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일 탄생화
저는 바카리스, 먼지와 바람이 스치는 땅 위에서 피어난 작은 들꽃입니다.
비옥하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땅에서 태어났지만 저는 그곳이 좋았습니다.
누군가는 저를 향해 이렇게 말하지요.
“이런 땅에선 아무것도 자라지 않아.”
하지만 저는 그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자라났습니다.
그곳은 제게 시작의 자리였으니까요.
사람들은 저를 보고 ‘개척’의 꽃이라 부릅니다.
길이 없으면 스스로 길을 내고,
햇빛이 닿지 않으면 바람 속에서 빛을 찾으니까요.
제 뿌리는 바위틈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리를 잡습니다.
비록 작고 볼품없는 풀처럼 보이더라도
저는 스스로의 생명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꽃입니다.
제가 사는 남쪽 바닷가 언덕에는,
저와 닮은 사람들이 살고 있답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
그들의 발자국 옆에도 저는 늘 피어 있습니다.
미국의 화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를 아시나요?
그녀는 모래와 돌, 바람뿐인 뉴멕시코 사막에서
저와 닮은 식물들을 그렸습니다.
사람들은 그 황량함 속에서 생명을 찾을 줄 몰랐지만,
그녀는 말했습니다.
“사막의 침묵 속에도 생명은 노래하고 있다.”
그녀의 캔버스 위에 그려진 풀과 꽃,
그중에는 저와 같은 국화과 식물들이 있습니다.
하얀 솜털 같은 씨앗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
바로 그것이 저였습니다.
사람들이 지나쳐 버리는 존재이지만,
예술가의 눈에는 삶의 본질과 자유의 상징으로 비쳤지요.
그녀의 그림 속에서 저는 더 이상 들풀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생명의 상징,
그것이 제 모습이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저를 화환이나 꽃다발의 주인공으로는 잘 부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용히 배경을 지탱하는 존재로 사랑받고 있지요.
플로리스트들은 제 잎과 줄기의 질감을 좋아해서
자연주의 부케나 겨울 리스, 드라이플라워 장식에 자주 사용합니다.
빛을 잃어도 형태를 오래 간직하기 때문이에요.
남미에서는 저를 기념식 화환에도 씁니다.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개척’의 의미가
삶을 기리는 마음과 닮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의 손끝에서도,
예술가의 붓끝에서도 다시 한 번 생명을 얻는 꽃입니다.
겨울의 문턱에서 저는 하얗게 피어납니다.
햇살이 짧고 바람이 차가워도 괜찮습니다.
이 계절은 제게 익숙한 시간이니까요.
세상은 늘 새로운 길을 원하는 것 같지만,
정작 아무도 먼저 걷고 싶어하지 않지요.
그래서 저는 조용히 피어나
누군가의 첫 발자국 옆에 서 있습니다.
길이란, 누군가 먼저 걸어야 생겨나는 것.
그게 제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오늘 당신의 하루가 조금 거칠고 고단하더라도,
그 속에서도 새로운 빛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처럼요.
◆오늘의 꽃 이야기
바카리스 (Baccharis halimifolia)
영문명: Eastern Baccharis, Groundsel Bush
꽃말: 개척
출신: 북미, 남미의 해안과 산지
과명: 국화과(Asteraceae)
https://youtu.be/K2NV2JC9354?si=ewLCplFLFLX0mIC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