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언어로 사랑하는 법
주말에 시골집을 찾았다.
한번 치우는 청소는,
나를 기다리기라도 하듯
시작하면 끝없이 이어 진다.
한참 청소에 몰두하고 있을 때,
소파에 가만히 앉아 나를 보고 계시던 엄마가
앉으라며 손 짓을 하신다.
“왜요, 엄마? 배고파요?
홍시 하나 드려요”라는 말에
고개를 저으시더니 예상치 못한 한마디를
하신다. “나 내일부터 유치원 안 갈란다.”
순간 가슴이 철렁한다.
엄마가 말씀하시는 유치원은 ‘주간보호센터’다.
나는 그동안 매일 아침 8시면,
CCTV를 켜놓고 초조하게 화면을 지켜보았다.
말 그대로 초긴장의 연속이었다.
‘오늘은 등원을 거부하시지 않길,
등원 선생님의 손을 잡고 나서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화면을 지켜보던 시간 들.
대문을 나서는 모습이 보이면,
그제야 평온 속에서 내 하루가 시작되는
날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안 가겠다”라고 하신 것이다.
걱정이 물 밀 듯이 올라와 숨이 턱 막힌다.
“엄마 왜요?”
“힘들어요?”
“누가 괴롭혀요”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저으시더니,
이유를 말씀하신다.
“아가씨들이 집에 오고 갈 때...
나를 질질 끌고 다녀서 기분 나빠.. 힘들다.”
우리 집은 버스 정류장에서 약 30미터
정도 떨어진 골목에 있다.
센터 등·하원 선생님들은 엄마의 안전을 위해
항상 거실까지 모셔다 드리려 애쓴다.
하지만, 바쁜 발걸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엄마에게.
배려가 아니라 ‘끌려감’이었던 것이다.
한 걸음 내 디딜 때마다,
발을 어디에 디뎌야 할지? 균형을 잡고,
다음 발을 옮기는 그 모든 과정이
엄마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마음의 준비가 돼 있지 않았는데,
누군가 팔을 잡고 앞서가면,
발이 꼬이고, 숨이 가빠지고,
넘어질까 봐 두려웠을 것이다.
‘내 속도로 걸을 수 없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불편함이 아니라,
엄마에게는 통제력을 잃어버리는 두려움이었다.
나는 그날에서야 알았다.
우리는 너무 빠르고,
엄마의 세상은 너무 느리다는 것을.
치매 환자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치매는 기억을 잃는 병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엄마를 돌보는 날들이 길어질수록 깨닫는다.
치매는.
세상이 흐르는 속도를 바꿔버리는 병이라는 걸.
걷는 속도
음식을 삼키는 속도,
옷을 갈아입는 속도,
생각의 속도,
말의 속도,
무엇보다‘기억의 속도’다.
이 모든 것이
조용히, 천천히, 아주 느리게 움직인다.
그래서 누가 조금만 빨리 걸어도
그들에게는 두려움이 찾아온다.
말을 서둘러 재촉하면
자신이 또 무언가 잊어버린 건 아닌지
혼란이 찾아온다.
기다려 주지 않으면
세상이 자신을 밀고 가는 듯해
마음이 금세 지쳐 버린다.
치매 환자가 느끼는 세상은, 회전목마 같은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엄마께서 치매라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
어느 정도 기간은 ‘기다림’이 너무 길었다.
엄마의 속도는 나에게 많은 인내를 요구하였다.
하지만, 나는 내 속도만 고집하였고,
치매 발병 전 엄마의 속도를 기준으로 삼고,
엄마의 행동을 부정했다.
현실은 꽤 잔인하게도 많은 갈등을 낳았다.
‘왜 하필’, ‘엄마가 왜 저러시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엄마의 속도에
몸을 낮추는 법을 배워 나갔다.
엄마가 한 발 내딛는 속도에 맞춰 걷고,
몸 짓 만으로도 알아채고,
기억 속 단어를 찾아 드렸다.
밥 한 숟갈 떠 넘기는 시간도
작은 여백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엄마의 연세는 87세 지만,
지금은 7세 정도 아이라는 생각으로 대한다.
거창한 말보다는‘엄지 척’
“우리 엄마 괜찮아요”라는 표현이
엄마의 속도를 인정하는 인증 마크가 되었다.
센터에서 만든 종이 모형을 자랑하실 때,
작은 성취에도 함께 기뻐하고.
‘엄지 척’
소변 실수를 하셔도,
괜찮다고 안아 드리며.
‘엄지 척’
이것이 엄마의 속도를 맞추는
느림의 속도계였다.
치매 돌봄은 기술이 아니라 ‘속도의 이해’다.
치매 환자는 시간을 잃어 가는 것이 아니다.
단지, 시간을 다르게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속도를 낮춰야 한다.
그 천천함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잃어버렸던 속도인지도 모른다.
빠르게만 달려온 우리에게.
엄마의 속도는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숨을 고르고 내일을 함께 걸어 나가는,
느림의 언어 이자,
가장 깊은 사랑의 한 형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