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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수정 Apr 28. 2022

05. 춤추는 불행

차라투스트라는 말했다. “춤추는 별을 탄생시키기 위해 사람은 자신들 속에 혼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나는 말했다. 별도 싫고 춤추는 별은 더더욱 싫으니, 혼돈을 가져가 달라고. 언제나처럼 신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내 말에 귀 닫는 것은 ‘요즘의 코코’만이 아니었다.      


혼돈은 우주의 질서이다. 내 우주는 혼돈을 더욱 지랄스럽게 애정한다. 나는 혼돈에서 태어나서 혼돈에서 자랐고 혼돈을 공기처럼 마시며 살고 있다. ‘그 정도 됐으면 혼돈을 사랑해라 너도 참 징하다.’ 너는 툭하면 내게 말했다. 마치 자기 일은 아니라는 듯이.      


나는 너가 얄미웠다. 늘 힘든 것, 어려운 것은 내게 떠넘기고 너는 귀부인처럼 미소년처럼 혼돈 너머로 달아났다. 나만 빙글빙글 도는 길 위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게 니 운명이야. 그만 받아들이고 사랑하라니까. 즐기면 더 좋고.’ 너는 기분 좋은 향기를 풍기면서 싱그런 레이스가 달린 원피스를 입고 집을 나갔다. 돌이켜 보니, 내가 너를 버린 순간 보다 너가 나를 버린 순간들이 더 많았다.   

    

코코가 말해주고 나서야, 너가 상처라고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상처 너가? 헐 그럴 리가.’ 나도 모르게 이 말이 계속 새어나왔지만 나는 참고 참으며 생각했다. 그런데 진도가 잘 안 나갔다. 너와 섞여 있으면 나는 늘 진도가 잘 안 나갔다.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뚫고 쭈욱 직진하리라, 시작은 창대했던 계획이 늘 제자리를 걷는 기분을 오랜만에 느꼈다. 우리는 정말 안 맞아, 익숙한 결론을 다시 만나고 만나다가 발견했다. 너, 거기에 상처까지. 내겐 너무 과분했다. 상처는 나에게 최고 레벨이었다. 이제 겨우 입문기에 들어선 내겐 무리였다... 

쉬운 레벨부터 가자. 간만에 나는 제법 현명한 선택을 하기로 했다. 코코가 옆에서 감시하듯 지키고 있지 않았으면 그동안 해오던 대로 ‘그만 접자’ 했을까.      


나는 쉬운 레벨에 대해 생각했다. 나에게 쉬운 레벨이 뭐지? 그런 게 있긴 했던가. 나는 사는 일이 다 어려웠다. 생을 운영하는 능력이 천부적으로 부족했다. 지구가 내 별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 후 그나마 하드코어 스릴러 같던 사는 일이 조금 수월해졌을 뿐, 생은 변함없이 내게 고난이도 미션 같았다. 중노동 같았다. 그래도 꾸역꾸역 계속 살고 있기는 하고 그 사실이 그나마 내가 성취해온 생의 업적이었다. 나는 나름 오래 살았지만 그래서 어른으로 분류되지만 코코보다도 사는 일에 미숙하다. 처음 봤을 때 코코도 내 수준인 줄 알았다. 불안한 눈빛과 눈물콧물 달고 있던 코코도 나처럼 지구에 잘못 떨어진 동지 같았다. 하지만 착각이었던 것 같다. 코코는 지금 지구와 너무 잘 맞는 딱 지구 체질인 지구견, 심지어 최근엔 나를 어른으로 만들려는 하드트레이닝을 감히 시작한 고3 체육선생님 같다. 


상처와 정면대결 하길 피하느라 열심히 잔머리를 굴리는 나를 딱 걸렸어 하는 표정으로 보는 코코에게 내가 말한다. ‘살아도 살아도 초보 같은 나에게 그런 의미에서 상처는 내 생의 본질 같은 건지도 모르겠어. 근데 거기까지야. 만년 인생초보에게 생의 본질을 들이밀다니 너무 한 거 아니야?’. 코코는 어림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짜라투스트라도 말했잖아. 혼돈은 모든 존재의 필연이야. 나로 독립하려면 혼돈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통과해야 해. 모른 척 해봐야 소용없어. 넌 알고 있어. 너에게 혼돈의 다른 이름이 상처라는 걸.’          


‘헐 뭐래.’ 저노무 자슥이 갈수록 잘난 척 어려운 말을 쉬운 척 한다. 그리고 갈수록 너를 닮아간다. 너로 추방된 그녀와 닮아간다. 그녀 역시 나에게 어른 어른 독립 독립 이란 말을 귀가 닳도록 하고 또 했었다. 자기는 어른, 독립과 상관없이 지맘대로 살아놓고 나한테만 미션을 몰아주면서 강요하고 협박했던 놈, 지금 생각해도 머리 뚜껑이 좀 열리는 것 같다. 나는 옆구리를 신나게 끓어대는 코코 머리를 감정을 실어 한 대 찰싹 때린다. 마치 그녀처럼.  


그래서 접근법을 바꾸기로 했다. 어렵고 골치 아픈 거 말고 내가 좀 안다고 느끼는 것, 나랑 친한 것부터 생각하기로. 코코 말고 내가 친하다고 느끼는 것, 내가 좀 안다고 느끼는 것은? 이 질문은 너무 쉽게 답이 떠올랐다. 불행. 그러고 보니 나는 불행에 대해서는 좀 안다. 더 정확히는 불운에 대해서 좀 안다. 친하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자 세상이 내게 말했다. ‘이런 운이 안 좋군. 하필 널 원치 않는 곳에서 태어나다니 그러니  이 생은 빡셀 것 같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인 거 알지? 암튼 행운을 빈다.’ 그때 난 더럽게 재수 없다고 생각했던가? 확실히 기억나는 건 내가 당황했다는 거였다. 인생은 혼자라고? 세상에 막 태어난 갓난아기한테 그게 할 소린가?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는 표현이 딱 맞을 것 같다. 근데 세상이 내게 준 첫 메시지는 저주나 조롱이 아니라 내 인생의 핵심을 찔러주는 멘토스러운 소리였다. 내 생의 주된 컨셉 중 하나가 불운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별 출신 답게 나의 지구살이는 처음부터 삐끗거렸다. 내가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난 어긋났다. 뭐 하나 딱 맞는 게 없었다. 때로는 아슬아슬하게 때로는 엄청 커다란 구멍을 내며 합을 피해갔다. 그래서 나는 불운해 라는 말을 감탄사처럼 남발하곤 했는데 어느 순간 사람들은 불운해 보다는 불행해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합을 경험해 보고 싶어서 나도 불행해라는 말을 쓰기로 했다.       


가족에게 난 사고 같은 거였다. 내가 태어나자, 우리는 서로 당황했다. 나를 세상으로 불러 들여놓고 나를 보자 그들은 눈으로 말했다. ‘왜 왔어? 왜 니가 왔어?’ 어렸을 땐 모든 것이 그들 잘못 같았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그들도 피해자였다. 그들은 이미 아이들이 많았고 굳이 더 있어야 한다면 아들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난 일종의 불청객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 난 꽤 조심했던 것 같다. 그들에게 내가 재수 없는 사고만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너도 나에게 사고 같은 것일까. 재수 없는 사고?  ‘또 또 자학한다.’ 옆에서 발바닥을 열심히 빨고 있던 코코가 제동을 건다. 자학? 코코에게서 센 단어들이 총알처럼 날아드는 요즘, 아직 그 총알들을 자연스럽게 다룰 레벨이 안 되는 나는 서둘러 익숙한 불행에 집중한다. 너는 내게 어쩌면 불행 곧 불운 같은 거였을까. 무미건조한 내 생, 세상과 초지일관 어긋나던 내 생을 끌고 가기 위해 나는 툭하면 불행을 동반했다. 왠지 혼자는 겁이 나서 지구와 나 사이에 불행이라도 꼬봉처럼 데리고 다니며 곤란한 일들, 이해불가의 일들이 생길 때마다 나는 불행을 방패막이로 내세우고 그 안으로 숨었다. 불행은, 불운은 내 생의 보디가드였다.      


그럼에도 사는 일이 너무 벅찰 땐 신을 불러냈다. 불행과 친한 사람들은 주로 신과 놀고 싶어한다. 물론 대부분 신은 그들에게 일종의 욕받이. 불평불만받이 취급을 받긴 하지만. 가족에 소속된 사람들과도 충만한 관계, 건강한 관계를 체험하지 못한 나는 사람이 근본적으로 불편했다. 그럼에도 나도 사람인지라 나도 모르게 사람이 고플 때는 책이나 영화 같은 안전통로를 거쳐서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다 차라투스라도 만났다. 당시 나처럼 불행한 얼굴을 하고 그는 말했다. 신은 죽었다고. 오! 예.... 그럼 그렇지 신이 있다면 어떻게 이래?’ 처음엔 좋다가 문득 서늘해졌다. ‘죽어? 누구 맘대로? 그럼 난 누구랑 놀라고?...’      


신마저 없다면 내 생은 너무 심심하고 삭막할 것 같았다. ‘가지 마. 죽지 마.’ 나는 차라투스트라에게 삐딱해졌다. 그의 모든 말들에도 삐뚤어졌다. 그러고 보니 그가 하는 말들 인간이 하는 말들, 개허풍 같았다. 뭔가 심오한 것이 있는 척 온갖 똥폼을 잡고 허세를 부리지만 실은 그 말이 이 말이고 이 말이 그 말인 이렇게도 해석되고 저래도 말이 되는, 애매모호한 말들의 잘난 척 쇼에 불과한 것도 같았다. 뭐? ‘춤추는 별’? 웃기고 있네. 저게 대체 무슨 말이야? 말은 타인 뿐 아니라 자신까지 현혹시키는 사기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간들은 죽어라 말을 하는 걸까. 자신을 현혹시켜줄 뭔가가 필요해서.      


불행과 함께 뒹굴던 시절, 뭔가에 넋이 나가 있던, 멍 때리던 시절, 난 불행을 내 생의 권한대행으로 임명한 것 같았다. 뭐라도 넘치게 갖고 싶었던 것일까. 그것이 불행일지라도. 혼자뿐인 생은 아무리 타지 별 출신이라도 버티기 어려운 법이니까. 불행에게 모든 걸 다 준 결과, 모든 일이, 사람이 불행을 통해서 왔다. 불행을 잔뜩 묻혀서 왔다. 그러다 보니 생이 너무 시끄러웠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 시절의 어느 순간, 난 너를 떼어냈다. 너무 무거워서,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소란스러움에 미쳐 버릴 것 같아서. 좋을 줄만 알았다. 불행과 밀착 동거하던 시절, 나는 혼자 있어도 녹초가 되었고, 혼자 밥을 먹으면서도 체했다. ‘내 안에 적군이 있어. 살려면 몰아내야 해.’ 너는 버린 후 재밌는 일이 일어났다. 너가 없는데도 나는 계속 녹초가 되었고 혼자 밥 먹다 계속 체했다. 종일 혼자 있는데도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는데도 두통에 시달렸다. 이게 설마 너를 버린 댓가? 에이 아니겠지 암 아닐거야. 하지만 재밌는 일은 계속 일어났다. 나는 자주 균형을 잃었고 기우뚱거렸다. 몇 번 넘어진 후 현타가 강도처럼 처들어 왔다. ‘쪽팔려.’ 넘어지는 건 싫었다. 지구인들이 나를 불쌍하게 보는 것이 싫었다. 타향인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을까. 하지만 너가 비워진 나는 상실된 균형감각을 도무지 회복할 수가 없었다. 그때 난 너를 다시 찾아나섰던가. 그때 하나를 배웠다. 버리는 건 쉬워도 다시 불러들이는 건, 돌이키는 건 어렵다는 걸.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걸.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더니. 역시 너는 내 생에 도움이 안 되는 쓸모없는 놈이었다.  

       

불행과 결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무거워서보다 지겨워서 였을 것이다. 지쳐서 였을 것이다. 불행은 사실 내가 상대하기엔 너무 에너지가 넘쳤다. 내 일상에 매일 시골 5일장이 서는 것 같아서 피곤하고 정신 사나웠다. 대신 조용하고 단순한 것, 농담처럼 가벼운 것, 웃기고  재밌는 뭔가가 절실했다. 특히 만지면 따스하고 뭉클한 것, 구체적 체온과 형상을 가진 실존하는 무언가, 내 옆에 꾸준히 있어줄 뭔가가 절실했다.     

 

어긋남이 전공인 나는 인간과의 관계 역시 무능했다. 가족과의 관계에서 오히려 더 무능했다. 그래서 코코를 발견했을까. 코코는 처음 봤을 때부터 나를 웃게 했다. 나는 왜 웃는지 모르면서 웃었고 웃으면서 생각했다. ‘웃는 게 이렇게 쉬웠나.’ 웃은 이유는 계속 몰랐지만 코코를 발견한 이유는 알았다. 코코 역시 불행과 친해 보였다. 코코도 불행해가 아니라 불운해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 불행이 전념될까봐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코코가 좋았다. 편했다. 코코를 보자마자 나는 알았다. 코코가 내게 행운이라는 걸. 코코와 살면서 나는 하나 더 알았다. 내 생에도 행운이 코코처럼 내가 알아 봐 주길 기다리며 살고 있었다는 것을. 내가 코코를 미친 듯이 끌어안으며 ‘넌 내 생의 행운이야’ 선언하자 코코가 질색하며 내 품을 빠져 나갔다. 그리곤 말했다. ‘불운 행운 그런 게 뭐 딱 구분되어 있나. 걔들은 왔다갔다 하는거야. 어떨 땐 불운이었다가 어떨 때  행운이었다가. 불운, 불행, 행운 같은 식구야. 서로 호환되는.’ 내가 다시 안을까봐 뒷걸음질 치는 코코를 보며 생각했다. 하긴 처음에 너를 보내고 난 그게 행운인 줄 알았었지.      


코코가 내게 온 후, 활활 타던 산불 같던 불행이 일시에 꺼졌다. 놀라운 일이었다. 잔불은 소리없이 내 생 어디선가 타고 있었지만 일상을 잠식하던 연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난 불행  대신 코코를 내 보디가드로 임명했다. 물론 코코는 아직도 자신이 내 보디가드인 줄 모른다. 얼마간 나는 신이 났다. 불행이 행운으로 호환되는 일이 내 생에도 벌어졌나 신기했다. 근데 곧 다른 문제가 생겼다. 불행이 사라지자 불행 속에 숨어있던 내가 소환되었다. 불행이 내 생을 화산재처럼 뒤덮던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그래서 알지 못했던 내가, 모든 것이 조용해지자 나타났다. 모든 것이 깨끗해지자 화장을 지우고 민낯인 채로 나타났다.      


나는 그때... 너무 놀랐고 너무 당황스러웠고 힘들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던 첫 순간들보다도 더... 코코가 온 후 일상에서 시골 5일장은 사라졌지만 혼돈은 건재했다. 코코의 따스하고 말랑말랑한 배를 만지며 코코의 부드러운 털에 얼굴을 비비며 묻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그때부터 코코는 혼돈, 상처라는 단어에 심취해 있었다. 그냥 혼자 생각해보기로 했다. 인생은 혼자라고 이 세상이 친해 내게 말해주지 않았던가. ‘도대체 춤추는 별이란 뭘까. 뭐길래 혼돈을 요구하는가.’ 나는 처박아두었던 차라투스트라를 불러내었다. 그는 말했다. "다만 나 자신을 기다리는 것을 배웠을 뿐이다."      


지랄, 어려운 말을 쉬운 척 하는 건 코코만이 아니었다. 나는 짜증을 누르며 계속 생각했다. 춤추는 별이 어려우면 쉬운 것부터 생각하자. 그래서 춤추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난 춤을 못 춘다. 하지만 코코는 제법 잘 추는 것 같다. 늙고 뚱뚱해지기 전 코코는 내게 애교 부릴 때 혹은 기분이 좋을 때 곧잘 날렵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춤을 췄었다. 그러고 보니 춤추는 것들은 내 생 어디에나 있었다. 바람도, 나뭇잎도, 깃발도, 치맛자락도, 스카프도, 머리카락도, 계절도, 슬픔도, 염원도, 기다림도 그리고 불행도. 어쩌면 불행이 가장 신나게 가장 오래 춤을 추었던 것도 같다. 춤추는 별은 내 생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춤추는 불행은 내 생에 있었다. 그 생각에 이르자 이상하게 기분이 좀 좋아졌다. 


나는 코코를 돌아본다. 얼굴을 이불에 처박고 잠들어 있는 코코의 몸은 여전히 따스하고 몽글몽글하다.  나는 묻는다. ‘니 비법은 뭐야? 불행을 행운으로 호환시키는 비법.’ 코코가 잠꼬대 하듯 대답한다. ‘글쎄.. 춤인가? 난 춤을 좋아해 신나잖아 나는 나에게 오는 것은 뭐든 같이 춤을 췄어. 그러다 보니 나 자신을 기다리는 것을 배운 것 같아. 왜 너도 춤춰 보게?’. ‘글쎄... 니가 가르쳐준다면 뭐 생각 해 볼까.’ 나는 내 손길을 귀찮아하는 코코의 몸을 돌려서 시쿰하면서도 달짝지근한 코코의 냄새 속으로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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