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향한, 마음지도>31
“우리 신문에 소설을 연재해 보는 게 어때요?”
“소설을요?”
“네. 글을 잘 쓰시는 것 같던데. 지면을 줄 테니 소설을 써봐요.”
째째에게 제의를 한 사람은 불교 소식을 다루는 주간신문의 기자였다. 그 기자는 출가를 했다가 환속을 한 사람이었다. 얼굴이 넉넉하고 마음 품이 넓었던 여자 사람. 째째와는 신문사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사이.
그즈음, 째째는 불교 주간지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출가에 대한 마음을 접은 뒤, 얻은 직장이었다.
뜻밖의 제안에 째째는 조금 당황했다.
“안 써 봤는데…….”
“써 봐요. 대신 원고료는 줄 수 없는데. 괜찮아요?”
글을 쓰면서 사는 인생을 째째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출가 대신 세상에 남기로 한 뒤, 무슨 일을 해야 수많은 나뭇잎 세상을 알게 될까 고민했고, 째째는 기자를 생각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세상일들을 마주하게 될 테니 맞춤한 직업이라 여겨졌다. 부족한 공부 탓에 메이저 언론사는 언감생심. 인연 닿은 곳이 일주일마다 불교계 소식을 담아내는 주간신문사였다.
“써 봐요.”
째째는 갈등했다. 원고료 때문이 아니었다. 새로운 일의 시작을 어떻게 해야 알지 몰라서였다. 더구나 소설 습작은 대학 시절 한번 해본 것이 전부. 책을 좋아해 많은 소설책을 읽긴 했다.
“원고료 못 줘서 미안해요.”
“원고료 때문이 아니에요.”
“그럼 해 봐요.”
째째는 고민하다가 다가온 인연을 소중히 여기기로 했다. 째째는 연재할 소설 소재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스님이었다. 출가했음에도 속세의 일 때문에 갈등하는 스님 이야기.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고통스러운 이야기. 소설 쓰기는 염려한 것보다 재미있었다.
얼마 뒤 째째의 첫 소설이 신문에 실렸다.
째째의 작가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마산 한일여실고 기숙사의 내 작은 수납함이 생각난다. 2층으로 구분돼 방 한쪽 벽에 붙어 있던 가로 60여 센티미터, 높이 90여 센티미터의 수납함. 내 수납함에는 한국 단편소설전집이 빼곡히 자리했었다. 월급을 받았을 때 제일 먼저 산 책이었다.
김유정의 <봄봄> 계용묵의 <백치 아다다>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작가들의 작품이 주를 이루었던 단편소설들은 민족의 현실을 담아 슬펐다. 자유를 잃은 자들의 고통이 담겼고, 굳이 나라를 이야기하지 않는데도 등장인물 배경은 암담했다.
작가가 되면서 내 인생은 달라졌다. 세상 속에 살면서 해야 할 일의 바탕이 달라졌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
작가가 되기 위한 습작의 시간도 없이 시작한 소설 쓰기는 이후 첫 단행본 <소서노>를 출간할 때까지 잡지나 신문의 연재는 끊이지 않고 계속됐다. 돌이켜보니 습작 없이 이어진 글쓰기는 행복보다는 고통이 많았던 듯하다. 실수도 있었다.
지금, 나는 지난날 나의 글쓰기에 대해 반성 중이다. 세상에 내 이름으로 내놓은 책들, <소서노> <대조영> <광해군> <선덕여왕> <나, 박문수>…… 등 다시 들여본다.
쓴 글을 들여다보니 부끄러워 쥐구멍조차도 과분하다.
그런데도…… 지금 이렇게 글을 쓴다.
뒤돌아보아야 반복하지 않을 실수를 배우기 위해 다시 읽는다.
사진;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