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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새우야

내가 보는 것이 다가 아니다

by 푸른 소금

매번 반복되는 일상.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PPT를 만들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홀릭에 빠진다.

나는 누가 뭐라 해도 일 중독자임이 확실하다.

적당히라는 단어가 왠지 부담스럽고, 가만히 있으면 그 찰나의 순간마저 죄책감이 든다. 일을 붙잡고 있어야 편안해진다.

분명 병적인 게 확실하다.

하지만, 어쩌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늘 쳇바퀴 돌 듯 업무는 돌아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늘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하고 있다.

매년 자격증을 비롯해서 버킷리스트를 채워가는 게 진정한 삶의 재미였다.

3년 전에는 체지방 12%대를 만들어 바디프로필을 찍었다.

나이 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나만의 방법이랄까?

그러던 중에 삶의 무료함을 느끼게 되었다. 인생의 갱년기가 온 것이다.


우연한 책임 그리고 친구

어느 날 후배가 “형님 이렇게 일하다 쓰러져요”라며 시골 개울가에서 잡은 새우를 가져다줬다.

토하젓을 담는다는 종류였다.

아무 생각 없이 빈 통에 물을 담고 키웠다.

그런던 중 그래도 살아 있는 생물인데, 그냥 놔 둘 수가 없어서 조그마한 어항을 사고, 수초를 넣었다. 아침에 출근하자 마자 녀석들 밥을 챙기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되고, 퇴근 전에는 녀석들을 챙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작은 생명이 내게 의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묘한 위안이 되었다.


소홀해지는 마음

일이 바쁘다 보니 어항 청소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3개월쯤 지나자, 맑고 투명했던 어항은 뿌옇게

이끼가 끼어서 지저분해 보였다.

자주 가던 눈길이 소홀 해지기 시작했다. 일종의 나의 배신?

‘물이 오염되어서 버려야 할까?’ 고민이 시작되었다. 어항은 더 이상 예쁘지 않았다.

녹색 이끼가 벽면을 뒤덮고, 바닥은 떨어진 이끼 조각과, 뿌연 물은 보기만 해도 불쾌했다.

‘이건 새우들에게도 안 좋을 거 같아’, ‘차라리 물을 갈아주던가, 버리는 게 나을 거 같아’

그렇게 나는 새우를 배신하면서 시간이 흘렀다.


어항 뚜껑을 열던 순간

한가한 어느 날,

버리자는 마음으로 오염된 냄새를 예상하며, 코를 찡그리고 어항 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생각했던 오염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신선한 이끼 냄새가 났다.

아, 이게 뭐지?’ 어항 위에서 내려다보는 어항 속은 맑고 깨끗했다. 매우 평화로웠다. 벽면의 이끼,

그것이 오염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먼지보다 더 작은 수백 마리의 아기 새우가 목격되었다.

이리저리 어항벽에 붙은 이끼로 먹이 할 동을 하고 있었다.

새우들은 이끼를 통해 먹이 활동을 하고 있었고 세대를 이어가고 있었다.

내가 ‘지저분하다’,‘오염되었다’고 판단했던 그 환경이,
사실은 새우들에게 최적의 환경이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판단하는가

사람들은 자신이 보는 것, 자신에게 보이는 세상이 옳다고 판단하고 믿고 살아간다.

나 역시 그랬다. 회사에서도 그랬다. “왜 저 사람을 일을 저렇게 할까?”...

내 관점에서 내 기준에서, 내 속도로, 내 이기심으로, 내 가치관으로, 내 삶의 방식으로 모든 이들을 재단했다. 나는 관점이라는 또 다른 감옥에 그동안 갇혀 버렸다.

‘내가 보는 것이 진실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부끄럽게도 어항 속 새우가 가르쳐 줬다.


이기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보면 너무 많은 것을 놓친다.

• 타인의 진심을 놓친다. 겉으로 보이는 행동만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행동 뒤에 숨은 진심을 보지 못한다.

• 관계의 깊이를 놓친다. 내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은 멀리하기 때문에, 다른 관점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잃는다.

• 성장의 가능성을 놓친다. 틀릴 수 있는 가능성, 배울 수 있는 여지를 놓친다.

• 인생의 풍요로움을 놓친다. 하나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기 때문에, 세상이 가진 다양한 색깔과 의미를 경험

하지 못한다.


그날 이후 나는 어항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오늘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볼 것인가?’

‘내가 보는 것이 전부라고 착각하지 않을 것이다.’

‘타인의 세계도 나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기억할 것인가’

어항 속 새우들은 오늘도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다.
수초와 벽면에 낀 이끼를 먹으며, 새끼를 낳으며, 자신들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내가 오염이라고, 내가 파괴할 뻔했던 세계에서 평화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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