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연재 중 무제 06화

무제 006

by 작은 사슴

지하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장소는 책을 읽기 좋다. 조금만 한눈팔아도 시선의 가치를 보답받는다. 앉아있는 자리가 언제든 폭삭 주저앉을 수 있다는 상상은 밟고 서 있는 대지가 어쩌면 거품뿐인 상상이라는 긴장감, 옆에 매달린 꽃이 조화라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동시에 준다.

층에 대한 정보는 유별난 관찰과 생각의 장으로 다시 자아를 밀어 넣는다. 1층과 지하 1층의 관계는 2층과 1층의 관계만큼이나 직관적이다. 우린 누군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층에서 동시에 올려다볼 수 있고, 다른 말로 언제든 올려봐 질 수 있으며 내려다봐질 수 있다.(아름다운 샹들리에가 내 머리 위에서 돌고 있는 건 최상위층에게 부여하는 일시적 짜릿함을 무의식으로 주입하기 위한 장치인 걸까?) 각 층은 같은 층고의 높이로 벌려져 있으며 투박하게 나뭇결무늬를 그려 넣은 계단 20개 남짓으로 연결되어 하나로 이어졌음을 주장한다. 위태로워 보인다 말하고자 한다면, 자신들은 사실 나무가 아니라 튼튼하다며 갈라진 피부 사이로 응고된 흰색 시멘트를 내보인다.


1층이지만 절벽에 지어진 탓에 그 건물에서 용기를 가진 사람은 1층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이라는 칭호를 얻을 수도 있다. 만약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가여워해야 하는 걸까? 축하해 주어야 할까? 1층이 가지는 파괴력은 무한한 지평선에서 나오는 것 말고도 최소 2.3m 이상의 층이 가지는 낙하의 가능성으로 인해 쉽게 저평가당한다. 1층 바닥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 지하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나면 우린 현실성을 쉽게 미끄러뜨리고 숨어 있던 상상력을 불러올 수 있다.


앉을 공간이 많지는 않지만 예쁜 무드로 통일감 있게, 또한 감각 있게 잘 인테리어가 꾸며져 있다. 창업자의 철학이 어떻게 어디에 묻어난 건지 카운터 옆이 보이는 자리에서 쳐다보고 있노라면 가리개 아래로 아르바이트생들의 분주한 발걸음이 보인다. 집요한 공간에서의 분주한 탭댄스, 둘의 동선은 완벽할 정도로 간결하게 서로를 교차한다. 커피를 내릴 때마다 들리는 목소리는 환상적인 보컬처럼 울리고-"꺄르르, 꺄르르"- 언제 어디서 들어도 훌륭한 가사가 되어 커피에 달콤함을 녹여낸다.


"Acceleando!"


감각 있는 LED 조명은 아르바이트생들을 비추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보이는 곳만 전원이 불안정한 지 파르르 점멸 중이다. 손님들을 비추는 LED 조명은 모두 멀쩡했으므로 수리하지 못하는 건지 수리하지 않은 건지 알 방법은 없다만... 뉴발란스 마크가 그려진 작은 운동화와 귀여운 캐릭터 마크가 달린 크록스를 신은 소녀들이 커피머신과 과일 조각들로 치장된 2평 남짓한 공간에서 구르고 웃고 떠든다. 주기적으로 밖에 나와 테이블을 닦고, 바닥을 쓸고,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카운터 안쪽에 아까부터 흘려진 물을 닦지 않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자신들의 공간은 정리하지 못할 정도로 밖의 공간밖에 신경 쓰는 모습은 '잘한다'며 칭찬해야 하는 부분일까? 잘한다는 건 무슨 뜻이지?


그들이 빠르게 움직일수록 손님은 빨리 커피를 받고, 그들의 발치가 더러울수록 손님 주변은 깨끗해지고, 그들의 눈이 불편할수록 손님 눈은 편안하다고 착각하기 좋은 환경인듯하다. 말하건대 당신들이 그렇게 바쁘지 않아도 좋습니다. 충분히 고마우니 여유를 가졌으면 해요. 결국 아르바이트생 발치의 엎질러진 물은 50분가량이 지나 증발로 사라진다. 이제 보니 가림막엔 유칼립투스가 그려져 있다.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05화무제 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