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연신 “모르겠다”며,
자책하시는 표정을 지으신다.
가스레인지 중간밸브의 타이머가 고장 났다.
이번 기회에 작동법이 더 쉬운 제품으로 바꿨다.
그런데 엄마는 모르겠다고 화까지 내시며,
괴로워하신다.
나에게 화를 내 신게 아니라,
그것은 엄마 자신에게 향한 분노였다.
평생 가족의 밥을 챙기셨던,
그 손이 지금 가스밸브 앞에서 멈춰 버린 것이다.
할 수 없이 예전 것과 동일한 모델로 교체를 했다.
부푼 마음으로 엄마에게 작동을 해보 시길
권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엄마는 작동을 못하신다.
이 중간밸브의 기종은 치매를 앓기 3년 전부터 사용했던 것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 사용했던 바로 그 제품인데,
지금 엄마는 사용을 못하고 계시는 것이다.
엄마에게 이런 상황은 가스밸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10전부터 사용했던, 압력밥솥이 고장 난 적이 있다.
동일기종의 색상만 다른 제품을 구매했다.
그런데 엄마는 마치 거짓말처럼 작동법을 모르셨다.
색깔만 바뀌었을 뿐인데.
보일러를 틀지 못해 차가운 물로 씻는 경우도 있었다.
TV리모컨을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
커피포트를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
세탁기를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
10년, 3년을 매일 만지던 물건들.
어느 순간, 엄마에게 그것들은 낯선 것이 되어 버렸다.
뇌과학자들은 말한다.
치매는 단순히 기억을 잃는 병이 아니라,
몸이 기억하는 것까지 잊게 만드는 병이라고.
자전거를 타고 젓가락을 하는 것
몸으로 익혔다고 표현하는 것들.
그것을 절차기억이라 한다.
치매는 기억이 저장된 뇌의 영역까지 천천히 파괴한다.
더 잔인한 건, 엄마의 뇌에서 ‘익숙함’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10년 쓰던 밥솥도,
매일 보던 가스밸브도,
엄마의 뇌는 매일 아침 처음 보는 물건으로 인식한다.
색깔이 바뀌면, 그건 완전히 다른 물건이 된다.
며칠 사용하지 않으면 기억에서 지워진다.
치매 환자의 뇌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없다는 것에
가슴이 미어온다.
해마라는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는 공장이 멈춰 버렸기 때문이다.
반나절째 가스밸브 작동법을 설명하면서,
엄마의 노력하고는 상관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단지, 엄마의 뇌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늦게 알게 되었다.
이제는, 아무리 편리해도 바꾸지 않는다.
고장이 나도, 최대한 같은 제품을 찾는다.
같은 모델, 같은 색, 버튼위치, 스티커...
엄마에게 새로운 것은 그게 아무리 쉬워 보여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괴감을 느끼게 하는 또 하나의 장벽일 뿐이다.
모든 기기는 최소한의 기능을 설정하는 것이다.
전등 스위치며, 작동이 필요한 것은
모두 빨간 테이프로 눈에 띄는 표시를 했다.
야간을 위해 형광색으로 표시를 했고,
에어컨 등은 스마트 시스템으로 교체했다.
현관과 마당 전등은 센서 감지 시스템으로
교체했다.
첫째, 가르치지 말고 대신해 드린다.
둘째, 이유를 엄마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셋째, 엄마의 감정을 인정한다.
넷째, 환경을 단순화하되,
엄마를 단순화하지 않는다.
다섯째, 작은 것이라고
엄마가 하실 수 있는 걸 남겨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