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유럽의 영화에나 나올 법 한 황량한 배경을 뒤로하는 갈색 우거진 동네 영화관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날은 어쩐 이유로 영화관에 사람들이 많았다. 재미없는 영화 3~4개 정도만을 하릴없이 틀어주던 작은 크기의 동네 영화관이었기 때문에 늘 사람이 적은 상태로 영화를 보는 게 나름 즐거웠는데 말이다. 오늘 공개한다는 신작이 꽤 재밌다는 소문을 저들도 들은 모양이었다. 영화표를 끊고 시작 전 밖의 테이블에 앉아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팝콘도 음료도 팔지 않지만 맥주는 파는 까닭에 영화관에서 가끔이나 볼 수 있는 일들을 영화 밖에서 빈번하게 볼 수 있었는데 그게 이 재미없는 영화관에 자주 방문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오늘은 무슨 재밌는 일이 일어나 주지 않으려나? 하는 상상이 늘 영화 시작 전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신작 영화는 <룰렛>이라는 제목의 스릴러 장르였다. 남주와 여주의 연기력이 탄탄하고 작품 감독의 명성이 자자하여 예고편의 흥미 이상으로 사람들이 볼 흥행예정작이었다.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언제나 영화보다도 실제 삶이 더 영화 같지 않는가? 난 이따금 영화보다도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기를 더 집중하곤 했다. 멀리 앉은 사람은 보통 시선을 의식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영화를 봤는데 거의 졸면서 고개가 고정된 채 열심히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나, 바삐 두 손을 움직이는 젊은 연인의 모습은 영화의 재미가 없을수록 더 자주 보였다. 그럼 난 그 장면을 머릿속에 집어넣으려 집중했다. 재미없는 영화만이 빚어낼 수 있는 이 재밌는 상황은 대상에 대한 관심을 몰입으로 전환시키고 돌연 내 존재를 세상에서 지운다. 그럼 이상과 현실의 구분선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것이다. 온전히 내 선택으로! 나는 언제나 사라질 수 있고 생겨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다. 가까이서 그런 날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이 있다면 약간의 수고로움으로 그 사람을 지우는 연습을 했다. 시선을 의식하면 의식할수록 나도 존재하게 되는 상황으로 미끄러지기 때문에 구석진 자리를 고수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영화가 시작되고 불이 꺼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뚜벅뚜벅 발걸음 다수의 소리가 들렸고, 이는 사운드 트랙의 소리가 아닌 바로 옆에서 들렸으므로 실제로 지각한 사람들이 걸어 들어오는 듯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구두를 신고 들어오는 그 사람들이 일제히 스크린 앞에서 발소리를 멈췄다는 점과 영화 시작을 알리는 안내 영상이 틀어지지 않는 몇 분간의 어둠이었다.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이 틀림없었다.
"반갑습니다."
남성의 목소리가 1관 안에 울려 퍼졌다. 서서히 불이 켜지더니 검은 양복과 선글라스를 쓴 10명가량의 남성들이 보였고 그들은 멀끔히 검은 중절모를 쓴 채 스크린 앞에 줄지어 서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알 방법이 없었다. 각 출구에도 한 명씩 막으려는 듯 남자가 서 있었다.
관중은 웅성댔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는데 스크린 앞에 선 남자가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지금부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게임을 시작할 겁니다. 지금부터 모든 관람객 분들은 무대 위로 내려와 주십시오."
설명 하나 주어지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 대한 주권을 포기하라는 명령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사람들과 이어지는 침묵. 10초가량의 침묵이 이어지자 1관의 뒤편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다. 일제히 뒤를 쳐다보자 총을 맞고 쓰러진 남자와 비명을 지르는 그 옆의 여자가 보였는데 무슨 상황인지 인지할 틈도 없이 비명을 지르는 여자의 머리에도 총알이 박혔다. 처절한 비명은 그 날카로움만큼이나 빠르게 단말마가 됐다.
"빨리 앞으로 나오지 않으면 총에 맞을 겁니다."
"꺄아아아악!"
진행자가 말했고 모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그 짧은 몇 초 사이에 울리는 몇 발의 총성으로 3명이 더 쓰러졌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는 건 나뿐만이 아닌 건가? 상황파악이 되지 않는다. 숨이 거칠어지고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앞쪽 구석자리에 앉았던 덕에 무사히 앞으로 나올 수 있었지만 위험하긴 여간 마찬가지였다. 내 안도는 단지 순간에 살았다는 사실에만 의미를 가질 뿐 아는 사실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여전했으므로 위험도 여전한 것이었다.
무대 위로 나온 사람들은 말을 꺼내지 못하고 벌벌 떨고 있었고 수를 보니 대략 30명 정도 되는듯했다. 남자는 이어서 말했다.
"앞으로도 이렇게 잘 지시를 따라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차가운 시체가 될 거예요. 지금부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게임을 할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게임이 이름은 <룰렛>, 몇 차례에 걸치는 생존 게임을 통과해야만 이 영화관에서 살아 나가실 수 있답니다. 몇 단계까지 있는지는 알려드리지 않을 거고요. 다만 열심히 참여해주셔야 한다는 사실만 알아주세요."
그때 한 사람이 겁을 잔뜩 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런 짓을 해놓고 밖으로 알려지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탕-'
남자의 말은 끝맺음되기 전에 총성에 의해 끊겼다. 바로 옆에 서 있던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쓰러졌는데 죽은 남자의 아내인 것으로 보였다. 이윽고 그녀 또한 총성에 의해 비명이 끊기게 됐다. 사람들은 표정이 일그러졌다. 발치 앞에 다가온 죽음의 위압감은 숨 쉬는 것조차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수용소에 가두어 폐가 무거워지고 숨이 가빠져온다. 피가 흥건히 퍼지고 신발이 그 피에 적셔지고 있음에도 아무도 움직일 수가 없다. 움직이면 죽는다는 사실은 질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까닭이었다.
"보시다시피, 여러분의 목숨은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어서 그냥 죽이고 싶으면 죽일 수 있습니다. 방금 쓰러진 저분이 누구인지조차 몰라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십니까? 여러분들이 누구인지 뭘 하는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런 걸 신경 쓰지 않고도 우리는 방아쇠를 당길 거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얌전히 게임에 참여해 주세요. 높으신 분들의 유흥을 위해 고안된 게임이라는 점만 알아주시면 됩니다."
말 이전에 행동으로 증명하는 이는 말로 이길 수 없다. 경고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총을 쐈으므로 저들의 행동에는 신의가 있음이 틀림없고, 다부진 체격과 태도는 이미 몇 번이고 이 상황을 반복했음을 암시했다.
총성은 다소 투박했다. 영화에서 나오는 깔끔 청아한 총소리가 아닌 무언가 목덜미에 걸리는 켕기는 질감의 총성, 희뿌연 하게 퍼지는 화약 냄새, 모든 총의 총성이 동일하다는 점으로 알 수 있는 점은 총이 사제로 제작한 리볼버인 듯하다는 점과 그러한 공정을 전문적으로 갖춘 조직된 단체라는 것이었다.
"다들 이해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지금부터 첫 번째 게임을 시작할 겁니다. 간이침대에 여러분을 묶어놓고 눈을 가린 뒤, 차례대로 한 발씩 목에 총을 쏠 겁니다. 다만 '룰렛'답게 총알이 나가거나, 나가지 않을 수 있어요. 살아남으면 다음 게임을 시작할 겁니다. 다들 무운을 빌어요!"
이게 무슨 친절한 게임 설명이란 말인가! 이 설명이 친절한 이유는 간단했다. '참여'의 주권에 대한 권리를 삭제했음을 더할 나위 없는 깔끔한 방식으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어느 침대에 묶일지, 몇 번째로 쏘일지조차 내가 선택할 수 없다. 나는 승리와 패배 사이 그 어느 결정도 내릴 수 없고 오직 리볼버에 장착된 총알의 확률에 의해서만 죽음이 결정된다. 그 확률조차 알려지지 않았으며 따라서 몇 명이 살아남을지도 알 수 없다.
스크린 옆에서 꺼내 온 인원수에 맞는 간이침대에 사람들은 차례대로 누워 손발을 구속당했다. 그리고 검은 안대로 눈을 가려졌다. 시작한다는 신호와 함께 첫 번째 열과 끝 열의 양 방향 즉, 네 방향에서 일제히 총성이 울렸다. 무언가 고민할 틈새가 있었을까? 이어지는 총성의 빈도는 저열할 정도로 짧아서 인간의 목숨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의 목숨이 10초 간격으로 스러져 간다. 탕- 소리 이후에 들리는 철컥- 소리는 총알이 없음을 의미했고 그 소리의 빈도는 꽤 많아서 삶에 대한 가능성을 희박하게 소리치게 만들었는데 다양한 방식으로 귓가에 호소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인간은 시각에 강하게 의지하며 그 시각을 상실하게 되면 시각에 쏟던 에너지를 타 감각으로 배분한다. 말하자면 눈을 가린 채 총성과 찰칵거림의 반복, 또 그것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접한다는 건 대단한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극도로 예민해진 청각에 의해 듣지 못했던 많은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다. 죽음을 앞두고 삶에 희망을 거는 이들의 호소. 손발이 묶인 사람들은 흐느끼는 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발작이 일어난 것처럼 손발의 구속구를 휙휙 잡아당기는 소리를 들려줬다. 어떤 이들은 기도를 하며 신에게 빌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지금 상태에서 가만히 있지 않는다고 총을 쏘지 않는 건 다행인 사항인 걸까? 죽기 전 자유를 보장하는 최소한의 배려인 걸까? 비명을 지르던 사람은 총성 이후 침묵하거나 철컥 소리 이후 안심하여 침묵했으니 두 가지 중 하나의 결과라고 해야 할까 어찌 됐든 침묵하는 결과라 불러야 할지 모르는 것이었다.
오롯이 확률에 의해서만 살아남는 게임의 방식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죽음과 삶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에 필요한 건 손톱만 한 납탄뿐이고 인간의 목은 그 납탄 하나에도 쉽게 부러지는 것이다. 다가오는 차례, 나는 사시나무 떨듯 발작을 일으키며 청각이 예민해지고 온몸의 촉각이 곤두섰다. 총성이 가까워진다. 철컥거림이 가까워진다. 죽음이, 삶이 가까워진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잠깐, 삶이 옳은 게 맞나?
내면의 평화를 찾은 건 그때였다. 총알이 없다는 의미의 철컥거림은 삶의 신호인가? 앞으로 몇 단계나 있을지 모르는 이 게임의 첫 번째에서 살아남는 게 의미가 있을까? 몇 명이나 살 수 있는지 확률조차 모르는데, 만약 한 명도 남김없이 죽일 계획이라면? 어차피 빠져나갈 수 없는 죽음의 게임에서 발버둥 치는 건 아닐까? 만약에 살아남는다손 쳐도 남은 내 생을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이 모든 걸 겪고도 아무 상처 없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까? 과연 삶을 살아가는 게 옳은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몸의 떨림과 예민해진 청각이 돌아옴을 넘어 오히려 둔감해졌다. 모든 지진이 멎고 평형을 이루며 마음의 바다가 멈춰서 수평선이 일직선이 되었다. 그 순간 진정한 자유를 경험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을 자유, 이 세상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초연한 자유, 선택할 수 없는 것을 앞에 두고 그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아 졌다는 진실에 다가섰다는 자유, 영화관에서 인간을 관찰하며 몰입했을 때 신체가 사라지고 이상 속에 영혼으로서 뛰어들었을 때와 같은 경험 아니, 그것을 초월하여 영혼마저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무언가. 그것은 진정한 자유였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투박한 총성과 함께 내 목에 총알이 박혔다. 자각하지 못한 채 어느새 옆까지 차례가 와있었고 나는 죽음이 선택한 모양이다. 목이 잘리는 인간은 고통을 느끼지 못할까에 대한 궁금증을 품었던 것이 생각났다. 짜증 나게도 경험으로써 해결하게 됐음이 유감이다. 충격에 의해 감각이 마비되어 머리가 띵해진다. 이어 끈적한 피가 솟구치는 게 느껴지고, 막을 틈도 없이 목에서 밖으로, 몸의 안쪽에서 바깥으로 피가 이동하는 게 기분 나쁠 정도로 선명하게 새겨져 흐른다. 나갔던 영혼이 다시 신체로 잡혀 들어오기 충분한 충격이었기 때문에 그 더러운 기분을 그대로 체감하면서도, 무언가 행동할 의지도 힘도 생겨나지는 않는다. 이 모든 건 2~3초 만에 일어났으며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