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향한, 마음지도>29
송광사의 여름은 울울창창했다. 송광사를 감싸고 흐르는 계곡은 내린 비로 넘실거렸다.
“종무소로 가세요.”
절에 들어서며 목적을 설명하고 어디로 가야할지를 묻는 째째에게 보살이 말했다.
송광사는 처음이었다.
출가에 대한 꿈을 접지 못해서인가, 째째에게 사찰은 어려운 곳이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갔다가 제 마음을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움만 되 안고 돌아서는 곳. 그런 째째가 송광사에, 그것도 <출가 4박 5일>이라는 재가자 대상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일 때문이었다.
째째는 대학을 졸업하고 얼굴을 안 대학 교수의 추천으로 교수들이 주축이 된 불교단체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잡다한 협회의 일들을 도맡아 하는 간사로서였다.
종무소에서 한 스님이 째째를 맞았다.
동그란 얼굴에 눈빛이 맑은 스님이었다. 째째는 미래 남편이 될 서클 후배에게서 받았던 감정,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슬픔을 느꼈다.
째째는 합장으로 스님에게 예를 갖추었다. 스님 또한 째째를 합장으로 맞이했다. 스님의 법명은 현음이었다. 스님과 째째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지라.”
낯설지만 포근한 사투리.
“보살님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셔야 한다는 건 알고 계시지라?”
“네에.”
“실무적인 것은 우리가 다 할 것이니께, 이제부터 보살님도 프로그램에 따라 수행을 하시면 됩니다. 규칙도 철저히 따라주시고요오.”
그렇게 째째의 생애 첫 번째 참선이 시작됐다.
’출가 4박 5일' 프로그램의 규칙은 엄격했다. '묵언과 짜인 프로그램에 따라 하루 8시간 참선과 강의 준수.'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사자후를 토해내며 흘러내리는 물 많은 계곡에 걸쳐 지어진 사자루에서 이뤄졌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코끝에 집중하세요. 오직 숨만 느끼세요.”
“일어나는 생각은 그저 가만히 바라만 보세요. 생각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참선은 쉽지 않았다. 가만히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일인지 째째는 알지 못했다.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 들숨과 날숨의 호흡을 지켜보는 일이 뭐 그리 어려울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째째는 그동안 무수한 생각의 탑을 쌓으며 나름의 지도를 그려왔다. 그런데, 그 생각을 없애라니.
없애려 드니 생각은 마음 마당에서 제멋대로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인연이라고 하니 많은 사연을 담고 있을 것처럼 느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니다.
사람마다 제각각 다른 기억의 편집처럼 내게 남아있는 현음 스님의 기억은 나만의 기억일 것이다.
현음 스님을 만나던 시기, 나는 세속에서 유명했던 법정스님도 함께 만났다. 현음 스님과 법정 스님은 불교 가문에서 사형사제지간. 그러니까 형과 동생 같은 불교 족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 마음에 깊게 남은 스님은 법정 스님보다 현음 스님이었다.
이후, 송광사의 말사인 서울 경복궁 옆 법륜사에서, 옥수동 암자에서 법정 스님을 만났지만 내게 법정 스님은 언제나 현음 스님의 곁다리였다.
법정 스님과 만났던 광경이 스냅사진처럼 남아있다. 암자 한 방에서 사과를 깎아 먹던 일. 그때 법정 스님은 사과의 중심, 씨앗 부분만 남기고 모두 먹으며 말했다.
“생명을 먹는 일인데 낭비해서는 안 될 일이제.”
광경 또 하나.
송광사에 들렀다가 불일암에 들리면 소박하게 만든 학교 걸상 같은 의자가 있었고, 스님은 말했다. “여기 앉아 저 산이나 좀 보고 가시게.”
그때의 담백한 목소리와 시크한 태도의 법정 스님.
가끔 불교식의 관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을 생각한다.
현음 스님은 내가 결혼을 하던 해 돌아가셨다. 불교계에 연이 깊었던 친구는 스님의 죽음을 내게 전했다.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현음 스님이 오늘 열반하셨어. 인도에 가셨다가 풍토병이 걸려 앓다가 열반하셨대.”
그 소식을 듣기 전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처마 끝이 높다란 절의 토방을 비로 쓸어내리는 꿈, 그 토방 위에 놓인 흰 고무신 한 짝을 쓸어내는 꿈. 소식을 들으니 꿈은 예지몽처럼 느껴졌다.
지금도 가끔 송광사에 들리면 현음 스님을 생각한다. 흔적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으나, 기억하는 것으로 추모를 대신한다.
송광사 마당에 핀 붉은 여름 목백일홍 꽃을 잊지 못한다. 송광사에 머물며 들었던 새벽 예불 종소리가 내 마음에 울려 퍼진다.
사진 : 픽사베이, 법정스님 저서 <텅 빈 충만> 날개표지 사진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