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향한, 마음지도>36
째째의 나이 서른다섯이던 해, 째째는 절체절명의 마음으로 소설을 쓰고 있었다.
IMF를 지나면서 은행의 이자율은 연 15%를 넘었다. 빚을 내 시작한 결혼 살림은 빚에 빚을 더했다. 이 와중에 남편의 회사도 어려워졌다. 간간이 쓰던 카드 현금서비스가 여러 개의 현금서비스로 범위를 넓혀갔다. 이자가 무섭게 불었다. 이런 상황에 째째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쓰기. 소설 쓰기.
째째는 오랫동안 마음에 담고 있는 역사 인물 ‘소서노’를 소설로 써 출판사에 보내보기로 마음먹었다.
소서노는 고주몽과 더불어 고구려를 세운 여걸. 신채호가 “우리나라 최고의 국모”라 평한 역사 인물.
째째는 역사를 좋아했다. 지나온 시간 안에 살다 간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려갈 지도의 길들이 보일 것만 같았다. 수없이 되풀이한 인간의 과오를 피할 길을 알 것 같았다.
째째는 소서노를 주인공으로 한 역사소설 쓰기에 매달렸다. 자료를 찾고, 구성하고, 없는 역사적 공백을 상상해 소설을 썼다. 소서노가 고주몽을 만나 고구려를 건국하고, 고주몽의 첫 부인 예씨부인과 아들 유리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이후 고주몽에게 배신당하는 이야기를 썼다. 첫 소설은 소서노가 두 아들,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고구려를 떠나 새나라 건국을 위해 남하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째째는 탈고한 원고를 출판사 여러 곳에 보냈다.
결과를 기다리는 초조한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다 온 메일 하나. 소설을 정중히 거절한다는 한 출판사의 연락. 그리고 이어지는 거절 연락들. 째째는 실망했다. 절망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다.
“여긴 000이라는 출판삽니다.”
소설을 보냈던 여러 출판사 중 한 곳이었다. 그즈음 백만 부가 넘게 팔린 한 소설을 냈던 출판사였다.
“보내신 원고를 책으로 내고 싶습니다. 계약하시죠.”
하늘에서 구원의 동아줄이 째째에게 내려왔다.
첫 책을 받았을 때의 느낌과 감격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전화를 받았을 때의 기쁨 또한. 그때까지 소설은 잡지와 신문에 연재 쓰기가 전부였다.
<소서노>는 잠시 베스트셀러에도 올랐다. 모두 출판사 판매 노력 덕이었다.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첫 역사소설책이 나오고 난 뒤, 다 쓰지 못한 고구려를 떠난 이후 소서노의 삶, 두 아들을 데리고 남하해 백제를 건국한 이야기를 한 권으로 더 썼고, 소서노 이야기는 다음 해 <대륙을 꿈꾸는 여인>1.2권으로 합쳐져 나왔다.(2004년 이 책은 다시 <소서노>(1.2권)란 이름으로 재 발간되었다.)
이후 역사소설 출간은 연이어 이루어졌다. <광해군>1.2권 <발해시황 대조영>1.2.3권. 그리고 세미 역사 교양서까지.
어느 날 역사 전문 출판사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해 왔다.
“온달을 소재로 책을 써보지 않겠습니까?”
일종의 대중 교양서의 집필을 해보자는 저술 의뢰였다. 그러니까, 기획은 출판사, 저술은 나. 소설이 아닌 교양서로는 처음 받은 제의였기에 부담스러웠으나, 행운이라 여겼다. 공부할 좋은 기회라 여겼다. 이렇게 나온 역사 교양서가 <온달, 바보가 된 고구려 귀족>.
나는 참고한 문헌과 인용한 논문들에 대한 출처를 꼼꼼히 밝히며 책을 썼다.
하지만 이때까지 나는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내게 온 기회들을 행운으로 여겼다. 미래에 닥칠 불행의 씨앗이 어떻게 심어져 자라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