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짝

<자유를 향한, 마음지도>34

by 이기담

이야기


“엄마. 엄마한테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

“누구? 남자?”


째째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물었다.


“그때 그 남자야?”

“응?”
“왜에, 그때 아파트 복도에서 만났던.”

“어, 맞아.”

“그러면 됐다.”


째째는 당황했다. 수년 전, 대학 후배는 째째 엄마와 짧게 조우했을 뿐이다. 그때 후배는 책을 빌리러 째째에게 왔었고 복도에서 둘은 마주쳤으며, 짧은 인사만을 나눈 채 스치듯 헤어졌었다.


“기억해?”

“그럼. 네가 남자를 집으로 데려온 건 그 사람뿐이잖어.”

“남자로 데려온 건 아니지. 책을 빌리러 후배로.”

“암튼 그 사람이면 엄마는 됐다.”

“그렇게만 보고?”

“그래.”

“그래도.”


엄마가 째째를 빙긋 웃으며 보다 물었다.


“뭐해? 직장은 있지?”

“그거야 있지.”

“방은 얻을 수 있고?”

“아마 대출받아야 될 걸? 그래도 괜찮아?”


째째가 물었고, 엄마는 대답했다.


“괜찮아. 사람만 괜찮으면 다 괜찮아.”


그 말 뒤에 다시 엄마가 째째에게 물었다.


“너는 왜 그 사람과 결혼하려고 하는디?”

“착해.”


째째는 후배를 처음 만났을 때 흘렸던 눈물을 생각했다. 너무 선량해서, 저런 사람이 정글 같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되어서 흐르던 눈물.


“그것 뿐여?”

“밝아. 참 환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성실해.”


째째는 덧붙이듯 말했다.


“그리고 참 열심히 살아.”






덧붙이는 생각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의아하다. 엄마는 스치듯 본 짧은 순간만으로 어떻게 남편의 성품을 알아보았을까.

결혼을 하기 전 엄마는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내가 우리 막내딸 첫 손주 산후 구완은 내가 해주고 떠나야 할 텐데.”

“네가 짝을 만나 잘 사는 걸 봐야 눈을 감을 텐데.”


가끔 의문이 들기도 했다. 혹 엄마는 내가 결혼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만도 다행스러워 무작정 찬성한 건 아닐까? 하하.


엄마는 당신의 소원처럼 막내딸이 낳은 손녀의 산후조리를 해주시고 돌아가셨다. 딸아이가 세 살이 되던 봄이었다.


“엄만 눈을 감으시면서도 네 걱정은 안 하셨어. 막내 사위를 믿으신 거야. 잘 살 거라 믿으셨던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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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가시는 마지막 석 달을 곁에서 지켰던 큰 언니의 말은 지금도 위안이 된다. 어쩌다 겪는 불화에서도, 불화가 길어져 생긴 이혼 위기에서도 엄마의 믿음은 나를 지켰다. 나를 키워낸 엄마의 희생은 딸을 낳으며 내게 생긴 희생의 마음으로 이어졌다. 이혼 위기에서 나를 붙잡은 건 딸아이였다. 이혼으로 받게 될 딸아이의 고통이 나의 고통을 밀어냈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희생이 우주 생명을 이어가게 만드는 에너지임을 알게 됐다.


엄마가 유언처럼 내게 하신 말씀을 기억한다.


“성질 죽여라. 성질부리지 마라. 그래야 해. 그래야 잘 살아.”


엄마는 나의 단점을 알고 있었다. 나의 타고난 성정, 삶을 단번에 무너뜨릴 파괴적인 내 안의 화에 대해.


대자유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부모에게서 받은 DNA와 살면서 만들어진 트라우마를 본다. 마지막까지 남아 대자유로 갈 마음 지도에 샛길을 만들고 구렁텅이로 잡아끄는 내 안의 힘센 나. 자존심이라는 이름으로 종종 냉정을 잃는 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든 일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나만의 잣대 들이대기. 공순이어서 가난해서 힘이 약해 당한 과거에 안간힘 쓰느라 만든 자존심은 이제 괴물로 남았다.

오늘도 그 괴물이 기웃거린다. 자신의 힘을 과시할 상황이 있나 없나 호시탐탐 노리면서.


감시만이 살길임을 안다. 마음속 괴물의 움직임을 알아차려 이별하는 길만이 괴물이 만들어낸 반복의 고통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방법임을 안다.



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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