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불태우고

<자유를 향한, 마음지도>30

by 이기담

이야기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하지?”


째째의 마음이 비명을 질렀다. 힘들게 학교를 졸업했는데, 어렵게 2년여의 절망과 우울에서 벗어났는데, 또다시 결정하지 못한 미래는 장벽으로 섰다. 세상 전체를 알지 못하는 답답함은 가슴을 짓눌렀다. 지독한 우울과 절망에서 잡은 동아줄은 부는 바람에 그네를 탔다. 째째는 그네 위에서 어지러웠다.


겪는 모든 일이 세상이라는 나무의 나뭇잎일 테니 반응하고 이해해야 했지만, 보고 듣는 소소한 일들에 생겨난 감정들은 제각각 목소리를 높여 제가 잘났다, 소리를 질러댔다.

째째는 고요해지고 싶었다. 그 모든 감정들을 평온한 마음으로 들여다보고 싶었다. 슬픔 감정에 한 번, 화난 감정에 한 번 그네를 타는 것이 아니라.


졸업을 했는데, 째째는 하고픈 일도 찾지 못했다.

째째는 또다시 절망했다. 앞에 닥치는 새로운 상황 앞에 또다시 길을 잃었다. 삶은 언제나 말끔한 새 얼굴로 다가와 째째를 시험했다. '어떡할래' '어떡할 거야?'


째째의 마음이 말했다.


“출가해.”

“이렇게 계속 살 거야? 갈등만 반복하면서?”

“오랜 네 꿈이었잖아.”

“…….”


째째는 출가를 실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째째는 결심을 실행하기 위한 당장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출가는 새 삶을 위한 선택. 당연히 과거의 삶은 죽은 삶. 죽은 삶의 흔적은 없애는 게 맞았다.


그게 무엇일까.

째째는 보물단지처럼 들고 다녔던 소중히 여긴 것들을 꺼내 놓았다. 일기와 사진들. 사실적인 존재로 째째의 삶을 드러낼 기록들. 째째가 써 온 물건들이야 가족들이 처분하면 될 것.


째째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써 온 일기와 사진들을 들고 사는 집 공터로 나갔다. 마침 공터에는 태울 용도의 드럼 깡통이 있었다. 누가 앞서 무엇을 태운 것일까, 그곳엔 불씨가 남아있었다. 째째는 그곳에 가지고 온 일기와 사진들을 집어넣었다.


새로운 불쏘시개를 만난 불길이 화륵, 타올랐다.

째째의 과거가 불타올랐다.






덧붙이는 생각


그때 나는 정말 과거를 불태웠나?


아니다. 나는 불태우지 못했다. 애꿎은 과거의 내 기록과 사진들만 재로 만들었다.

결심은 그때의 결심으로 끝났고, 방황은 그때의 방황으로 끝났다.


일기와 사진을 불태우고 갔던 운문사가 생각난다.

청도에 있는 운문사는 여승들이 사는 비구니 사찰. 나는 그곳에서 오래도록 여승들의 울력을 지켜보았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는 모두 밀짚모자 안에 숨어 보이지 않았다. 회색 승복을 입은 비구니 스님들은 운문사 곁 밭에서 일을 했다.


그때 나는 나의 모든 것을 걸고 갈등했다.

출가하고 싶은 십여 년의 세월의 마음을 걸고

출가해 깨닫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출가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깊게 저울질하며.

늦은 오후 나는 운문사에 등을 돌렸다. 운문사의 스님과 상담도 하지 않았다. 되돌아 터벅터벅 세상을 향해 길을 나섰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유독 아침잠이 많은 내가 새벽 3시 반이면 일어나 예불을 드리고, 하루의 모든 일과를 승가의 규율에 맞춰 생활할 자신이 없었다. 규율에 맞춰 살아야 하는 생활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규율에 묶여 질식할 것 같았다.

송광사에서 경험한 4박 5일의 출가 경험이 망설임을 부채질했다. 그때 했던 경험, 8시간의 좌선, 매일의 108배, 마지막 철야 정진과 1000배의 고통.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참선 중에 쏟아지는 졸음이었다. 졸음은 고등학교 3년 동안 겪었던 고통을 되살렸다.

더불어 ’꼭 출가를 해야만 깨닫나?‘ 하는 어깃장 마음이 슬그머니 머리를 디밀었다.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올 것 같은 예감도 따라붙었다.


돌이켜보니 일기와 사진들을 태웠다고는 하나 그곳에서 갈등했다는 건 이미 결과를 함의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깨달음에 대한 열망이 부족했음을 인정해야겠다. 세속에서 이루고픈 욕망 또한 있었음을 고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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