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엄마의 의심과 아들
일주일에 3번 정도는 시골서 출근하는 일상.
오늘은 조퇴를 하고 시골집으로 향했다.
집안 청소와 빨래가 끝날 무렵,
엄마께서 주간보호센터에서 돌아오셨다.
거실 문을 여는 순간,
상기된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신다.
“아가씨들이 내 옷을 홀랑 벗겼다.”
“지그들이 뭔 이유로 나 옷을 벗기냐고”
“이젠 죽어도 안 가련다.”
“아들도 필요 없어, 니 도 너희 집 가라”
(센터 선생님들을 아가씨라고 호칭)
침대에 잠깐 누워 계시더니 화가 안 풀리셨는지,
영하 7도의 한파 속에서 마당을 휘젓고 다니신다.
급기야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 치시며,
소리까지 지르신다.
분노를 넘어선 적개심.
엄마가 특정 대상과 상황에 대해
이렇게 화를 내신 적은 처음이었다.
센터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제는 짐작이 간다.
잠시 후 센터 선생님의 문자를 받고 나서야,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센터에서 변 실수가 있었고,
옷을 갈아입히는 과정에서
엄마의 감정선이 작동된 것이다.
집에서는 그렇게 조용하고 점잖으신 엄마신데.
시간이 흐를수록 센터만 다녀오시면,
의심의 강도가 더 깊어지신다.
주요 대상은 등·하원을 도와주는 선생님 이시다.
‘방 안까지 쳐들어 온다.’
‘냉장고 속 음식을 훔쳐 간다’...
처음에는 설명을 시도했다.
“엄마 선생님들이 엄마를 보살피기 위해
방에 까지 들어오신 거예요”
엄마에게 이 상황을 말씀드렸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엄마의 감정은 고장 난 녹음기 마냥
똑같은 생각에 머물러 있었다.
상황을 이해시켜야 할까?
아니면, 그냥 맞장구를 쳐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외면해야 할까?
‘의심’이 이렇게 강해지시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깊은 고민과 함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뇌 과학을 공부한 나로서도 당황스럽다.
침착하게 엄마의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엄마는‘알츠하이머 치매’를 앓고 계신다.
치매에서 나타나는 의심은 고집도 성격문제도 아니다.
뇌의 기능 변화다.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와
판단하고 억제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손상되면서, 사실을 연결하는 능력이 무너진 것이다.
그 결과,
기억이 사라진 빈자리를 불안과 추측으로 채우게 된다.
그래서 의심은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사라지지 않고
반복적이며, 특정 대상과 상황에 고정이 되는 것이다.
첫째, 환경변화에 대한 불안
집에서 센타로 이동하는 환경에 대한 불안을 갖고 계셨다.
2년을 넘게 다니셨지만, 등하원 동선이 자주 바뀌고,
낯선 사람들과 규칙들을 엄마는
안전하지 않은 장소로 인식하고 계셨다.
둘째, 기억의 단절과 피해망상이 결합
센터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정확히 기억을 하지 못하시고, 하원 시에는
감정만 남은 상태로, 뇌는 이렇게 해석했다.
‘기분이 나빴다’ →‘누군가 나를 괴롭혔다.’→
‘여긴 위험해’로 인식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저것들이 나를 끌고 다니고”
“나를 가두려고 한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 던 것이다.
셋째, 등원 거부는 의사표현이었다.
등원 거부는 고집이 아니었다.
‘불안하고, 무섭고, 이해가 안 된다.’는
마지막 의사표현이었다.
넷째, 돌봄의 딜레마, 선생들의 역할이다.
센터 선생님들은 어려운 위치에 계신다.
어린아이 정도의 인지기능을 가지고 있는
어르신들을 돌본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선생님들의 입장에서는,
안전에 대한 필요한 지시르르 하시겠지만,
어르신들은 존중받지 못한다는 인식을 갖게 되면,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 오히려
감정만 선명하게 남게 된다.
고압적으로 느껴지는 말투,
재촉하는 손길,
선택권 없이 이끌려가는 상황들...
이 모든 것이 엄마의 뇌에는 위협적으로 기록이 된다.
엄마의 의심을 부정하면,
엄마는 더 깊은 상처를 입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의심은 부정하지 않고,
감정만을 인정하기로 했다.
즉, 사실에 동의하지 않되 감정만을 공감하는 것이다.
전략적으로 접근
엄마는 가끔씩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를 잘 따르는 할멈이랑 항상 같이 밥을 먹는다.”
“나를 엄마라고 부르며 따르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엄마와 친한 분이 몇 분 계시다는
말을 듣고 나서 전략을 바꿨다.
엄마의 존재가치를 자극하는 것이었다.
등원을 거부하시는 날이면,
“엄마 00 어르신이 엄마 식사 도움이 필요 하대요”
“엄마 어르신들께서 예쁜 어르신
왜 안 오냐고 기다리신대요”
그리고 센터 선생님께도 부탁을 드렸다.
엄마의 부정적인 감정이 발생하는
구체적인 트리거를 확인하는 것이다.
목욕거부나 특정놀이 등 대상 트리거가
무엇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전달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이 방법이 언제까지 통할지 알 수가 없다.
불안감이 파도처럼 또 아리를 튼다.
치매는 진행성 질환이다.
오늘 통했던 방법이 내일은 통하지 않을 수 있다.
엄마께서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는 또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이 심란해지고 두려움이 어둠처럼 몰려온다.
하지만, 너무 절망적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엄마의 상황에 따라 방법은 바뀔 것이다.
그 대신 변하지 않을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엄마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이다.
내가 이기적이지 않도록.
내가 세속적이지 않도록.
내가 절망하지 않도록.
내가 그 손을 놓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