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엄마의 자아와 동일시
여름 내내
푸른 잎사귀 속에 숨어 있던 호박 하나.
가을을 지나 겨울 초입,
마른 풀숲에서 발견되었다.
노랗게 익어 눈에 띄는 호박.
왠지 득탬 한 느낌이다.
골이 깊고 단단하니 참 옹골차게도 생겼다.
‘된장국을 끓여 먹을까?’
‘아니면 호박부침게?’
고민이 생긴다.
호박을 안고 집으로 들어서자
엄마께서 호박을 보시고는
얼굴을 맞대고 쓰다 듬으신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며 토닥거리기까지 하신다.
나는 그 모습이 조금 신기했다.
치매를 앓고 나서부터 사물에 대해 이렇게
애정을 보이신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이런 대접을 받는 호박으로
음식을 해 먹는다?
멋쩍지만, 조심스럽게 말씀을 건넸다.
“엄마 이 호박으로 뭘 해 먹을까요?”
“글세... 뭘 해 먹으면 좋을까?”
“엄마 호박죽 어때요?”
순간 눈을 휘둥그레하며
“그거 좋겠다.”라는 말씀을 하신다.
노란 호박을 통째로 껍질을 벗겼다.
그 순간,
껍질과 속살에 담긴 연녹색과 노란색이
섞여, 황금 빛으로 나타났다.
‘호박의 또 다른 발견?’
겉은 노랗게 익었지만,
속은 고귀한 빛깔을 간직하고 있었다.
엄마는 호박을 길게
엿가락처럼 잘라서 빨랫줄에 거셨다.
겨울 찬바람과 볕을 맞은 호박을
잘 말려서 밥에 넣어 먹거나,
고구마와 함께 쪄서 먹으면 쫄깃하고
침샘을 자극하는 단맛이 별미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건강식으로 많이들 찾고 있어서,
몸 값이 상승했다.
예전에는 가난한 이의 양식이었지만,
이제는 웰빙 식품이 되었다.
엄마께서 남다른 애정을 보이신
이유가 뭘까?라는 생각에,
호박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깊게 파인 골,
돌처럼 단단한 무게감,
씨앗 하나로 수십 개가 열리는 번식력,
척박한 땅에서도 불평 없이 자라는 생명력,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강인함.
하지만, 세상의 평가는 달랐다.
얼평과 외평의 독보적인 위치,
뚱뚱하고 예쁘지 않은 사람들의 대명사,
예쁘지 않은 꽃의 대명사.
비호감 그 자체였다.
강인하지만, 아름답지 않다는
그 이상한 평가 속에서
호박은 묵묵히 자라왔다.
“엄마, 호박이 그렇게 좋아요?”라는 물음에
“아이고! 호박이 나하고 똑같다.”라는
말씀을 하신다.
순간, 나는 멈칫했다.
호박과 동일시 여기시는 엄마?
“아니, 호박이 왜 엄마하고 똑같아요?”
라는 물음에 의외의 말씀을 하신다.
“늙고 못생겼잖아. 그게 똑 같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슬픔이 가슴속을 타고 들어간다.
엄마는 당신의 삶의 흔적을
호박과 동일시 생각하고 계셨다.
깊게 파인 골은
거친 삶의 주름으로,
단단한 무게감은
평생 짊어지신 책임감으로,
척박한 땅에서 자란 생명력은
유복자 이신 엄마의 삶이었고,
예쁘지 않은 외모는
거울 속에 비친 늙어버린 엄마의 모습이었다.
엄마는 호박을 보며,
자신을 보고 계셨다.
치매를 앓으시며 점점 흐려지는 자아.
그 희미해진 자아를
엄마는 호박에서 발견하신 것이다.
치매가 진행되면서 엄마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라는,
추상적 자아개념을 유지하기 어려워지셨다.
대신,
‘늙었다’,‘못 생겼다’는
구체적인 속성으로 자신을 인식하셨다.
경계가 모호해진 자아가
호박에 투사되었다.
치매환자의 투사는
건강한 사람과 다르게
자신의 속성을 사물에서 발견하고
동일시한다.
이는 부인이 아니라,
인정의 과정이다.
호박은 엄마에게 감정기억과
자전적 기억에 깊이 새겨진 대상이다.
어린 시절 겨울철의 음식,
자식들에게 호박죽을 끓여주던 순간.
이 모든 기억들이 호박과 연결되어 있고,
치매로 많은 것을 잊으셨지만,
호박에 대한 감정만큼은 남아 있다.
그 감정을 통해 엄마는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려 하신 것이다.
심리학자 ‘에릭슨’은
노년기의 과제를
자아통합 VS 절망이라 했다.
“호박이 나하고 똑같다. 늙어서 못 생기고...”
이 말은 절망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아통합의 시도였다.
엄마는 호박을 통해
자신의 늙음을 인정하고,
호박도 쓸모가 있듯
자신의 가치를 재 발견하셨던 것이다.
치매로 인해 많은 언어 능력이 떨어지셨지만,
엄마는 호박이라는 구체적인 대상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계셨다.
손이 많이 가지만 드디어 죽이 완성되었다.
팥이며 재료를 많이 넣지 않고,
순수한 호박과 찹쌀가루만 넣고 끓였다.
처음 끊여보는 죽이지만,
눌지 않은 것만 해도 성공이다.
추운 겨울날
엄마와 마주 앉아 먹는 호박죽.
노란 호박죽이 그릇 안에서
엄마의 굴곡진 인생만큼
뜨겁고 거친 김을 내 품는다.
엄마는 한 숟가락을 드시더니,
“아들이 해준 호박죽이 맛나다”라는
말씀과 함께 미소를 지으신다.
목이 메여 눈물을 쏟을 뻔 했다.
비록,
한 숟갈의 뜨거운 호박죽이만,
엄마의 삶을 이해하게 만들고,
나를 위로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