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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무제 08화

무제 008

by 작은 사슴

사람들은 유명인사가 총에 맞을 뻔하면 온갖 구급차가 그를 향하길 간절히 바란다. 구급 요원들도 같은 사람의 범주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똑같이 행동하고, 비껴간 총알이 지나가는 행인의 가슴에 꽂혀 그가 피를 흘려 쓰러지고 있더라도, 사람들의 관심은 전혀 비껴가는 일 없이 유명인사에만 꽂혀있는 것이다. 정말로 신문기사 헤드라인에 큼지막하게 쓰인 글귀처럼 그건 과연 '운 좋은' 사건이었을까?

피 흘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죽어가는 동안 몇 명의 구급 요원과 사람들이 그를 지나쳤을까? 붉은 핏자국이 어느 정도의 너비로 퍼져야 사람들은 그를 알아챌까. 결과적으로 그들이 불편한 건 한 사람의 고통이 아니라 길거리에 퍼진 진한 진홍색의 피웅덩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렷하게 피를 마주한 몇몇의 사람은 얼굴이 보라색으로 그을렸지만 이내 누군가 버려놓은 더러운 붉은색 러그 위에 취객이 쓰러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바꿨다. 그는 싸늘한 상태가 되었을 때에야 사람들에게 발견됐고 차갑게 식은 피는 애원하듯 바닥에 달라붙어 찌든 뒤였다.


그 피웅덩이에서는 샛붉은 장미가 피어 나와 봉오리는 작고 가시는 비대해졌는데 이윽고 가지만 무성한 앙상해빠진 겨울나무의 모습이 되었다. 작은 하나의 봉우리만을 가진 날카롭기만 한 위험한 이름. 그녀는 바로 그 희귀의 이유로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이름을 미워하고 증오하며 키운 가시의 대가가 이름의 관심과 시선이라니. 웃긴 일이지 않은가?


욕조에 물을 한가득 받아 머리끝까지 잠수하고 있노라면 느껴지는 야릇한 흥분감은 소중한 사람의 머리채를 거칠게 붙잡아 음부로 가져다 대도록 하거나, 이 기분의 고양감을 증폭시키도록 '운 좋은 총알'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일게 하지만, 그 무형의 관념으로 일렁이는 욕조에서 나와 옷가지를 걸쳐 입고 나면 신체는 제자리를 되찾고 영혼은 상자 안에 갇혀 이전의 생각들은 온 데 간 데 없이 숨고 그저 평범한 사람의 탈을 썼다.


육체는 본능의 감옥인가? 육체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간의 모습 안에서 영혼은 타자와 어울린다는 속박 안에 자리할 수밖에 없다. 그녀는 눈을 가진 이상 눈웃음 지어야 하고, 입을 가진 이상 달콤한 말을 해야 한다. 자유롭게 풀어헤쳐지는 유일한 공간은 달빛이 비치는 관념의 몽롱한 안갯속. 육체와 관념의 실이 뒤엉켜 너와 내가 누군지 모르게 될 때 진정 '하고 싶다'와 '하기 싫다'의 의견이 합치를 이루는 듯했다.


그렇게 생각이 들자 그녀는 근처의 꽃집으로 곧장 달려갔다. 꽃집에서 꽃 한 송이를 주문해 손에 쥐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 벽에는 형형색색으로 꽃들과 식물들이 그려져 있고, 한쪽 구석에는 기타와 작고 이름 모를 현악기가 놓여 있었다. 진열된 꽃들은 10송이씩 다발로 묶여 있거나 나름의 조합으로 꾸며져 가격이 책정돼 있었는데 아름다움에 맞는 조건들이 빈틈없이 들어찬 모양에 눈이 피곤할 지경이었다.


문득 생화를 바라보자 측은지심이 들었다. 그것은 일종의 자신을 닮았다는 점에 대한 연민, 단순히 외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점차 생명을 잃어가는 '늙어감'의 연민이었으며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죽음으로 미끄러져 내려갈 일만 남은, 삶이 가진 유일한 방향성에 대한 연민이었다.


그것은 공간과 뚜렷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는데 벽에 그려진 인상주의를 연상케 하는 각양각색의 식물 그림들 덕이었다. 그려진 식물들은 늙지 않는다. '보이는 것'이 아닌 '느껴지는 것'으로 잉태된 영혼의 자녀들, 말하자면 사라지지 않지만 동시에 변하지도 않는 고정적인 사물, 그림 속의 꽃들은 애초에 생명이란 걸 부여받지도 못했다.


꽃집은 시들어버린 꽃들을 한 곳에 모아 생화들과 동등한 자격을 부여하듯 화병에 물과 함께 꽂아두었다. 이미 '죽음'에 이른 꽃들과 죽음을 선고받아(생화는 뿌리가 잘렸다) 미끄러져가는 꽃들, 생을 부여받지 못했으나 영원성을 부여받은 꽃들, 여자는 별안간 생의 역동성을 감지했다. 그녀가 손에 쥔 순간부터 타들어가듯 색이 바래지는 꽃잎의 외침은 '살려달라'는 것이 아닌 '살아달라'는 것처럼 여자의 마음속에 휘몰아쳤다. 생의 아우성은 자신이 아닌 타자를 향하는 방식으로 더 오래 살아남는 법이고, 뿌리가 잘린 꽃은 그러한 사실을 정확히 아는 듯 그녀의 정신을 애무했다.


갑작스러운 허기짐에 꽃잎에 입을 가져가 살짝 뜯어먹어본다. 이내 표정을 찡그리고는 짐을 챙겨 밖으로 나섰다. 늦은 점심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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