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주인 되기
이른 아침, 어디선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잠결에 “이게 무슨 소리지?” 싶었지만, 알려줄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늦잠 자고 있는 요한을 깨울 수도 없었다.
잠시 후, 학교에서 북쪽으로 10여 분 거리의 집으로 향해 걷던 중, San Gwann 동네 성당 부근에서 폭죽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침의 그 이상한 소리가 여기서 나온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통 이 몰타라는 나라의 리듬을 모르겠다는 답답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누가 일일이 설명해 주는 것도 아니고, 영어에 자신이 없어 뭘 물어보려면 번역기부터 돌려야 하니 혼란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짐을 서둘러 정리하고, 오늘은 일요일. 전날 한국인 유학생 누님에게 한인교회에 같이 가자는 제안을 받아 고민 끝에 따라가 보기로 했다.
고등학교 때 잠깐 교회를 다녔던 기억은 있지만, 그 이후로는 전혀 가본 적 없는 나.
이 나이에 갑자기 교회에 가는 게 살짝 어색하긴 했지만, 남는 건 시간이고, 별생각 없이 참석해 보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누님은 순수하게 교회를 함께 가고 싶었던 게 아니라, 어쩌면 이번 기회에 기독교를 전파하려 했던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몰타의 Kelle라는 지역에 위치한 이 한인교회는, 도로변 작은 건물 2층에 자리 잡고 있었고, 신도들은 대부분 한인으로 구성돼 있었다.
그중엔 몰티즈 여학생도 있었고, 몇몇 외국인들도 보였지만, 처음 방문한 날이라 이들의 사연을 알 순 없었다.
어색한 자리, 낯선 분위기, 그리고 전날 잠을 설친 탓에 아침 예배 시간임에도 졸음이 쏟아졌다.
인원이 적어서 졸면 금방 눈에 띌 것 같아 눈을 부릅떴지만, 쏟아지는 졸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졸다가 깨고, 또 꾸벅꾸벅 졸다 깨기를 반복했다.
예배를 마친 후, 일행 중 한 명이 여름이면 수영하러 간다는 해변을 미리 보러 가자며 사전 조사를 제안했다.
날짜는 3월 31일. 한국으로 치면 아직 찬바람이 남아 있을 시기지만, 이곳 몰타는 벌써 더운 느낌이었다.
적도에 가까운 나라라 여름이 일찍 오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섬 입구에서 반대편 해변까지는 한참을 가야 했고, 땡볕에 그늘 하나 없는 길을 걷자니 짧은 거리임에도 꽤나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아니면 혼자 다시 와야 하잖아”라는 생각에 꿋꿋이 걸어갔다.
해변은 입장료도 없는 공공장소였고, 시내와 가까운 탓에 벌써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해변에 나온 유럽인들은 물놀이보다는 일광욕을 즐기는 편이었고, 내 눈엔 땡볕에 그냥 모래 위에 누워 가만히 있는 것이 그리 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조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일행 중 한 명이 음료수를 마시자고 제안했지만, 그때 룸메 요한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숙사에서 나를 찾는다며 급히 돌아오라는 말에 서둘러 학교로 귀가하게 됐다.
익숙한 길이라 버스를 환승하며 돌아오려 했는데, San Giljan에서 탑승한 버스가 문제였다.
“어라? 왜 반대로 가고 있지?”
버스를 잘못 탄 것이다.
실망감이 밀려왔다.
“그래, 몰랐던 내 잘못이지...”
마음을 다잡고 다시 환승 버스를 타고 30여 분이 지나서야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삿짐을 가지러 방에 들어가려 했는데, 현관 게이트가 열리지 않았다.
기한이 끝났다는 이유로 입장 권한이 해제된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사무실로 향하자, 직원이 다짜고짜 말했다.
“왜 이제 왔냐. 퇴실 시간은 오전 10시였는데 지금은 4시다. 벌금 50유로를 내야 한다.”
영문을 이해할 수 없다는 내 항변에, 직원은 처음 기숙사에 입주할 때 사인한 서류를 내밀었다.
영문으로 된 10장이 넘는 서류. 그때 나는 전부 이해하지 못했지만, 설명도 없이 서명하라고 해서 그냥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영어 초보자라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고, 구체적인 설명도 없었다. 이걸 정말 내가 이해했을 거라 생각하느냐?”
그렇게 말했지만, 직원은 요지부동이었다.
벌금은 내야 한다는 말뿐.
결국 카드로 50유로 벌금을 냈고, 화가 난 나는 “불만사항을 정식으로 학교 본부에 접수하겠다!”라고 강하게 말했다.
직원은 팀장의 이메일 주소만 덜렁 건네주었고, 대학 본부 이메일을 달라 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언어 초심자인 외국인이고, 사전에 안내나 연락만 있었어도 이런 일은 피할 수 있었다.”
내 입장을 설명해 보았지만, 직원의 반응은 싸늘했다.
기숙사를 나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정이 들어 섭섭했던 것도 있었지만, 벌금까지 내고 나니 감정이 몇 배로 상했던 것이다.
내 잘못도 있지만, 이건 좀 억울했다.
누구에게 말해도 공감받기 힘들 거란 걸 알기에, 그냥 마음속으로 삭이려 했다.
하지만 돈이 나가니 억울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관할 시청이나 정부기관에 고발이라도 할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불만사항 접수 정도는 번역기를 쓰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일이 커지면 랭귀지스쿨 쪽에서도 나를 좋게 보진 않겠지.
그래도 이런 일을 계기로 학생들에 대한 기숙사 서비스가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 된 문서를 꼼꼼히 확인했어야 했는데, 그러기엔 여유가 없었고 결국 돈만 날리게 된 것이다.
몇 번째 실수인지 모르겠다.
스스로를 탓하기도 하지만, 외국에서라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나 자신을 다독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