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향한, 마음지도>28
“독재 타도!”
“호헌 철폐!”
1987년 6월, 째째는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시위대 가운데 있었다. 그들과 함께 구호를 외쳤다.
“한열이를 살려내라!”
“박종철을 살려내라!”
누군가 구호를 외치면 사람들은 일제히 따라 외쳤다. 째째는 거대한 사람들과 함께 열망하고 전율했다.
째째는 고개를 들어 빌딩들을 바라봤다. 빌딩의 조그마한 창문으로 사람들이 얼굴을 포개고 있었다. 그들도 시위에 동참하고 있었다.
주장을 담은 종이들이 꽃가루처럼 하늘에서 흩날렸다.
이미 죽어버린 한열이와 종철이를 살려낼 수 없다는 건 모두가 알았다. 그래도 모두가 외치는 까닭은 다시는 한열이와 종철이 같은 희생자를 내지 않기 위한 것, 그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
군사독재가 지속되고, 체육관에서 간접선거로 대통령이 선출되는 나라에서는 제2의 한열이가 나올 것이고, 제100의 종철이가 목숨을 잃을 것이기에.
“독재 타도!”
“호헌 철폐!”
“한열이를 살려내라!”
“종철이를 살려내라!”
그러다 어느 순간.
“타타타……!!”
마음 맞춘 함성을 뚫고 최루탄이 발포됐다. 이한열을 죽이고도, 이태춘을 죽이고도 독재정권은 최루탄 발사를 계속했다.
전경들의 무자비한 진압이 시작됐다. 백골단들의 사람 사냥이 시작됐다.
뿌연 최루탄 연기 속으로 사람들이 일제히 건물들 사이로 흩어져 달리기 시작했다. 째째도 그들 틈에서 뛰기 시작했다. 목표점은 없었다. 눈을 뜰 수 없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쏟아지는 눈물, 콧물. 그때 누군가 째째의 손을 다급히 붙잡아 이끌었다.
“선배 이리요!”
째째는 흐르는 눈물 커튼 사이로 그를 알아보았다. 째째의 미래 남편이 될 학교 서클 후배였다. 째째는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 뛰었다. 등 뒤에서는 발소리와 비명이 아수라 세상의 소리로 들려왔다.
그가 빌딩 사이로 난 좁은 골목으로 째째를 이끌었다. 골목을 지나 다시 골목으로 꺽어들며 내달렸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그가 걸음을 멈추었다. 잡고 있던 째째의 손을 놓았다.
그가 말했다.
“이제 됐어요. 조금만 이곳에 있다가 가요. 그럼 안전할 거예요.”
째째는 눈물로 달록해진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고개를 끄덕였다.
돌이켜보니, 나를 구출한 남편의 행동은 오랜 시위 경험으로 터득한 노하우였던 것 같다. 학생회장으로 전대협 3기였던 남편에게 대학은 투쟁의 시간이었다.
그날, 나는 안전하게 귀가했다. 전경에게도 백골단에게도 잡히지 않았으니 안전한 귀가는 분명하다.
처음엔 그날의 이 광경을 기억하지 못했다. 이때의 일을 담은 영화 '1987'를 보며 남편은 이때의 일을 추억 삼아 이야기했고, 그제야 나는 안개 낀 커튼 뒤에 웅크리고 있던 이 일을 생각해냈다.
남편은 많이 섭섭해했다. “아니, 어떻게 그걸 잊을 수가 있어? 내가 당신 손을 잡고 뛰었는데.” 볼멘 항의도 하고.
나는 미안한 마음에 얼버무렸다.
“그러게요. 나도 내가 어이가 없네.”
기억이란 과거의 경험들이 개인의 호불호, 혹은 영향의 강약에 따라 재편집되는 것이니, 감정 담을 일은 아니지만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를 만날 때면 같은 일을 겪는다. “그 일 기억나니?”로 시작되는 과거의 같은 경험에 대한 추억담을 꺼내 놓을 때.
친구가 기억하는 일을 나는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았고, 그럴 때면 어김없이 죄책감 스민 미안함에 마음이 불편했다.
그럴 때 나는 사과했다. “미안. 기억이 안 나. 미안해.”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게 사과할 일인가…… 아닌가……?'
과거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경험을 공유한 일을 누군가는 기억하고 누군가는 기억하지 못한다. 무엇 때문인지 오래 생각했다.
인간의 마음이란 너무나 복잡하고 미묘해서 마음이 드러내는 원인에 대해 낱낱이 분석할 수 없을 듯싶다. 그래도 짚이는 건 그 순간의 집중도, 혹은 애정의 차이가 아닐지. 그러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사진 : 6.10민주항쟁/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