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회에 이제까지 내가 살아온 모습을 돌아보았다. 나는 내가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하려고 애썼다. 부모님 보기에 떳떳한 딸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어떤 조직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n분의 1 이상의 일을 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나는 내가 해야 할 역할에 매몰되어 나를 돌보지 못했던 것 같다.
이번 일 겪으면서도 나는 내가 이 조직 안에서 맡은 직책을 해내는 것을 우선시하다가 보니 적절한 시기에 내가 분출해야 할 분노, 적절한 비판을 하지 못했다.
사실 못한 것이기도 했지만 안 한 것이기도 하다. 어차피 내가 분노하고 비판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도 했다.
부정적인 감정을 내 보이는 것이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내 마음은 후련할 텐데 머리로 감정의 분출을 누르다 보니 내가 화가 쌓이고 마음의 병이 생기는 것 같다.
되돌아보면 나도 분노하고 시스템을 비판할 때가 있었다. 아이가 처음 자폐성 장애로 진단 받고 치료를 시작했을 때 그때는 이런 일이 벌어지게 만든(?) 하늘이 원망스럽고 내 간절한 마음에 반응하지 않는 아이도 원망스럽고 우리 어려움을 품어주지 못하는 시스템도 원망스러웠다.
십 여 년의 산전 수전을 겪다 보니 분노와 원망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기도 하고 내 스스로 '어차피 해도 안되는데...'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분노와 비판을 해낼 에너지까지 상실한 것 같다.
이번 주말은 정말 애쓰지 않고 푹 쉬었다. 애쓰지 않아도 아무일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조금의 위안을 얻었다. 뭔가를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본능이 시키는대로 하고 살아도 아무일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채워 나가다 보면 내 마음의 병도 치유가 되지 않을까 희망한다.
요즘은 내가 좋아하는 뜨개질을 시작했다. 한 땀 한 땀 떠서 나만의 작품을 하나씩 만드는 기쁨이 있다. 조금씩 조금씩 좋아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