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상상해보지 못한

<자유를 향한, 마음지도>35

by 이기담

이야기


째째는 아이를 낳았다.

째째는 품 안의 아기를 보았다. 이 세상에 없던 생명이 그 곁에 있었다. 붉고 작은 아기, 손도 발도 작은 아기, 손톱도 발톱도 작은 아이.


제왕절개를 한 탓에 딸을 온전히 안아본 건 퇴원하는 차 안에서였다. 째째는 가슴을 풀어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젖을 먹이지 못한 동안 익숙해진 분유 맛에 물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여보, 아기가 젖을 빨아요! 젖을 잘 먹어!!”


감격에 겨워 째째가 소리치고, 운전대를 잡은 째째의 남편이 기쁜 목소리로 화답했다.


“아유 기특해라!”


째째의 남편이 눌러놓은 마음을 토해내듯 연이어 말했다.


“아이가 처음엔 울지 않았대.”

“둘째는 절대 안 나으리라 결심했어.”

“의사가 당신 죽을 수도 있다고. 아이도 잘못될 수 있다고 서명하라는데 얼마나 겁이 나던지.”


그도 그럴 것이 째째의 임신은 전치태반이었고 수술을 하지 않는다면 많은 출혈이 불가피한 상황.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둔 의사의 요구가 이해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좀 심했다 싶었다.


째째는 수술실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렸을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수술 뒤의 통증이 있었고, 무엇보다 젖을 잘 먹는 딸아이가 품에 있었다. 품에서 젖을 먹는 아이를 안고 있는 느낌은 살면서 겪은 어떤 느낌보다 깊었다.


“너무너무 예뻐요. 정말 예뻐! 신기해.”


째째의 남편이 백미러로 그런 아내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덧붙이는 생각


“네가 수술실에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내내 기도했다. 네가 수술대 위에서 몇 번 튀어 오르는 광경이 보였어. 얼마나 두렵던지, 네가 잘못되는 줄 알고 두려워 하나님께 매달렸다. 아이도 무사하고 너도 무사하니 모두가 하나님의 은총이다.”


산후조리를 해주던 엄마가 한 말이 생각난다. 그때, 나는 엄마의 말을 흘려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수술실의 기억이 거짓말처럼 되살아났다. 내 몸이 수술대 위를 튕기듯 몇 번 올랐다 떨어지는 것, 의사들의 “왜 이래?” 당황하던 목소리까지.


기억이란 왜곡도 잘하니 확신할 수 없으나, 수술했음에도 피떡 졌던 엉덩이를 생각하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더구나 약속된 수술 날짜보다 일찍 응급으로 들어간 병원에는 담당 산부인과 의사가 없었고, 대신 인턴들이 수술을 집도했다고 했다.


엄마의 간절한 기도가 수술실의 광경을 보게 만들었을까. 그랬을 거라고 믿고 싶다. 목숨마저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엄마였으니까. 그런 내 엄마였으니까.


엄마가 되고 많이 행복했다. 지금도 행복하다.

엄마가 되면서 생명이 생명을 낳고, 생명이 태어나 한 생명에게 기대 생명을 유지하다 다시 생명을 낳아 대를 잇는 일의 존엄성과 근엄함을 알게 됐다.


우리 부부는 자주 아이의 존재에 감탄했다.


“울 딸은 기적이야! 기적!!”


그럼 어린 딸은 되물었다.


“뭐라고? 기저귀라고?”


그러면 합창하듯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 호호호, 깔깔…….

오랜만에 아이가 태어난 뒤 일 년 동안 쓴 육아일기 파일을 찾아봤다.


0000년 0월 0일

0000년 0월 0일, 음력으로는 5월 25일 오전 2시 37분 우리 예쁜 아기가 세상에 태어났다. 서울 안암동 고대병원 3층 수술실에서 여자아이로. 몸무게는 3.3kg, 신장 47cm, 두위 33.6cm, 흉위 32cm. 간호사는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빠에게 처음엔 울지 않았다고 말했다.


0000년 0월 0일

태어난 지 18일째. 감기가 들고 목에 땀띠, 그리고 배꼽의 덧 때문에 소아과 병원을 찾았다. 감기는 심한 것이 아니어서 그냥 왔고, 배꼽도 잘 나아, 갔던 길에 BCG 접종을 받았다.


0000년 0월 0일

태어난 지 28일째. 오전과 오후 내내 잘 잔 딸아이는 아빠가 양평에서 돌아온 5시 30분부터 새벽 1시까지 내내 보채며 잠을 자지 않았다. 책에서 이제야 읽은 것인데, 배앓이를 한 것일까. 처음 해보는 엄마 노릇이 쉽지 않다. 잠을 잘 자야 무럭무럭 자라고 살이 붙는다는데, 울 아기는 예민한 편인 것 같다. 아니면 지독히도 더운 날씨 때문에 발갛게 짓물러버린 목의 땀띠 때문일까. 모두가 더운 날씨에 태어나 고생이 많다고 한 마디씩 한다.


0000년 0월 0일

태어난 지 3개월 1일째. 예방접종을 한 탓인지 어제 보챘다. 밤에 잠도 잘 자지 않고서. 오늘은 조금 나은 편이지만 아침나절에 자곤 하던 잠을 자지 않고 오후에만 잔다. 어제저녁 목욕을 하고 난 후 나와 5분 정도나 되는 동안 내내 웃었다. 까르르까르르. 아, 얼마나 예쁜지.


자면서 가끔 운다. 그럴 때면 가슴이 아프다. 딸 이이가 자라면서, 자라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낄 고통을 미리 보는 것 같아서. 우리 아이가 아프지 말기를, 그리고 이 세상 고통을 모르는 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그것이 얼마나 가당치 않은 것인지 안다. 마땅히 겪게 될 아픔은 겪어야, 이 세상에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이제는 청년이 된 딸아이가 어느 날 이 육아 일기장을 보고 싶어 했다. 기억나지 않는 생후 1년 자신의 기록을 보는 딸아이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묻는 내게 웃음으로 답했던 딸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일기장을 다시 보니 부족하고 부끄러운 엄마로서 민낯도 담겨 있다. 이후 딸아이와 함께 한 시간 나는 많이 부족했다.


내 잣대를 들이대며 욕심을 부렸고, 화를 냈다. 오직 부모에게 생명줄을 기대 살 수밖에 없었던 딸아이에게 나의 부족함은 오롯이 상처가 됐을 것이다. 고통이 되었을 것이다.


부끄러움을 딛고 오늘도 마음을 들여다본다. 내가 그려온 지도를 꼼꼼하게 되돌아보고, 그려 갈 지도를 생각한다. 같은 부끄러움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 정말이지 되풀이하며 살고 싶지 않다.



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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