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세상은 청명해진다. 청순해진다. 그런데, 지금 이 아침의 비는 추적거린다. 불순물이 섞여 있는 것처럼. 비 잘못이 아니다. 비를 보는 내 눈, 내 마음에 너가 섞여 있어서다.
꽃이 핀다. 겨울과 알싸하게 양다리 걸치던 계절의 망설임을 명쾌하게 끝내버리는 것은 늘 꽃이었다. 꽃은 얼굴이 예뻐서 아름다운 게 아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자신의 열매를 사수하는 결기, 새로운 계절을 선포하는 강인함이 아름다운 것이다. 그래서 내게 꽃 중의 꽃은 벚꽃이다. 하지만 벚꽃이 매력적인 진짜 이유는 가벼워서이다. 긴 겨울의 무게를 지탱하고 꽃으로 피어나지만 아주 짧은 시간만 자지러지게 만개한 후, 벚꽃은 이른 작별을 한다. 꽃잎들을 가늘게 조각내어 나비의 날개처럼 살랑거리다가 바람의 등에 올라타 공기처럼 세상 속으로 흩어진다. 그 눈물 날 만큼의 가벼움, 내가 눈물 나게 염원했던 가벼움으로. 그래서 나는 나에게서 너라는 조각들을 떼어내어 바람 사이로 내다 버렸나.
덕분에 몇 번의 계절, 나도 가벼웠다. 비록 허수아비처럼 휘청거렸지만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가벼워서 좋았다. 그런데 다시 무겁다. 너가 비처럼 벚꽃처럼 다시 나에게로 왔다.
나는 한껏 삐딱하게 집 안에 갇혀, 남의 세상인 듯 창밖을 본다. 봄이 왔는데 집에만 있기는 오랜만이다. 봄이면 세상이 다 내 친구 같아서 혼자 다녀도 혼자가 아닌 것 같아서 나는 종일 길들을 서성거렸다. 다 코코 때문이야. 옆에 누워있는 코코를 나는 틈틈이 째려본다. 그러다 코코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내가 얼른 얼굴을 돌린다. 그럴 때마다 내 뒤통수에 꽂혀있는 코코의 눈길이 느껴지고 끄으응 하는 코코의 소리가 들린다. ‘또 피하냐 내가 몇 번을 말해 피하면 피할수록 더 말려 더 꼬인다고.’ 나는 못 들은 척하며 귀향한 소꿉친구 같은 초록잎들을 지긋이 바라본다.
코코에게서 나를 본 날 이후, 나는 코코를 제대로 볼 수가 없다. 나도 모르게 내 안에서 새어나오는 질문들에 코코가 날름날름 대답까지 하기 때문이다. ‘맞아 니가 찾는 너 나야 나라고.’ 한 치의 흔들림 없이 확신에 찬 코코의 표정을 볼 때마다 나는 놀란다. ‘저 자식 많이 컸네.’ ‘늙어가는 중이거든.’ ‘귀도 밝은 놈.’ ‘귀는 어두워지고 있거든.’ 한 마디도 지질 않는다. 나는 코코에게서 멀찌감치 물러나며 슬쩍 코코를 본다. 내 침대에 대자로 뻗어있는 팔자 편해 보이는 저놈. 처음 만났을 때 불쌍 자체였던 그놈은 어디로 갔지? 나에게로 왔나. 요샌 내 마음을 나보다 더 잘 읽는 것 같아 틈틈이 무섭기까지 하다. 특히 내가 답을 원치 않는 질문에 더욱 정성들여 말대꾸해준다. 그럴 때마다 화들짝 놀라는 나를, 코코는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감상한다. 세상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저놈, 내가 아무리 구박해도 끄떡없는 저놈, 오히려 ‘왜 그렇게 힘주고 사냐 차례 자세 그만 풀 때도 되지 않았어?’ 측은하게 나를 보는 저놈. 세상 무서운 것도 원하는 것도 없는 저 가벼운 표정을 내가 코코에게서 보다니. 그럼에도 신기한 건 사람에게서 저런 표정을 발견했을 때의 내 반응과 다르다는 것이다. 기분이 나쁘거나 비참하거나 외롭거나 고단하거나 부럽지 않고 대신 피식 웃음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나도 모르게 나는 다시 묻는다. ‘너, 정말 나냐?.’ 그러면 코코는 눈을 감은 채 귀찮다는 듯 대답한다. ‘나라니까 이 의심 많은 인간아 인간은 항상 눈앞에 두고 못 보더라 못 보는 건지 안 보는 건지... 더는 말 안하련다.’ 저 한참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여유로운 눈빛, 저 지구 따위 내 손아귀에 있다는 듯한 불손한 자세. 그러고 보니 어디서 많이 봤던 것 같다. 코코를 잠시 쳐다보다가 나는 알았다. 저건 처음 코코를 만났을 때 내 표정, 내 눈빛이었다. 그걸 코코가 장착한 채 그때 내가 코코를 보듯 나를 보고 있다.
‘헐 누가 주인인지 개인지 너인지 나인지 내가 너 같고 니가 나 같고 왔다 갔다... 개판이네.’ 햇살이 창을 뚫고 내게 다이빙 하듯 던져진다. 그러자 머릿속이 잠시 번쩍거린다. 코코가 눈을 찡그리며 나를 보고 있다. ‘바보 니가 나고 내가 너지 너였다 나였다 왔다 갔다 하면서 사는 게 생이고’, 햇살이 코코에게 건너가는 순간 나는 문득 깨닫는다. ‘저놈 알고 보니 이상한 놈이네. 아니다. 이상한 건 나다. 내가 이상해지고 있었구나.’
코코를 내 생에 끌어들인 후, 이상한 일들이 줄줄이 생겼다. 너를 내 생에 끌어들이면 나는 이상해졌었다. 너가 내 생을 독차지하고 주인공이 돼 버리면 늘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그러다 몽롱해지고 어지러워지면서 내 생도 이상해졌다. 멀쩡하게 잘 있던 길이 안 보이고, 평화롭던 시간이 울퉁불퉁해지고, 순조롭던 일상이 우왕좌왕하고. 그럼 나는 습관처럼 물었다. ‘넌 누구냐? 나한테 왜 이래?’
‘나한테 왜 이래?’ 라는 질문이 소환되자 갑자기 내 가슴에 지진이 난다. 나는 문득 발견한다. 너와 함께 한 시간은 대부분 마음이 수십 갈래로 쪼개졌고 그 사이로 통증이 새어나왔다는 것을. 아팠다. 그랬다. 이상해지고 나면 난 늘 아팠다. 아파서 나는 너를 만들었고 너를 버렸던가.
그녀가 생각났다. 코코 이전, 나로부터 ‘나한테 왜 이래?’ 라는 질문을 가장 자주 퍼 올리게 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녀. 난 왜 그녀에게 그토록 많은 순간 ‘나한테 왜 이래?’ 라고 물었을까. 낚시 줄에 걸린 물고기들처럼 그녀에 대한 기억이 줄줄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잊은 줄 알았는데 잊은 게 아니었다. 그녀는 한마디로 마녀 같았다. ‘너 마녀였니?’ 나는 코코를 돌아보며 묻는다. 코코가 시답잖은 질문은 사양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녀가 마녀였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어디 갔을까. 한참을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죽었나? ‘그건 니 바램이고 마녀는 안 죽거든 바보야’ 코코가 나를 하찮게 보며 또 날름 대답한다.
그런가. 마음에서 서늘한 바람이 분다. 코코가 어느새 내 옆으로 바짝 다가와 콧김을 내뿜는다. ‘니가 죽여 지금이 기회야.’ 화들짝 놀라는 내게 코코가 윙크를 하는 것 같다. ‘오래 갇혀 있었잖아. 빛 하나 들지 않는 캄캄한 어둠 속에. 힘이 완전 약해져 있어. 지금이 기회야.’ 익숙한 말들이 코코에게서 흘러나오자 또다시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다. 이상한 기분은 늘 나를 떨게 했던 것 같아. 나는 떨면서 생각한다. ‘떨지 마.’ 코코가 속삭인다. ‘내가 니 편이 돼 줄게. 마녀를 퇴치하자.’ 코코의 눈을 오랜만에 한참 쳐다보았다. 코코도 간만에 부드러운 눈빛으로 우는 아이 달래듯 나를 봐 주었다. 나는 머리를 가볍게 흔들며 코코에게 말한다. ‘그럴까? 근데 니가 어떻게 알아? 혹시 너, 마녀가 보냈니?’ ‘그런가...’ 코코가 묘하게 고개를 주억거린다. ‘확실한 건 이거야. 마녀가 쉬고 싶어 한다는 거. 니가 죽여줘. 널 위해서가 아니라 마녀를 위해서.’ 나는 황망하게 코코를 본다. ‘니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마녀가 말했어. 니가 죽여야만 가벼워 질 수 있대. 그만 놓아 달래.’
나는 몽롱하게 코코를 본다. 코코가 내게로 온 것일까. 내가 코코를 발견한 것일까. 코코가 순간 마녀처럼 보인다. 코코는 할 말 많은 눈으로 나를 본다. 코코 눈동자에 내가 비친다. 마녀가 보인다. 그녀, 내가 너로 추방해 버린 후 마녀가 되었는지 마녀여서 내가 너로 추방했는지 모르겠다. 니가 너인지 나인지, 코코가 주인인지 내가 주인인지 헷갈린다. 길 잃은 아이처럼 나는 중얼거린다. ‘이제 뭘 해야 하지?.’ 코코가 답답하다는 듯 째려본다. ‘뭘 하긴. 마녀를 찾아서 놓아줘야지’ 어지러워하는 나를 코코가 물끄러미 본다. ‘너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는다며 어이그 저 꼴통.’ 코코가 오늘 할 말은 다 했다는 표정으로 몸을 돌린다. 탑처럼 이불을 쌓아올린 왕의 자리에 누워 편안하게 눈을 감은 코코가 코를 골기 시작한다.
나는 잠시 코코의 코고는 소리에 집중한다. 들은 적은 없지만 외계인의 목소리 같다. 나는 이상했고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올 때마다 시간을 정지시키고 먼 데로 도망가던 내가, 그래서 너로 추방된 내가, 오랜만에 내 일상에 내려앉아 있다. 그런 순간마다 내가 늘 그랬던 것처럼 나는 주위를 휘휘 둘러본다. 이 순간에서 나를 탈출시켜줄 뭔가를 찾기 위해. 하지만 내 눈에 코코만 우주만하게 들어온다. 저 자식이 저렇게 커졌던가. 코코의 얼굴이 현미경 너머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내가 다가오기까지 한다. 그 귀엽던 얼굴이 실은 저랬던가. 코코의 얼굴은 여러 얼굴들을 품은 미로 같다. 나는 경악한다. 그러자 거기서 낯설면서도 익숙한 얼굴이 출몰한다. 눈물 콧물 범벅인 저 아이는 누구더라. 어린 시절 내 모습인가. 그 옆으로 얼굴들이 연달아 꽃처럼 나타난다. 피곤하고 삭막해 보이는 여인의 얼굴은 엄마를 닮은 것 같고 날카롭게 날이 선, 화가 나 있는 젊은 여자는 언니와 비슷하다. 술 취한 듯 붉은 낯빛으로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남자는 아버지 같기도 하다. 질서 있게 차례로 등장했던 그 얼굴들이 다음 순간, 한 덩어리로 뒤엉킨다. 서로 싸우는 것 같기도 하고 서로에게 결박당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서로를 외면하기 위해 서로를 물어뜯는 것 같기도 하다. 한 뼘 떨어져서 그들을 지켜보는 아이는 무표정하다. 마치 영화관 스크린 같은 코코의 얼굴을 나는 영화관람 하듯 본다. 이번에 나는 확신한다. 이상한 건 나였다. 세상이 아니라, 그녀가 아니라, 나였다. 마녀는 단수형인 것 같지만 실은 늘 복수형이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린다. 코코의 얼굴에 등장했던 저들은 마녀 같다. 코코 안에 저렇게 여러 마녀가 살고 있었던가. 코코는 내가 버린 너들이 기거하던 임시숙소였던가. 실은 내가, 혹은 우리가 마녀였던가. 나는 답 없는 질문놀이에 다시 빠져든다. 이거 개미지옥인데. 다시는 안 하기로 작정했건만. 모든 게 코코 때문이야. 나는 코코를 노려보며 묻는다. ‘너 마녀지.’
젠장, 코코가 졸린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쳐다본다. ‘한심한 인간, 마녀가 왜 마년데 한심한 것들은 알아챌 수 없을 만큼 복잡하기 때문에, 여러 얼굴들로 너무 잘 위장하기에, 니가 나인 척 내가 너인척 너무 잘 속이기에 마녀지. 그렇게 겪어봐도 말해줘도 모르냐.’ 나는 코코가 처음으로 불편해진다. 저 놈 얼굴을 이불로 묻어버려야겠어. 다가가는 나를 코코가 어이없는 시선으로 째려본다.
‘그런다고 상처가 묻힐 것 같아?’
‘상처?’
‘한심한 데다 머리까지 나쁘니까 쉽게 말 할께 상처야 마녀는’
‘뭐? 뭐래’
‘마녀는 상처라고!!! 주인에게 외면당한 상처!!!!’
작은 입으로 마치 절규하듯 소리치는 코코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나는 계속 못 알아듣는 표정으로 코코를 본다.
‘뭐래. 저 자식이 이상한 거였어. 내가 아니라’
‘그래서 나를 알아본 거잖아 나도 실은 상처거든.’
나는 처음으로 코코가 난감해진다.
‘근데 난 마녀는 아니야 난 내 상처를 외면하지 않거든. 그래서 니가 날 데려온 거고.’
‘헐 미친놈. 저 자식도 내다 버릴까’
거칠어지는 내 눈빛을 빤히 쳐다보면서 코코가 말한다.
‘괜찮아. 마녀는 널 잡아먹지 않아 잡아먹은 건 너였지.’
내가 나도 모르게 난폭해지려 하자 코코가 자신의 따스한 몸으로 내 몸을 감싼다.
‘무서워마. 내가 있잖아. 난 니편이야.’
코코의 소리는 진짜 외계인 목소리 같다. 근데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외계인 목소리가 왜 이렇게 익숙한 걸까. 어쩔 줄 몰라 하는 내 손을 코코의 손이 어른스럽게 잡는다. 코코가 내 손을 잡자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이제 마녀를 만날 시간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