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게 뭔가? 영욱군?”
“보트하우스입니다. 쉽게 말해서 배를 집으로 쓰는 거지요. 제가 가서 인사를 하겠습니다.”
영욱은 보트가 가까이 정박할 때까지 기다려 창문에 노크했다. 곧 한 여자가 창문을 통해 그들을 확인한 후 다시 숨었다. 관광객들은 재미있는 구경이라도 난 듯 카메라를 들이대는 모습이었다.
“Sorry, no photos. Please.”
영욱은 카메라를 들이대는 관광객들을 모두 돌려 보낸 후 다시 보트하우스 출입문에 노트했다.
“누구시죠? 전 당신들과 약속 한 적은 없습니다만?”
이십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 창문을 열고 영욱을 향해 말했다.
영욱이 앞장서서 나섰다.
“민희씨는 지금 사정이 있어서 못 나오셨구요. 이 분은 민희씨 매니저 조경태씨, 또 이 분은 대사관 김성현 영사관님, 그리고 저는 통역을 하는 영욱 홈즈입니다.”
“당신도 입양아 출신인가요?”
배에 탄 여성은 히스테릭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그렇죠. 우리 부모님은 영국인이었고 한국에서 저를 입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요. 당신도 그런가요?”
“그런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아요. 그만 돌아가 주시죠.”
배에 탄 여성은 창문을 닫으려고 했다.
“윤희야… 혹시 윤희니?”
뒤에 서 있던 최서원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아니… 저 여자는 누구죠?”
“민희씨의 이모님 최서원씨입니다. 민희씨를 키우셨죠.”
“그렇다면 더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겠어요. 전 민희와 이야기하고 싶어요.”
여자는 이야기를 끝낸 후 몸을 돌렸다. 돌아서는 여자의 목소리는 흔들렸다. 영욱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자를 가까이에서 살필 수 있었다. 오랜 외국 생활로 분위기는 많이 달랐지만 민희와 서원과 많이 닮은 모습이었다.
“죄송합니다. 민희씨는 어제 호텔에서 사망했어요. 그 일로 찾아온 겁니다. 당신을 힘들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영욱의 말에 뒤돌아선 여자가 움찔하며 놀라는 것이 보였다. 이에 경태, 최서원, 김성현 영사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저는 대사관 경찰 영사 김성현입니다. 그저께 민희씨를 만난 사실 알고 왔습니다. 민희씨가 어떻게 사망한 것인지 조사 중이니 잠시만 시간을 내주십시오.”
여자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말을 이었다.
“네 좋아요. 잠깐 시간을 내죠. 들어오세요.”
여자는 작은 나무로 된 발판을 펼쳐 이들을 배 안으로 안내했다. 영욱도 보트하우스에 들어와 본 것은 처음이었다. 김영사, 경태, 서원 모두 피곤했지만 새로운 공간에 들어가는 것이 설레는 모양이었다.
“여기 혼자 사십니까?”
김영사가 물었다.
“네, 그래요. 런던은 워낙 집값이 비싸서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리고 이건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물려주신 거에요. 3살이던 저를 입양해서 키워주셨죠. 뭐 천사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어요.”
여성은 담담히 말을 이어나갔다. 보트하우스 안은 배나 버스에서 나는 냄새가 나는 것을 제외하고는 청소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깔끔한 모습이었다.
“아이쿠……. 죄송합니다. 배가 흔들리네요.”
영욱은 보트 안을 둘러보다가 배가 흔들리는 나머지 비틀거리다 여성과 살짝 부딪혔다.
“조심하세요. 벽을 꼭 잡고 걸으세요. 이 쪽으로 오시죠.”
여자는 일행을 배 뒤 편 작은 응접실로 안내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자유로운 영혼이셨어요. 이 배를 장만하시고 저를 입양하셔서 떠돌아다니면서 살았죠. 알코올 문제로 일찍 돌아가시긴 했지만 취하지 않으실 땐 정말 좋으신 분이셨어요.”
“네. 그런데 한국어를 잘 하시네요. 따로 공부하셨나 봐요? 저도 한국어를 얼마 전에 배웠어요.”
영욱은 여자에게 공감대가 느껴졌다.
“요즘 한국 노래와 영화가 워낙 인기가 있잖아요. 인터넷으로 뭐든 볼 수 있으니……. 에츄. 죄송합니다. 갑자기 왜 이러지? 청소 다 했는데……. 에츄……. 실례하겠습니다.”
영욱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여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김성현 영사가 영욱에게 말했다.
“영욱군, 어떤 거 같아? 뭐 좀 아는 거 같은가?”
“글쎄요. 좀 더 자극을 해봐야 될 거 같은데요.”
여자가 조금 뒤 나타났다. 제가 청소를 하다가 뭔가를 하나 빠뜨렸나 봅니다. 제가 알러지가 있어서요.
“혹시 땅콩 알러지인가요? 그거 꽤 성가신데…….”
“네. 그걸 어떻게…….”
김성현 영사가 끼어들며 말했다.
“영욱군이 캠브리지 의대생이라네. 그래서 좀 잘 알지.”
김성현 영사가 참견하며 말했다.
"땅콩 알러지는 모든 종류의 알러지 중 가장 잘 알려진 알러지이죠. 미국에서는 1퍼센트 정도가 너트에 알러지가 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여쭤본 겁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 의사도 아니고 배우는 학생인걸요."
영욱은 여성의 건강 문제에 아는 척 한 것이 조금 마음이 쓰이는 듯 했다.
그 이후 그들 사이에는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밤이 늦어가니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민희씨와 언제 어디서 만나셨는지요?”
김성현 영사가 짐짓 진지한 척 물었다.
“레인즈버로우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어요. 그저께 그러니까 10월 13일 화요일이었어요.”
“유라가 민희를 만나라고 하던가요?”
경태가 다급한 듯 끼어들며 말하였다.
“유라 언니는 저를 도와주려고 했어요. 어제 처음 만났죠. 귀여운 아들도 만났구요."
어제 이 여성을 만났다는 유라의 말은 사실인 듯 보였다. 여자는 말을 이어나갔다.
"한국 음악이 유명해지고 한국 가수들을 좋아하는 친구들도 학교에서 많이 생겼었어요. 저도 한국에 관심이 많아서 노래도 듣고 영화도 봤는데 저와 너무 똑같이 생긴 민희가 나오는 거에요. 어딘가에서 그 아이가 저와 똑같은 목걸이를 하고 있는 것도 보았어요. 제 기억에 어렴풋이 제가 한국에서 쌍둥이였다는 것이 떠올랐죠. 그래서 첨엔 편지도 보내고 했는데 아무도 답이 없었어요. 관심을 끌 만한 방법이 없었죠. 그래서 악플도 쓰고 안 좋은 것도 보내고 했어요. 그러다가 민희와 통화도 한 번 했어요. 민희에게 우리가 쌍둥이 같다고 이야기했죠. 그런데 민희는 제 이야기를 무시했어요. 자기는 무남독녀 외동딸이라면서요.”
“역시 당신이 블루베리였군.”
경태가 말했다.
“네, 제가 블루베리에요. 그리고 제 입양기록부에는 유니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