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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집주인과의 제2라운드, 다시 시작된 전쟁

세상의 주인 되기

by Jay Kang

오늘은 수요일, 이 집에 이사 온 지 벌써 3일째다.

3월 31일 이사를 마치고 맞이한 세 번째 아침, 긴장감은 여전하다. 집주인은 늦잠을 자는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괜히 눈치를 보게 된다. 싱크대를 열거나 서랍을 닫을 때도 사소한 소리가 신경이 쓰인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내 돈 내고 사는 월세방인데 왜 이리 불편하지.”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며 자괴감이 밀려왔다.

내 방에는 책상이 없어 예습은 거실 테이블에서 마쳤고, 간단히 시리얼이라도 먹으려 상을 차리다가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집주인이 양초 여러 개를 켜둔 것이다.

“향을 좋아하나 보다.”
그 정도로만 생각하고 급히 학교 갈 채비를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김치 냄새 때문에 밤새내내 향초를 피워 놓은 것이었다.


학교에서는 문법 선생님 Kevin이 오늘도 꽤 많은 시간을 문법에 할애했다. 몇몇 학생들은 그의 수업 스타일에 불만이 있었지만, 나는 그가 하는 말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바짝 긴장하며 수업에 집중했다. 그렇게 오전 수업이 금세 끝났다.


집으로 돌아와 점심으로 수제 햄버거를 만들려고 했지만, 프라이팬이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약속 시간이 다가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서, 결국 일반 냄비에 기름을 두르고 양배추를 볶았다. 패티도 눌어붙지 않게 조심하며 햄버거를 만들었다.


오늘 저녁엔 새로 온 일본인 여학생 Fumika, 몇몇 친구들과 함께 몰타 남서쪽 해안가의 명소 Dingli Cliffs에 석양을 보러 가기로 했었다. 버스와 택시를 번갈아 타고 이동해 깎아지는 절벽 끝에서 느긋하게 석양을 즐겼고, 시간은 어느새 훌쩍 지나버렸다.

몰타의 날씨는 낮에는 초여름 같지만 해가 지면 섬 특유의 찬바람이 몸을 휘감는다. 가벼운 재킷으로는 버거운 추위였다.


늦은 귀갓길, 걱정이 하나 생겼다.
전날 집주인에게 “저녁은 매일 7시 이전에 끝내 달라”는 문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밤 9시. 밖에서 식사하기엔 시간이 늦었고, 이곳의 빵 위주 식사는 입맛에 맞지 않아 결국 햇반으로 간단히 해결하기로 했다.

집에 들어서니 집주인 에밀리가 거실 식탁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배가 너무 고파 “뭐라 하든 말든 일단 먹자”는 생각이 앞섰다.


햇반을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접시와 숟가락을 꺼냈지만 식탁에 앉아 있는 그녀의 앞에서 식사하는 건 너무 불편할 것 같았다. 결국 방으로 밥을 들고 들어가다가 김치와 포크를 깜빡하고 두고 온 것이다.

그때,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집주인 부엌


점심에 햄버거를 만들다 사라진 프라이팬이 생각나 물었다. 그녀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우리 집에는 프라이팬이 없어요.”

순간 어이가 없었다.


몰타에서는 대부분 주방 도구를 집주인이 구비해 놓고 세를 놓는다. 월세 계약에 포함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프라이팬이 없다는 대답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그녀의 태도에 실망감이 밀려왔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내가 “시끄럽다”라고 말했다.

“도대체 뭐가요?” 하고 되물으니, 그릇 꺼내는 소리, 전자레인지 소리 등이 시끄럽다는 것이었다.

포크를 내던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이 정도는 생활 소음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윗집, 아랫집에서도 불평이 나올 수 있다”라고 말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억지로 평정심을 유지하며 말했다.
“이 집은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이 아닌 것 같아요.”

그러나 그 말은 영어로 완벽하게 표현되지 않았고, 대화는 서로 엇갈리기만 했다. 더 말해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식사를 해야 해서 그만 얘기하겠습니다”라고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책상도 없이, 불편한 방에서 식사를 하는 내 모습이 너무도 처량하게 느껴졌다. 책상은 이사 오기 전에 준비해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도 들어올 기미가 없다.

복도


‘그냥 이 집을 나갈까?’
보증금 500유로(한화 약 75만 원)를 포기하면 되지만, 이 상황에서 나가는 건 비자 문제로 더 복잡해질 수 있었다. 4월 초에 접수한 비자가 심사 기간만 한 달이라고 하니, 그전까지는 억지로라도 참아야 할 것 같았다.

홧김에 계약을 파기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냥 아무 말 없이 식기를 정리하고, 집주인의 눈길도 피한 채 방으로 들어와 조용히 문을 닫았다.


화가 끓어올라 문을 세게 닫고 싶었지만, 최대한 참았다.

‘한두 달만 더 버텨보자. 그래도 불편하면 학교 기숙사로 돌아가거나 다른 집을 얻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이런 다짐으로 또 하루의 분노를 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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