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목수국이 무리를 지어 피어있고 그 앞뒤로 빨갛고 분홍색과 선홍색의 플록스가 그림처럼 피어있다. 두 꽃 다 꽃송이라 크고 탐스러운 데 몽실몽실 색색의 솜사탕처럼 탐스럽다.
음악방송을 들으며 모처럼 베란다 책상 앞에 앉는다. 책을 읽다 눈이 피곤하면 다시 화단을 내려다보곤 한다. 화단에서 두러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외식을 마친 가족이 차에서 내려 서로 인사를 하는 중이다.
허리가 굽고 머리가 흰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있고, 차 문 양쪽에 서있는 중년의 남녀가 있다.
"집에 들어가서 숨도 돌리고 가면 안 되겠냐?"
허리 굽은 할머니가 아들인 듯한 중년 남자에게 말한다.
"차 많이 막혀서 안 돼요."
아들 대신 며느리인듯한 중년 여인이 대답했다.
"그렇구나."
"어서 들어가세요. 이제 그만 우리 갈게요."
아들인 중년 남자는 운전석으로 들어가며 건성으로 말한다. 반대편 조수석으로 들어가며 중년 여인은 고개를 끄덕인다. 차는 후진을 하여 출구를 향해 방향을 돌리고 허리 굽은 할머니는 지팡이에 의지한 채 꼼짝도 하지 않고 그 모습을 보고 있다.
"어머니 들어가세요. 또 올게요."
말을 마치자 운전석 유리창이 닫히고 차는 훌쩍 떠나가 버린다.
할머니는 아들의 차가 이미 사라져 보이지 않는 데도 아들의 차가 간 방향을 보고 있다. 차가 떠나고 한참 동안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바쁘다며 떠나간 아들은 자신이 사라진 다음에도 어머니의 시선과 마음이 자신의 뒤를 쫓고 있다는 사실을 알까?
그 할머니 위에 우리 어머니 모습이 오버랩된다.
우리 어머니도 그러셨다. 함께 사는 데도 내가 출근을 할 때 베란다에서 내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보고 계셨다. 나뿐이 아니라 결혼한 동생들이 집에 다녀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왜 그러느냐고 언제가 여쭤본 일이 있었다.
"그게 부모 맘이여!"
그때 엄마가 하신 말씀, 물론 부모 맘이 무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목이 메었다. 구구한 설명이 없어도 어머니의 진한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한참을 그 자리에 그렇게 망부석처럼 서 계시더니 불편한 걸음을 출입구 쪽으로 옮긴다. 혼자 간신히 걸으실 수 있는 할머니의 건강 상태가 한눈에 드러난다. 무엇이 그리도 바빠 아들 내외는 어머니를 집까지 모셔다 드리지 못하고 떠나가야 했을까?
갑자기 화가 치민다.
나라도 내려가 할머니를 엘리베이터 있는 곳까지 부축해 드릴까 하며 일어나는데 마침 한 청년이 할머니를 부축해 안으로 들어간다.
우리 화단에는 도라지가 몇 그루 있다. 이 도라지들은 모두 선물로 받은 도라지들이다.
보라색 도라지는 지금은 지리산으로 이사를 하신 할머니가 몇 뿌리 주신 것이다. 흰 도라지는 1층 사는 지인이 성지순례 갔는데 흰 도라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더란다. 도라지가 너무 예뻐 내 생각이 나서 한 뿌리 얻어왔다며 주신 것이다.
보라색 도라지를 주신 할머니는 정말 부지런하셨다.
아파트 곳곳의 빈 땅에 도라지며 봉숭아 채송화 등을 심고 가꾸셨다. 당시 나도 막 화단을 가꾸기 시작하여 할머니에게 얻은 우리 꽃도 제법 있다. 어디서 이런 모종이 났느냐고 물으니 김포에 농장이 있어 농사를 지으신단다.
할머니 덕분에 아파트에 빈 땅에는 갖가지 꽃이 심어졌고 주민들은 행복해했다. 할머니가 지리산 근처로 이사를 하신 것은 큰 아들 때문이다.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던 큰아들이 정년퇴직을 앞두고 지리산 둘레길 주변에 2억을 들여 근사한 한옥을 지어놓았는데 정년이 연장되어 이사를 할 수 없게 되자 할머니가 그 집 관리를 위해서 내려가신 것이다.
그렇게 내려가 신 지 벌써 수년이 넘었는데 그 후 할머니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해마다 도라지를 볼 때마다 부지런하셨던 할머니가 생각난다. 언젠가 내가 할머니에게 물어본 일이 있었다. 왜 이렇게 아파트 곳곳에 꽃과 식물을 심으시느냐고. 그때 할머니가 하신 말씀은 이랬다.
"이렇게 꽃을 심으면 자손들이 잘 된대요. 내 소원은 오직 하나 내 자손들이 잘 되는 것인데 내 자손이 좋다는 일이 있는데 어떻게 안 할 수가 있어요. 그러니 젊은 댁도 부지런히 꽃을 심어요. 이 이야기도 다른 사람한테는 안 알려 준거야. 나중에 자손이 잘 되는 것을 보려면."
자손이 없는 나는 웃고 말았다. 그런 이유로 할머니는 꽃을 가꾸면서 언제나 얼굴 가득히 미소가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이 이와 같다. 그런데 자식들은 정작 잘 알지 못한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이런 생각으로 어지러운데 갑자기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진다.
화단에 내려가 활짝 핀 도라지를 본다.
도라지 꽃 위로 빗방울이 맺힌다. 아들을 보내고 아쉬움에 울었을 할머니 마음처럼....
내 마음에도 비가 내린다.
도라지
도라지는 초롱꽃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학명은 Platycodon grandiflorum이다. 도라지 꽃봉오리가 풍선처럼 생겼다 하여 영어로는 풍선꽃(alloonflower)이라고 한다.
7~8월에 종 모양의 보라색 꽃이 피지만 드물게 흰색도 있다. 흰 꽃이 피는 도라지는 백도라지라고 하여 귀한 약재로 사용되었다.
민요에도 나올 만큼 우리에게는 친숙한 도라지는 우리나라 전역의 산과 들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지만 사람들의 무분별하게 채취로 요즘에는 깊은 산에서나 볼 수 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 없다. 도라지는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기 때문에 씨앗을 뿌려놓으면 쉽게 군락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 조상들은 일찍부터 도라지를 재배하여 약재나 식재료로 사용했다.
도라지 번식
도라지 번식은 씨앗으로 잘 되지만 보통 2년 이상 묵어야 뿌리채소로 먹을 수 있다.
가을에 열매 꼬투리째로 거두어 바싹 말려두었다가 씨앗을 채취해 봄이나 가을에 파종하면 된다.
도라지 효능
목이 아플 때 도라지 달인 물을 마시면 목이 편안해진 경험을 대부분 해보았을 것이다.
도라지의 주용 성분은 사포닌이다. 생약의 길경(桔梗)은 뿌리의 껍질을 벗기거나 그대로 말린 것이며, 한방에서는 치열(治熱) · 폐열 · 편도염 · 설사에 사용한다. 자료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도라지 - 심심산천에 피는 꽃 (국립 중앙과학관 - 우리나라 야생화)
도라지꽃 전설
옛날 어느 마을에 도라지라는 어여쁜 처녀가 살았다.
그녀에겐 어려서 이미 양가 부모님이 정해놓은 정혼자가 있었다.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은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총각은 중국으로 공부를 더 하겠다며 도라지에게 자신을 기다려 달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버렸다.
총각이 떠나고 해가 가고 또 이듬해가 지났지만 총각은 소식이 없었다. 소문에 의하면 총각이 중국에서 살림을 차렸다거나, 장가를 들었다는 이야기뿐이었다.
도라지는 그런 소문을 무시하고 바닷가에 나가 정혼자인 총각이 떠난 하늘만 넋을 놓고 바라보매 세월을 보냈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 꽃다운 처녀였던 도라지는 이제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되었다.
그러나 도라지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바닷가에 나가 정혼자를 기다리다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녀를 불쌍히 여겨 그녀가 정혼자를 기다렸던 바닷가에 묻어주었다.
이듬해 무덤에서 보라색 아름다운 꽃이 피어났다. 사람들은 도라지의 넋이 꽃이 되었다며 그 꽃을 도라지꽃이라고 불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