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꽃 이야기
우리 아파트 화단 곳곳에도 이 작고 아름다운 꽃이 한창이던 계절이 있었다. 지난 초여름, 마치 도토리가 보랏빛 털모자를 쓴 듯 귀엽게 피어난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름의 뜻을 다 알 수는 없어도 ‘지칭개’라는 소리는 그 자체로 친근함을 건네는 듯하다.
지칭개(Hemistepta lyrata)는 국화과에 속하는 두해살이풀로, 한국을 비롯해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 온대 지역에 널리 자생한다. 높이는 60~80cm 정도로 자라며 줄기는 곧게 서고 가지가 갈라지며, 거미줄처럼 흰 털이 드문드문 나 있다. 잎은 깃 모양으로 갈라지고 뒷면에는 흰 솜털이 부드럽게 감싸며, 5월에서 7월 사이 줄기 끝마다 자줏빛 두상화가 하나씩 핀다. 개화가 끝난 뒤에는 깃털 모양의 관모가 달린 씨앗이 바람을 타고 멀리 흩날린다.
지칭개라는 이름의 기원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여러 해석이 전해진다. 상처가 났을 때 이 풀을 짓찧어 붙이면 낫는다 하여 ‘짓찧개’가 변한 것이라는 설, 쓴맛을 여러 번 우려내다 지쳐버렸다는 데서 ‘지쳐서 지칭개’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 ‘땅과 친한 풀’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았다는 해석이나, 제주 방언의 ‘지치다’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한 가지로 단정하기 어려운 이 풀의 이름 속에는 오랜 세월 사람들과 함께한 삶의 흔적이 스며 있다.
공식적으로 정해진 꽃말은 없지만, 들꽃을 사랑하는 이들은 지칭개를 ‘끈기’와 ‘소박함’의 상징으로 본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지침’과 ‘치유’의 뉘앙스 덕분에,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강인하게 피어나는 생명력을 표현하는 데 자주 비유되곤 한다.
옛사람들은 어린 잎을 데쳐 나물로 먹었다. 특유의 쓴맛 때문에 여러 번 데쳐야 했지만, 그만큼 입맛을 돋우는 봄나물이 되었다. 민간에서는 열을 내리고 해독하며, 어혈을 풀고 상처를 아물게 한다고 하여 전초를 달여 마시거나 짓찧어 상처에 붙이기도 했다. 간 기능을 돕고 이뇨 작용이 있다는 기록도 있으나, 현대 의학적으로 확증된 바는 없으니 전통 요법으로만 참고하는 것이 좋다.
화려한 꽃들 사이에서 크게 주목받지는 않았지만, 지칭개의 존재감은 예술가들의 시선에도 포착되어 왔다. 야생화 사진가들은 바람에 씨앗이 날리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 들꽃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식물학자와 에세이 작가들은 지칭개를 “땅과 친한 풀”이라 부르며, 도시 속에서 농촌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식물로 기록하기도 했다.
길가에서 우연히 만난 지칭개는 화려하지 않기에 오히려 오래 기억된다. 보랏빛 작은 꽃송이가 여린 듯 피었다가도 바람 한 줄기에 씨앗을 멀리 보내며 생을 이어가는 모습은, 소박하지만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이다. 잠시나마 지친 마음을 쉬게 하는, 초여름 화단의 잔잔한 위로가 바로 이 지칭개가 아닐까.
https://youtu.be/uWEdkYap1C4?si=nmIyrlifmM4qOri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