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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통(Show). 소통

by 푸른 소금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

뉴욕 카네기홀의 무대

오케스트라 단원이 34명. 그러나 정작 지휘자는 없다.

1972년부터 50년 넘게 이어온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바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내고 있다.

일반적인 오케스트라는 지휘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어떤 곡을 선정할 것이며, 어떤 템포로 할 것인지...

하지만, 이들은 작품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부터 모두가 참여한다.

각 작품마다 한 명의 악 장과 각 악기 파트의 리더들을 정하여 먼저 핵심 멤버 리허설을 하며 작품에 대해

논의한다.

진정한 소통의 시스템이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지휘자가 없다 보니, 한 개의 곡을 완성하는데 까지 2배 이상의 노력이 든다. 예를 들어 베토벤의 교향곡을 연주할 경우에 보통 8시간이 소요되지만, 이들은 16시간이 소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네기홀에서 20년 이상 연속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권한이 아닌 책임을 나누다

오르페우스는 전 단원이 만장일치로 곡을 해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34명의 세계적인 단원들이 만장일치 의견을 모은다. 현실적으로 꽤 어려운 과정이다. 하지만, 오르페우스는 권한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나누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게 만든다.


우리 조직의 소통은?

우리의 직장에서 소통은 어떤 형태로 운영되고 있을까? 대부분 일방향이다. 최고 결정권자나 회의주제자의

의사가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게 보편적인 모습이다.

‘소통’ 의도는 꽤 거창하다.

“자 소통 합시다.”,‘벽 깨기’,‘소통의 날’... 소통을 하기 위해 수많은 방식을 찾고 있다. 아니, 어쩌면 전시행정 또는 퍼포먼스 행정이라는 말이 맞겠다. 소통하자고 해놓고 정작 소통은 온제 간데없고 ‘쇼(show) 통’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소통의 말이라고 하면 부서원들은 ‘그냥 사진 찍는 포즈’ 정도로 생각한다.


직장에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

첫째, 형식적 소통으로 면피하기

조직의 소통은 결과 보고서에 집중한다. 워크숍, 간담회, 소통의 날... 현수막 걸고, 사진 찍고, 동원된 직원들과 예산만 낭비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상급자의 훈시, 세대 간 분임 만들기, 그리고 마지막은. 단체 사진으로 인증하기. 소통이 아니라 ‘소통 증거 만들기’ 프로젝트인 셈이다.

둘째, 권위주의적 문화

“내가 주사 때 다 해 봤는데”일명 라테. 모드.

나이, 직급, 계급, 경력이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는 조직에서는 진정한 소통이 불가능하다. 아무리 좋은 의견을 내도 관철되기가 어렵다.

오르페우스는 작품마다 리더가 바뀐다. 경력과 나이는 리더의 조견이 될 수 없다. 오로지 작품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리더가 된다. 권위가 아니라 역량과 적합성이 기준이 된다.

셋째,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찍히면 어떡하지?”괜스레 의견이랍시고 제시했다가, 오히려 ‘부정적이다.’, ‘불만이 많다.’라는 인식을 남길 거 같아 ‘입꾹닫’을 선택한다. 그래서 조직원은 침묵을 하면서 중간을 간다. 옛말에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라는 말이 마치 모범답안이 된 격이다.

넷째, 소통은 소통일 뿐

실컷 소통하자고 이리저리 공문 만들고, 언론에 홍보까지 해놓고, 의견들은 결국 생명을 얻지 못하고 책상

서랍으로 들어간다. 내일이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그렇게 흘러간다.


직장에서 진정한 소통을 위해

첫째, 시간 투자

오르페우스가 리허설 시간에 두 배를 투자하듯, 우리도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형식적인 행사에 황금 같은

시간을 쓰지 말고 실제 의사결정 과정에 구성원을 참여시켜야 한다. 당장은 비 효율적으로 보여도, 그 시간이 만들어 내는 책임감과 열정은 좋은 결과의 질을 바꿔 놓는다.

둘째, 떠드는 것을 허용

오르페우스 리허설은 시끌벅적하다. 모두가 자신의 의견을 한 마디씩 한다. 조용하고 질서 정연한 회의가

과연 좋은 소통이 될까? 의견이 부딪히고, 토론이 벌어지고, 때로는 언성이 높아지고 그것이 살아있는

소통이다.

셋째, 작은 결정부터 함께

처음부터 큰 의사결정을 하기는 어렵다.

작은 결정에 구성원을 참여시키고, 그들의 의견이 실제로 반영되는 경험을 만들어야 한다.

넷째, 책임과 권한을 함께 주기

오르페우스는 권한만 주는 게 아니라, 책임도 함께 나눈다.

만장일치로 결정했기에 모드가 그 결정에 책임을 진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의견을 물었으면, 그 의견에 대한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

다섯째. 솔직함을 보호

불편한 진실을 말한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 오히려 침묵하는 사람보다 용기 있게 문제를 제기한 사람을 인정해야 한다. “문제를 제기해 줘서 고마워” 이런 솔직함을 보호하는 존중문화를 만들어야 입을 열기 시작한다.


변화는 나부터

오르페우스는 지휘자가 없다. 하지만, 작품마다 바뀌는 리더들이 있다.
그 리더들은 지시하지 않는다. 경청하고, 조율하고, 함께 만들어 나간다.
진정한 소통의 변화는 리더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50년 넘게 지휘자 없이, 세계 수준의 연주를 만들어 낸 그들은,

시간은 더 결렸지만, 더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냈다.

그렇게 오르페우스는 50년 넘게 ‘소통의 중요성’을 증명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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