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의 탄생화
11월 19일의 탄생화, 꽃말 ‘비밀’
저는 범의귀, 바위틈에 피어나는 작은 풀입니다.
누군가는 저를 바위취라 부르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는 조금 다릅니다.
저의 잎은 둥글고 부드러우며, 가장자리에 잔털이 나 있지요.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호랑이의 귀처럼 생겼다” 하여 저에게 ‘범의귀(虎耳草)’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그 이름엔 강인한 생명력과, 들리지 않는 세상의 속삭임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어느 화가의 손끝에서도 저는 한 번 피어난 적이 있습니다.
한국화가 한해동 선생은 어느 전시에서 제 이름을 그대로 작품 제목으로 붙였지요.
짙은 바위의 질감과 그 속의 생명, 잔잔한 먹빛 속에 숨은 흰 점 하나가 바로 저였습니다.
화가는 “작은 식물 하나에도 삶의 무게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저는 생각했어요.
“나는 작지만, 이 세상에서 나만의 길을 걷고 있구나.”
캔버스 위에서 저는 돌틈을 비집고, 빛을 향해 조용히 몸을 기울였습니다.
화려한 색채는 없었지만, 그 그림 속 저는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제 존재를 오래 바라보게 된다는 말이 전해졌습니다.
저는 그저 속삭였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나는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사람들은 저를 약초로 기억했습니다.
조선의 약재 기록과 민간요법에는 제 이야기가 여러 번 등장하지요.
저의 잎과 줄기는 열을 내리고 염증을 가라앉히는 효능이 있다고 하여, 달여 마시거나 즙을 내어 사용했습니다.
화상을 입은 곳에 잎즙을 바르면 열기가 진정되었고, 잇몸이 부었을 때 씹으면 아픔이 조금 누그러졌다고 전해집니다.
그 시절 사람들은 병을 치료하기보다, 자연이 가진 조용한 힘을 빌려 살았지요.
그래서 저는 그들의 살림집 처마 아래나, 마을 뒷산 바위틈에서 늘 함께했습니다.
또 어떤 문헌에서는 “범의귀와 바위취는 서로 닮았으나, 잎의 결과 생김새에서 다르다”고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 말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비슷해 보여도, 각자 다른 이야기를 가진 존재라는 뜻이었으니까요.
저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짙은 초록 잎사귀 아래에서, 꽃잎 몇 장만 살짝 세상을 향해 내밀 뿐이지요.
그래서 제 꽃말은 ‘비밀’이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하는 마음, 스스로의 상처를 조용히 껴안은 사람들.
그들의 마음속에 저는 작은 위로가 되고 싶습니다.
어쩌면, 당신의 마음속에도 저 같은 비밀이 하나쯤 숨어 있을지도 모르지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은 슬픔이나, 아직 피어나지 못한 희망 말입니다.
그럴 땐 기억해 주세요.
바위틈에서도 꽃은 핍니다.
세상 어디에도 틈이 있다면, 생명은 그 안에서 길을 찾아 피어납니다.
저는 지금도 그늘진 돌 밑에서 조용히 살아갑니다.
비가 오면 물방울을 모아 마시고, 햇살이 비치면 잎을 살짝 들어 인사합니다.
누군가 제 곁에 잠시 머물러 준다면, 그 사람의 발소리조차 제겐 큰 위로가 됩니다.
혹시 산책길을 걷다가 바위틈 사이에 작고 둥근 잎 하나를 보신다면,
그건 어쩌면 저일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잠시 멈추어, 속삭여 주세요.
“그래, 너도 잘 버티고 있구나.”
저는 그 말을 잊지 못할 겁니다.
오늘도 제 자리를 지키며, 세상의 비밀처럼 조용히 피어오르겠습니다.
학명 Saxifraga stolonifera (범의귀)
과명 범의귀과 (Saxifragaceae)
꽃말 비밀 Secret
분포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개화시기 5~6월
https://youtu.be/hyLGMKXit68?si=e12Maapb1zwix82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