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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야 Jul 24. 2022

살구 그 새콤한 맛에 고인 눈물  

삶의 단상 / 


살구, 


쳐다만 봐도 침을 꼴깍 삼키던 귀한 과일

살구는 장미과에 속한 살구나무의 열매로, 둥근 모양에 연한 주황색으로 껍질은 매우 부드러운 상처가 나기 쉽다. 살은 연하고 즙은 많지 않으나 달고 진한 향이 있다. 과육과 분리되어 매끈한 씨는 단단한 껍질 속 행인(杏仁)은 식용할 수 있고, 살구 잼에 넣어 향을 더하기도 한다. 살구라는 이름은 카탈루냐어 abercoc가 근원으로, 라틴어 ‘철 이른’이라는 뜻인 라틴어 praecoquus이다. 살구나무는 수천 년 전부터 중국 야생에서 자랐으며, 인도를 거쳐 페르시아와 아르메니아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살구에는 카로틴(프로비타민 A) 및 칼륨, 마그네슘, 칼슘, 인, 철분, 나트륨, 불소 등의 무기질이 풍부하며, 특히 살구에 함유된 당은 소화 흡수가 빠른 단당류다.


날것으로 먹거나 가루 반죽에 넣어 요리하거나 통조림을 만들기도 하고 건조해 보존 가공하기도 한다. 


아시아 동부가 원산지로 중앙아시아와 남동 아시아의 모든 지역, 유럽 남부와 북아프리카의 일부 지역에서 심고 있다.


물이 잘 빠지는 토양에서 잘 자라며, 추위와 가뭄에도 잘 견디며 적당한 조건에서는 100년 이상을 사는 것도 있다. 최대 생산국은 스페인이며 이란 시리아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및 유럽 중남부 등에서 생산된다. 


비타민 A가 풍부하며 천연 당류의 함유량이 많다. 말린 살구는 철분의 매우 좋은 섭취원이다. 한국에는 <삼국유사>에 살구꽃을 보고 봄이 깊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글로 기록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이미 살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른 봄에 꽃이 아름답게 피며, 여름에는 과실이 열리기 때문에 관상수로도 과수로도 훌륭하다. 살구 씨 말린 것을 행인이라고 하며, 진해 천식 호흡곤란, 신체 부종 등의 치료에 쓰는데, 서양에서는 수증기로 증류해서 만든 수용액인 행인유를 연고제나 주사약으로 쓴다.


살구가 벌써 이렇게 익었다. 

살구 


보기만 해도 침이 꼴깍 넘어가는 주홍빛 살구! 


추억이 참 많은 과일이다. 


어렸을 때 즐겨 부르던 동요


"고향의 봄" (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 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 노랫말처럼 내 고향은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는 산골이었다. 


흐드러진 봄날!


봄빛에 취해 몽롱한 내 시야에 눈처럼 흰 자두 꽃과 화사한 살구꽃이 가물거린다. 내 고향에서는 자두를 옹헤라고 불렀는데, 우리 집 주위에는 옹헤 밭이 많았다. 지금 서울에서 흔히 보는 작고 물렁물렁한 자두가 아니라 천도복숭아 크기의 어린아이 주먹만 한 탐스럽고 과육도 단단한 자두였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봄이 오기 무섭게 산 곳곳을 붉게 물들이며 옹긋쫑긋 피어나는 참꽃,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산으로 내달려 참꽃을 따 먹었다. 


먹고 또 먹고 하지만 배가 부를 턱이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먹을 것이 지천으로 있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마냥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다. 


왔나 싶으면 어느새 끝을 보이는 봄이 절정에 다다를 때쯤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보릿고개가 우리를 기다린다. 쌀 한 줌에 봄나물을 듬뿍 넣은 죽이 주식이었고, 그마저 맘껏 먹을 수 없던 시절.


누렇게 익어가기 시작한 보리를 보며 우리는 너 나 없이 꼴깍 침을 삼켰다.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아침 등굣길 묵시적으로 약속한 보리 서리를 위해 둘러멨던 책 보를 풀밭에 내동댕이치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보리를 꺾고 북데기를 긁어모았다. (북데기는 불쏘시개로 쓰는 마른풀을 일컫는다)


그 위에 각자 잘라온 보리 이삭을 올려놓고 불을 붙인다. 모두가 나무로 밥을 짓고 난방을 하던 때라 나무를 구하는 일은 간단치 않았다.


잘 마르지 않은 보릿대는 매캐한 연기만 피워댔고 눈물 콧물이 뒤범벅된 얼굴로 불이 꺼질까 봐 연신 책으로 책받침으로 부지런히 부채질해댔다.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보리가 익었다. 이것을 우리는 햇보리를 꼬슬려(불에 그을려) 먹는다고 했다. 


불에 검게 그을린 보리 이삭을 하나씩 손에 올려놓고 두 손으로 싹싹 비비면 빛깔도 고운 영롱한 푸르스름한 보리알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검댕으로 뒤범벅된 서로 얼굴을 보며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마른 황사바람에 휩쓸려 하늘로 날아올랐다.

한 번에 먹기 아까워 한 알씩 한 알씩 꼭꼭 씹어서 삼키던 보리 낟알.


아, 


오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모든 것이 궁할 때, 때맞추어 살구와 옹헤가 익는다. 

살구보다 값이 싼 옹헤(자두)는 그럭저럭 우리 차지가 되었지만, 값이 무척 비쌌던 살구를 얻어먹기란 달걀 한 알 얻어먹는 일만큼 드문 일이었다. 


살구는 장에 내다 팔아 돈을 만들 귀중한 농산물이었다.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살구란 비바람에 떨어진 낙과뿐,


그마저 여자인 내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떨어진 살구는 모조리 아버지와 오빠 몫이었으므로….


엄마는 낙과를 줍자마자 오빠에게 건넸고 허망하게 사라졌지만 칠 남매 중 누구보다 나를 예뻐했던 아버지는 달랐다. 


엄마를 의식한 아버지는 눈빛으로 나를 뒤란으로 부른다. 


그리고 내 손에 살구를 꼭 쥐여주시며 아버지는 소곤거리듯 말했다.


"얼른 입에 넣거라, 니 엄마 보기 전에……."

아,

그때의 행복함!


고개를 끄덕이며, 아버지가 사라지게 무섭게 커다란 살구를 반으로 쪼갠다. 

잘 익은 살구는 마치 칼로 도려낸 것처럼 살 한 점 붙지 않고 잘 쪼개지는지….

절반을 입에 넣고 나머지 절반은 호주머니에 소중히 넣어둔다.


그리고도 못 미더워 살구가 든 호주머니에서 손을 꺼내지 못한다. 


그러나 번번이 나머지 절반의 살구는 내 몫이 아니었다. 


언제 오셨는지 엄마가 내 등을 사정없이 쥐어박는다. 


"내가 못 살아. 이놈의 가시내 땜에. 느그 아버지 살구 얼매나 좋아하시는디, 아버지 입맛 다시게 놔두지 그걸 다 뺏어 처먹냐?"


눈물이 그렁거리는 눈으로 원망스럽게 엄마를 바라보며 나는 내 억울함을 호소한다. 

바로 그 살구!


몰래 내 손에 살구를 쥐여주시던 아버지. 


그런 내게 눈을 흘기시던 어머니.

며칠 전 친구와 파리공원에 갔다. 


공원 여기저기 많은 살구들이 떨어져 굴러다닌다. 사람들이 밟아 뭉개진 살구도 많다. 그 귀한 살구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천대받는다는 사실이 낯설기만 하다. 이렇게 흔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살구가 그때는 왜 그렇게 귀했었을까? 



오늘따라 아버지와 어머니가 너무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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