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이미 Jan 01. 2024

런던 살인 사건 11 (드러나는 진실)


보트에서 만난 여성은 말을 이어갔다.

"내가 입양될 당시에 할 수 있는 말이 '유니'밖에 없었대요. 제 진짜 이름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입양기록부에 '유니'라고 적혀있었고 영국에서도 그렇게 불렸어요."


최서원은 이어지는 여성의 말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말없이 흐느끼고만  있었다.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조카를 찾게 되어 그간 마음 고생 한 것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듯 했다.


“유라와는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경태가 물었다.


“유라 언니는 저를 도와주고 싶어 해요. 제가 노래와 춤을 배울 수 있게 해준댔어요. 한국말도 더 배우게 해준댔어요. 매니저라고 하셨죠? 제 춤 좀 보실래요?”


윤희는 갑자기 일어나 그 자리에서 브레이크 댄스를 추어 보였다.


“저 이거도 할 줄 알아요.”


윤희는 그 자리에서 키아라의 히트곡 픽미의 안무까지 선보였다. 하늘을 찌르고 바닥을 찌르는 복고풍 댄스가 아주 일품이었다. 하지만 출생이 드러나는 이 위중한 순간에 걸그룹 댄스는 뭔가 소름끼치게 어울리지 않고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이렇게 된 김에 민희의 죽음을 숨기고 저를 민희 대신에 쓰시면 어때요? 저 보세요. 똑같이 생겼잖아요. 분위기는 조금 다르지만 이미지 변신했다고 하면 되죠. 제가 민희 대신에 활동할게요. 회사를 위해서도 그게 낫지 않을까요?”


예상치 못한 윤희의 말에 영욱, 경태, 서원, 김영사는 소름이 돋는 듯 했다.


“윤희야. 너의 기억과 너를 직접 만나보니 너가 잃어버린 내 조카가 확실한 거 같구나. 너를 세 살 때 잃어버리고 할머니께서 앓아 누워 계시다 돌아가시고 이렇게 만나니 너무 기쁘다. 그런데 어쨌든 언니가 죽었는데 그건 좀 심한 것 아닐까? 그리고 이제 이렇게 너를 찾았으니 우리가 의지해서 살 수도 있을 텐데.”


최서원은 애써 찾은 조카의 이런 모습에 마음이 무너지는 듯 했지만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이모? 당신이 뭘 알아? 내가 이 곳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알기는 알아? 우리 엄마가 아버지를 몇 명을 갈아치웠는지? 술만 취하면 나한테 어떻게 했는지 알아? 그런데 민희는 공주처럼 커서 사랑을 한 몸에 받고 민희때문에 내 인생이 어떻게 됐는데!”


윤희는 눈을 부라리고 몸을 부르르 떨며 악을 썼다.


“민희가 어떻게 했는데? 윤희야? 민희도 아기였는데 너에게 무슨 짓을 했다는 거야? 우리가 너를 잃어버린 건 네가 세살 때야.”


 최서원이 말했다.


“나 아직도 똑똑히 기억나. 그날 그 장면. 할머니는 주무시고 나랑 민희랑 놀다가 민희가 나를 나가라고 하고 문 밖으로 내보냈어. 그리고 난 계속 앞으로만 걸었어. 난 내 이름만 겨우 말할 수 있는 바보였다고! 민희가 지 혼자 사랑을 독차지 하려고 그랬다고! 당신들 사랑을 말이야!”


윤희는 분이 안 풀리는 지 씩씩거렸다.



*



“민희씨에게 물어봤나요? 확실한 일입니까?”


영욱이 물었다.


“물어봤지. 민희가 한국에 있을 때……. 자기는 쌍둥이 동생이 없다고 하더군. 나를 피해망상증 정신병자로 몰더군.”


최서원은 충격을 많이 받은 모습이었다.


“윤희야. 민희는 사실 쌍둥이 동생이 있었다는 걸 몰라. 내가 이야기를 안 했어. 민희 신경 쓸까봐.”


윤희는 더 화가 나는 모습이었다.


“이것 봐. 민희, 민희, 민희, 민희만 공주고 내 존재 따위는 흔적조차 없애고 싶었던 거야. 모두들.”


“그래서 민희씨를 살해한 겁니까?”


영욱이 물었다.


“살해는 무슨 살해. 내가 왜? 그런 짓을 해? 그리고 증거 있어? 민희만 불쌍하고 나는 뭐야. 나는 뭐냐고.”


윤희는 영욱을 향해 눈을 흘기며 악을 썼다.


“증거 있죠. 바로 당신이 증거에요.”


영욱은 윤희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디서 뭘 잘못 드셨나? 공부를 많이 해서 머리가 돌은 거 아니야?”


윤희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까 당신이 알러지가 있다고 했죠? 땅콩을 먹으면 아마 심하게 발작을 일으킬 텐데. 아까 내가 비틀거리며 당신 주머니에 땅콩 쿠키를 넣었어. 땅콩이 아주 듬뿍 들어있는 걸로… 부스러기는 덤이었지. 그리고 당신이 어떻게 했지?”


윤희는 애써 침착한 척 말했다.


“그래서 뭐 알러지 있으면 다 살인범이야? 그런게 어딨어?”


“제가 처음에 사건 현장에 갔을 때 영국 경찰이 말해준 사인은 질식사였어요. 하지만 질식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었죠. 하지만 당시 현장에서 저는 민희씨 가방에 삐져 나와 있는 주사기 하나를 보았어요. 땅콩 알러지가 있는 민희씨는 가방에 에피네프린과 주사기를 가지고 다녔어요. 민희씨는 땅콩을 먹고 발작을 일으켜 호흡곤란 상태에서 에피네프린 주사를 스스로 놓으려고 하다가  그만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이 곳에 오기전에 영국 경찰에서도 추정했습니다. 약물에 주사기를 꽂으려다가 실패했다구요.”


“이런 걸 왜 혼자만 알고 있는 건가? 나한테도 알려줬어야지.”


김성현 영사는 영욱이 혼자만 영웅 놀이를 하는 것 같아 섭섭했다. 영욱은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또 하나의 증거는 바로 이 자리에 있어. 바로 이거 다이어트 에너지바.”


영욱은 부엌 싱크대 위에 있는 에너지바 하나를 집어들었다.


“당신은 땅콩이 가득 든 시리얼바를 만들어서 이 에너지바 포장지를 씌웠지. 물론 보호장구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착용하고 말이야. 그리고 민희의 가방에 몰래 넣었던 거야. 일란성 쌍둥이로 같은 알러지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말이야. 그건 정확했지. 불행히도. 조금 전에 전화로 발작의 원인으로 먹다 만 시리얼바가 발견되었고 그 시리얼바의 겉면은 일반 에너지바와 똑같이 생겼지만 내부에는 땅콩가루가 가득했어."



이전 10화 런던살인사건 10 (윤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