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몰랐다

<자유를 향한, 마음지도>27

by 이기담

이야기


“일을 하다 손가락을 다쳤다

계장은 나를 다그치고

네 잘못, 내 잘못

그게 그리 중요한가

내 어머니 가슴 무너지는데”


째째는 자기가 쓴 시를 낭독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시가 주는 제각각의 감상과 분석의 시간.

잠시 후 선배가 짧고 무겁게 입을 연다.


“슬프다.”


공감하는 사람들.


“근데, 좀 아쉬워요. 내용이 좀 더 있으면 좋을 거 같아요.”


이건 째째 후배의 말.


“쓴다면 어떤 내용이 들어가면 좋을까?”


그에 대한 선배의 질문.


“본인의 느낌요. 그게 궁금해요.”


선배가 동조의 고개를 끄덕이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째째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남자를 본다. 분위기에 당황한 듯 살짝 주춤한다. 마르고 작은 키에 착한 얼굴. 그에게 선배가 말한다.


“오, 왔구나! 어서 와.”


째째는 인사하는 그를 봤다.


“군대 갔다 오느라 학번이 늦어. 나이는 제제와 같을 거야.”


그가 씩씩하게 웃음 지으며 인사를 했다. 그와 째째의 시선이 마주쳤다. 둘은 먼 미래 서로의 짝이 될 줄 모른 채 눈인사를 나누었다. 그의 시선에 놀라움의 거리가 담겼다. 반쯤 얼굴을 가린 긴 머리에 검은색 카고 바지를 입고 담배를 문 째째의 모습은 그에게 충격이었다.


째째가 그의 시를 본 건 시화전에서였다.


아랫도리 벗고 하늘을 본다

빛바랜 신문지에 바람이 일고

버릴 거 다 버려 허리춤 동여매면

아 벗은 것보다 부끄러운


제목은 '정랑'이었다.

정랑은 화장실을 이르는 경상도 사투리.


째째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간결한 시에는 삶의 부끄러운 바닥까지 기꺼이 들여다보는 담담한 시선이 있었다. 시는 째째의 내부로 흘러들어 오랫동안 머물렀다.


더욱 충격받은 시는 다음 시였다. 시는 3미터가 넘는 거대한 흰 광목천에 쓰여 있었다.


지동골 쉰소리 들어보지”로 시작되는 시의 제목은 '지동골 이야기'였다.

시는 만가처럼 길게, 그가 태어나고 살았던 의성 지동골 이야기로 펼쳐져 있었다.






덧붙이는 생각


남편을 가까이서 본 건 첫 대면 이후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남편은 선배를 통해 자신의 고민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어 했고, 나는 약속된 학교 휴게실에서 남편을 만났다.


남편의 고민은 대학 자퇴였다.


그때, 남편의 집안 사정을 들었던가? 기억은 없다.

남편은 말했다.


“학교를 더 다녀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요. 내가 생각했던 대학은 이런 곳이 아니었는데.”


당시 내가 다닌 대학은 좋은 대학이 아닌 데다 야간이어서, 학교에 적만 둔 채 재수를 준비하는 사람이 많았다. 남편은 그런 쪽은 아니었다.


그때 무슨 말을 했는지 자세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나는 만류했다.

만류의 근거는 나의 경험. 그때 나는 1년의 휴학과 2년의 지독한 절망을 헤치고 학교로 돌아온 뒤였다. 내 손에는 나름의 해답이 있었다. 나는 그 해답을 열심히 보여주었다.


효과가 있었나? 남편은 학교에 남았다.


남편에게서 받은 인상이 마음에 남아있다.

그때 나는 울었다. 남편의 인상이 너무 선량해서. 저런 사람이 정글 같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되어서.

지금도 바보처럼 선량한 사람을 보면 눈물이 난다. 가슴이 저며지듯 아득해지며 눈물이 흐른다. 착한 이가 나쁜 세상에서 겪게 될 아픔이 선연해져 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오지랖도 넓었다!

남편은 학교에 남아 학생회장이 되었고, 군사독재에 맞서 장렬하게 싸웠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오늘도 남편은 견뎌야 받는 삶의 유지비를 벌기 위해 전쟁터에 나갔다. 회사에 출근했다.


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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