자꾸 그러기야?"



김성현 영사도 화를 참지 못하고 말했다. 작은 보트가 타워브리지 남단 쪽으로 가까워지는 것이 보였다.



"맞아요. 저 배에요. 저 배가 블루베리의 배에요. 가까이 오고 있죠? 이제 블루베리를 만날 시간이라고요. 어서 가서 노크하시죠. 이리 오세요.”



작은 배는 이내 그들이 서 있는 타워브리지 남단에 배를 댔다. 배에 한 여성이 타고 있는 것을 창문을 통해 볼 수 있었다. 그 여성은 배를 운전해서 그곳까지 왔음에도 그들 일행에게 아는 척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영욱이 먼저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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