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다

<자유를 향한, 마음지도>25

by 이기담

이야기


째째는 홀로 방황했다. 동기들도 만나지 않았고, 말도 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 안으로, 안으로 침잠했다.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걸었고, 걷다가 지치면 찻집에 들어가 생각했다. 걷다가 맥주집이 있으면 들어가 술을 마시며 다시 의문에 집중했다. 그리고 다시 걸었다.

걸어 4.19 혁명탑에 갔고, 오상순 묘지에 갔다. 독재에 맞서 피 흘린 앞선 선조들을 생각했고, 그들의 삶에 헌시를 바쳤다.


째째는 니체에 빠졌다. 정독도서관에 소장된 니체의 책들을 읽고, 니체의 아포리즘 문장들을 필사하며 전율했다. 환희했다.

째째는 자신의 감상을 적었다.


'니체가 동양에 태어났다면 미치지 않았을 거야.'


세상의 시초, 세상의 끝이 '무(無)'임을 이해한 째째에게 '신은 죽었다'라고 외치는 니체의 처절함은 니체가 위치한 환경에서 온 뒤늦은 자각으로 느껴졌다.


'동양에선 아주 오래전, 이천오백 년도 더 오래전 이 사실을 알았는데.'

'석가모니는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연관돼 있고, 모두가 평등하다는 걸 알았는데.'

‘부처는 세상의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하나의 존재가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는데.'

'세상의 모든 존재는 제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평등한 존재라는 걸 알았는데.'


째째는 미쳐버린 니체의 삶이 안타깝고 슬펐다. 절대 신이라는 인식의 틀에 갇힌 서양 문화가 안타까웠다.

더불어 째째는 자신이 했던 생각이 유명세를 얻는 철학자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환호했다.

하지만…… 이 모든 인식은 조각난 인식이었다. 통합되지 못한 채 하나의 경험에 불쑥 드러나는 감정처럼 파편화됐다. 그래도 한 가지 치열한 구심점은 있었다.


'당장 내일을 살아가야 할 이유 찾기'


그러던 어느 날, 째째에게 새로운 인식이 찾아왔다. 안암동 지하 찻집에서였다.


“And the saddest thing under the sun above…….”


째째가 신청한 멜라니 샤프카(Melanie Safka)의 'The Saddest Thing'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슬픔을 더욱 슬픔 속으로 이끄는 멜라니 샤프카의 목소리. 째째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슬픔의 바닥을 향해 한없이 가라앉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슬픔과 절망에 바닥이 있다면, 그 끝이 있다면 내려가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야 다시 올라올 수 있을 테니까. 절망 그까이 거 아무것도 아냐, 하면서.


멜라니의 노래는, 그의 목소리는 다이아몬드처럼 슬펐다.

노래가 끝났다. 노래가 준 깊은 슬픔에 째째는 침잠하고 또 침잠했다. 그러다 하나의 앎이 떠올랐다.


'아, 나의 욕심 때문이었구나!'

'절망하고 우울의 바다에 난타당한 건, 내 욕심 때문이었구나.'

'세상 전체의 진실을 알고 싶은 나의 욕심 때문이었구나.'


째째는 그토록 알고 싶었던 세상의 시초에 대한 인식은 얻었으나, 실제 현존하는 세상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욕심이 지나쳐 절망했어!'


째째는 가슴 가득 채우는 작은 얻음, 그러니까, '세상의 시초를 알았다고 해서, 살아야 될 이유를 아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더불어 째째는 '느낀 세상의 시초에 대한 인식이 사실인지 또한 확인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환희가 째째를 휘감았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을 지옥에 빠진 것처럼 견뎌야 했던 그에게 살 이유가 생겼다.





덧붙이는 생각


골똘하던 의문의 답이 떠오르면 왜 눈물부터 흐르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그때의 환희, 그때 흐르던 눈물이 생각난다. 핵심은 이것.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절망부터 해버렸다!'

'욕심 때문에 중요한 진실을 보지 못했다!'

그러니까, 나는 내부의 욕심을 알아차린 것이다. 민망했다. 부끄러웠다.

나는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그때 이후 많이 달라졌다. 나는 학교에 갔고, 친구들을 만났고, 서클의 선배와 후배들과 대화했다. 내가 알게 된 것들 확인하고 싶어 사람들과 대화했다. 당연히 우울한 예전의 모습은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런데, 나는 조급했다! 어리석었다.

나는 또 다른 우를 범했는데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가 그린 지도가 바른길을 가는 것이라고, 나의 간절한 마음의 방향을 담은 나침판이 남과 북, 서와 동쪽의 방향을 제대로 가리킨다고 여겼으나, 부족했다.


불완전한 앎은 시소를 탄다. 그네를 탄다.

슬펐다가 기뻤다가.

한 번은 옳았다가 아니다가.

어리석다, 손가락질했다가, 손가락질을 받다가.


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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