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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Aug 15. 2023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지 않은 신부

여자로 태어나 일생에 딱 한번 입는 가장 화려한 옷 웨딩드레스. 하지만 신부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지 않다. 비싸기만 하고 본인이 결혼하는 신부가 아닌 이상 입을 경우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얀색 드레스는 입고 싶다. 인터넷에서 하얀 드레스를 검색하기 시작한다. 평소 면으로 된 옷을 좋아하기에 하얀 면 드레스가 가장 적당할 듯싶다. '면 드레스면 나중에라도 두고두고 입을 수 있을 거야.'


신랑은 면 드레스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메이드인 차이나 아닌 거면 허락해 줄게."


요즘은 메이드인 차이나가 아닌 옷을 구하기가 하늘에 있는 별따기보다 어렵다. 신부 맘에 드는 면 드레스를 몇 개 추천해 보지만 신랑은 메이드인 차이나라며 단박에 거절한다. 화려한 면드레스를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검색하다가 결국 포기한다.


며칠 후, 신부는 영어사전 사이트를 검색해서 보고 있는데 그곳에 실린 구글 광고를 보고 경악한다.  


신부 어머니를 위한 드레스 광고

결국 신부는 드레스 검색을 포기하고 엣시싸이트를 기웃거리고 있는 신랑옆에 가서 자리를 잡는다.

최대 400달러 미만 웨딩드레스를 검색해 이것저것 보는데, 그나마 내 마음에 드는 드레스가 있다. 그런데 사이즈가 한 치수정도 작다.


"그러게. 내가 운동 좀 하고 살 빼라고 했을 때 말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니?" 신부는 천 번 눈알을 돌리고 가장 날카로운 눈길로 지긋이 신랑을 잠깐 바라본 후 다시 마음에 드는 웨딩드레스 후보를 고르기 시작한다.


찾았다!


사이즈도 딱 맞고 그렇게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신부임을 티 낼 수 있을 만한 드레스. 그런데 약간 비싸다. 350달러. 100달러 깎아서 250달러에 사겠다고 판매자에게 연락했다. 30분도 안돼서 판매자는 드레스를 우리에게 팔았다.


신랑 부모님만 모시고 간단하게 올릴 결혼식 바로 일주일 전에 드레스가 도착했다.

아뿔싸. 등에 살이 너무 많이 생겨서 드레스 뒷 지퍼가 올라가질 않는다. 평소 뱃살이 문제라고 생각하며 지냈지만 뱃살이 아닌 등살이 나의 길을 가로막을 것이란 상상조차 못 했다. 지퍼만 잠기면 그나마 입을 만 한데... 결국 신랑이 애용하는 산토스 할아버지 가게에 가서 수선을 하기로 했다.


산토스 할아버지는 50년 전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오셨다. 할아버지는 남성복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제냐 (Zegna)라는 회사에서 옷을 만드는 일을 하시다가 본인의 수선집을 차려 독립하신 분이다.

제냐 공식 홈페이지 캡처. 영어권에서는 제그너라고 부른다. 이곳 옷은.... 정말 비싸다. 셔츠 한 장에 백만 원이 훌쩍 넘는다...
신부의 드레스를 손보고 계시는 산토스 할아버지

"드레스 사이즈가 큰 거는 별 문제가 없는데, 작은 사이즈를 크게 넓히는 것은 더 어려워요. 살 때 사이즈 큰 걸로 샀어야 했는데."


사이즈를 넓히는 게 어렵긴 하지만 신부가 마음에 드는 옷감과 지퍼를 사다 주면 150달러에 수선해 주겠다고 하신다. 부랴부랴 근처 가게에 달려간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드레스와 가장 잘 어울리는 옷감을 찾았다. 다음 주 토요일에는 준비가 되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드리니, 예비수선된 드레스를 월요일에 와서 입어보라고 하신다.


그런데, 신랑이 코로나에 걸려 일주일을 앓는 바람에 타운 홀 미팅과 결혼식이 모두 취소되었다. 일감이 많이 밀려 바쁜 와중에도 드레스를 토요일까지 수선해 주겠다는 산토스 할아버지에게 미안했는데 일정이 미뤄져서 오히려 잘됐다.


코로나에서 어느 정도 회복이 된 후에 산토스 할아버지 집을 다시 찾아갔다. 블러드 오렌지가 원산지인 이탈리아에서 오신 할아버지를 위해 신랑은 블러드 오렌지도 사갔다. 오렌지를 받아보신 할아버지의 입이 귀에 걸렸다.


할아버지는 장인답게 드레스를 정말 완벽하게 수선해 놓으셨다.

지퍼는 아주 시원스럽게 올라갔다. 그런데 허리 중간에 약간 불록 튀어나온 부분이 있다. 할아버지는 핀셋으로 여기저기 표시를 하시더니 다시 예비 수선을 하신다. "이제 다시 한번 입어보세요."


불록한 부분이 마술처럼 사라졌다. 며칠 후에 찾아오라는 말을 듣고 할아버지 집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왔다.


신랑은 웨딩드레스 구매 250달러, 수선비용 150달러, 총 400달러인 웨딩드레스는 공짜와 같은 거라면서 좋아한다. 우리가 산 웨딩드레스 브랜드가 뭐냐고 신부가 묻는다. 드레스 속에는 아무런 라벨이 없다. "누군가 직접 손으로 만든 것 같아. 그래도 메이드인 차이나는 분명 아니야."


그래도 신부는 400달러나 주고 딱 두 번- 결혼식과 연회장- 밖에 입지 못할 옷을 생각하니 돈이 아깝다고 불평한다. 신부를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 신랑이 질문한다.


"넌 어렸을 때 웨딩드레스 입는 게 꿈 아니었니?"

"아니. 난 웨딩드레스 입고 싶은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신랑은 기가 막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다.


신부는 갑자기 생각에 잠긴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어하지 않아서 결혼하기까지 언 40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었나? 신부는 이제서야 웨딩드레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제고해 본다. 하지만, 한참 생각해도 결론은 똑같다. 웨딩드레스는 입고 싶지 않다. 하지만 산토스 할아버지가 마술처럼 수선해 주신 드레스는 입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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