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벽 네 시, 새하얗게 눈이 떨어지던 날 슈퍼 슬로우 모션 카메라로 그 모습을 담았어. 눈 떨어지는 모습이 하나하나 담겨서 마치 바닷속을 유영하는 고래처럼 그 물결을 모두 느낄 수 있었지.
하늘에 휘날리는 눈꽃들은 마치 반딧불이 벌레들 같아서 하늘을 하늘하늘 유영하고 있었고, 나는 크릴새우를 받아먹으려는 고래처럼 입만 뻐끔뻐끔 벌리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어. 그건 숨이라는 생명유지의 목적을 포함하지 않는, 단지 그것을 흉내 내는 모양으로만 나타나는 것이어서 입에서는 왕복의 숨이 아니라 하얀 입김만 뿜어져 나올 뿐이었지. 우스웠을까? 중요하지 않아. 가로등에 비친 빛나는 눈꽃들이 입 속으로 떨어지기만을 기다릴 때엔 아무것도 입에 들어오지 않아. 실제로 무엇이 들어왔다 해도 너무나도 작은 것, 거의 없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뇌의 신호로 번역되는 와중에 감각은 색을 잃지. 나는 그 순간의 연속을 끊임없이 흡입하고 있었던 거야. 다시 돌아오지 않을 섬광처럼 반짝인 눈의 언어들을 입술 표면의 감각으로 천천히 훑어가며 영혼의 식량으로 빨아들이고 있었던 거야.
기억나? 중앙 공원의 거대한 첨탑 한가운데 걸린 거대한 장식은 어디서 봐도 따듯한 불빛을 뽐내 모두에게 길잡이가 되어 주었어. 어느 구역에서 봐도 지붕 위로 높게 뜬 그 불빛 덕에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는 나룻배들처럼 간신히 집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거야.
그 불빛은 이 도시를 본 따 만들어졌어. 그 첨탑을 중심으로 마치 거미줄처럼 구획을 나눠 옹기종기 흰색의 흙과 벽돌을 모아 다리를 연결하고 나면, 가장 알맞은 균형으로 적당한 골목과 적당한 지붕과 적당한 풍량의 도시가 완성돼. 어느 한 구역도 자신만의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아서 한 곳이 무너지는 순간 모든 곳의 균형이 흔들려 버리고 마는.
눈이 내리고 있어. 이 눈은 우리의 불빛을 본 따 만들어졌을지도 모르지. 어딘가로 처박히면 금세 으스러져 사라져 버리는 꽃이지만 견고한 추위 앞에선 그 안의 불빛을 조금 더 소중히 여기게 되나 봐. 이 가득한 고체의 파도 속에서 한 마리 고래가 됨을 느끼는 것, 이 세상의 썩어감에 자신을 빠져들게 하면서 세상의 어둠과 그림자에 자신도 반드시 어느 정도는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그게 이 마을의 불빛이 내게 가르쳐 준 교훈이야.
꽃뿌리를 캐어오던 때마다 친구들은 내게 그 바구니를 어디다 보관해 두느냐고 물어봐. 대답하자면 바구니는 어느 고정적인 장소에 두는 것이 아니라 이 마을 어딘가에 흩뿌려 놓는 거야. 흐르는 장소 위에 있어야만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로 존중하는 거야. 그 바구니를 되찾으러 갈 때 늘 길을 해매. 최단거리로 바구니를 찾아가는 일은 거의 없고 멀리서 두리번거리며 바구니를 찾는 모습을 바구니에게 들킨 때에야 겨우 손에 쥘 수 있기 때문에, 언제나 사과를 하면서 바구니를 집어야만 그 안에 다시 꽃뿌리를 담을 수 있는 거야.
누가 훔쳐가지 않느냐고? 놀랍게도 늘 꽃뿌리만을 도둑맞는데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바여서 그런지 괜찮아. 하루는 누구 좋으라고 짧은 쪽지와 감자빵을 담아 골목의 구석에 내버려 뒀는데, 그 장소는 골목임에도 담을 올려다보면 석양을 가리는 건물이 없어서 정말 좋아하는 장소였어. 이 장소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서 나와 좋아하는 장소 취향이 비슷한 그 도둑에게 내심 친구가 될 수 있기를 소망했지. 그런데 평소처럼 꽃뿌리만 온 데 간 데 없고 빵과 쪽찌는 그대로 있는 거야. 꽃뿌리만 먹는 요정이었던 걸까? 혹은 꽃뿌리가 제 발로 바구니 밖으로 나간 게 아닐까? 혹은 내 선의가 자존심을 깎는 연민처럼 느껴졌던 걸까?
옆 집의 제니는 이 일을 두고 '별빛 첨탑의 미스테리'라고 부르며 새벽까지 매복해 있다가 범인을 잡아 해결하자고 난리를 치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무엇보다 이 도시의 불빛이 좋고, 그 불빛을 받아 온갖 방향으로 빛을 반사해 대는 저 황홀한 눈꽃들이 사랑스러워. 분명 그 꽃뿌리 도둑은 꽃뿌리 안의 드넓은 생명력을 마셔 들고 꽃잎들을 모아다가 하늘에 뿌리는 걸 테야. 그게 내려오면서 차가운 공기 중에 눈꽃이 되는 거지. 꽃잎들이 눈꽃이 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있어? 땅에 떨어진 눈꽃들이 들판에 박혀 촘촘히 뿌리를 내리면 땅에서 꽃이 자라고, 그것을 모아다가 요정에게 건네주면 다시 하늘에서 눈꽃이 자라는 게 이 도시에서 변하지 않는 어떠한 법칙 같은 거야. 우린 아마 영원히 그 법칙을 소유할 수 없겠지.
나의 세계, 그러니까 너희 모두의 세계와 다른 나만의 세계에선 그게 정말로 맞는 말이야. 누군가의 세계의 크기를 재단하고 잘라낼 부분이나 더해야 하는 부분을 그에게 설명한다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고, 또한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어서 어쩌면 관계를 맺는다는 말 자체가 말장난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난 믿어. 그 무의미한 관계는 꽃의 가능성을 싹 틔우고 발아시켜 서로의 세계를 연결해 줄 다리를 피어나게 할 것이라고. 네가 내 '별빛 첨탑의 미스테리'를 받아들여주었으면 해. 함께 새벽 네 시를 향해 달려가 주었으면 해. 언제나 함께였으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