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배달, 그리고 사고

<자유를 향한, 마음지도>24

by 이기담

이야기


“세상 짐은 네가 다 짊어졌니? 허구헌날 왜 그러구 다녀?!”


언니의 쨍한 목소리가 째째를 위협하듯 터졌다. 째째는 웃음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우울한 얼굴에 구부정하게 어깨를 구부린 채로 1년 반의 시간을 지내고 있었다.


“대체 왜 그래? 어? 할 공부는 안 하고 술 취해 응급실에 실려 가질 않나.”


째째는 언니의 신경질 담긴 채근에 마음의 잠긴 빗장문 고리를 더욱 힘차게 잡아당겼다.


함께 사는 언니와 째째는 많이 달랐다. 자매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외모에서부터 성격까지. 째째의 언니는 예뻤지만 째째는 평범했다. 언니는 키가 컸지만 째째는 아니었다. 물건에 대한 태도도 극과 극. 째째에게 물건은 그저 물건, 언니에게 물건은 애정 담긴 소중한 존재. 언니는 아침저녁으로 집안을 쓸고 닦는 청결한 사람이었지만 째째는 반대.


더구나 째째는 지금 허무라 스스로 이름 붙인 세상에서 조난 중이었다.


’결국 무(無)인데, 청소는 해서 뭐하지?‘

’저깟 물건들에 애정을 쏟아 무엇해?‘

’……학교는 더 다녀 뭐해?‘


아침 눈을 뜨면 달려드는 살아있다는 감각에 절망했다. 살아가야 할 하루의 시간이 괴물처럼 느껴졌다.

매일매일 절망, 매일매일의 낙담. 째째는 시간 위에 먹빛 점만 무수히 찍어댔다.


그러면서도 째째는 새벽, 우유배달을 했다. 배달해 먹은 우유값을 제때 주지 않는, 세 대의 자동차가 주차해 있는 집의 초인종을 누르고 또 눌렀다. 살아있기에 해야 할 행동을 했다. 일하고, 먹고, 마시고, 잔소리 듣는.


그런 째째에게 반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2학년 겨울방학, 3학년 1학기 등록을 앞둔 어느 하루였다.


“여기 네가 배달할 우유다.”


어두운 새벽, 째째는 대리점주가 건넨 배달할 우유를 자전거에 싣고 우유 대리점을 출발했다. 째째의 배달구역은 우유 대리점 큰길 건너. 째째는 텅 빈 도로를 건너기 위해 도로로 들어섰다. 째째의 뒤쪽에 차 한 대가 달려오고 있었지만 알지 못한 채.


길을 반쯤 건넜을까. 도로와 마찰을 일으키며 내는 타이어 바퀴 소리가 털모자 눌러쓴 째째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끼익!”

“퍽!”


짧고 강한 충격이 째째의 온몸을 강타했다.
째째의 자전거가 도로 위로 미끄러졌다. 자전거에서 튕겨 나간 째째의 몸이 도로 위에 처박혔다. 우유곽들이 방사선으로 도로 위에 흩뿌려졌다.







덧붙이는 생각


내게는 부채감 지닌 관계가 몇 있다. 그중 가장 크고 무거운 관계는 대학 1학년 때 함께 산 언니. 초등학교 4학년 때 일기를 쓰게 이끌고, 대학을 가게 했으며, 서울 생활을 함께했던 언니.


언니와 함께 자취를 한 시간은 대략 1년 반 정도였던 것 같다. 이후 서울로 올라온 엄마와 함께 살았으니, 자취가 아닌 거주인가?


거주 형태는 더 나빠졌다. 안암동 한옥집의 문 옆 방 한 칸. 부엌은 오픈된 방 옆이었고, 씻는 곳은 오픈된 공용 수돗가. 당연히 화장실도 공동화장실. 그 좁은 한 방에서 한동안 함께 살았던 오빠와의 숨 막혔던 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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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우울에 나의 환경은 얼마쯤의 요인으로 작용했을까?


가끔, 그 시절을 돌이키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는 ’거시‘ 허무 안으로 도피한 것은 아니었나. 견딜 수 없어, 바라보지 않고 시선 들어 하늘만 바라본 건 아니었나. 어릴 때부터 내 안에 자리 잡은 대자유, 깨달음이란 명제 앞에, 정작 수많은 나뭇잎 같은 세상은 바라보지 않고 외면한 건 아니었나.


교통사고 이후 나는 결단을 내렸다.


입원했던 고대 앞 병원이 생각난다.

입원실 사각 창밖으로 진눈깨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나는 결심했다. 휴학을 하기로. 3학년 1학기 등록금은 이미 낸 상태였으니 엄마이든 언니이든 휴학을 허락할 리 없었다. 나는 환자복을 벗고 학교로 향했다.

그때의 결심은 이랬다.


’살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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