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술을 좋아한다. 아니, 즐긴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가끔 술을 마시면서 '세상에 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생이 얼마나 삭막할까?'라고 중얼댈 때가 있는 걸 보면 분명 나는 술을 사랑한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내가 처음 술을 입에 대 본 건 아마 중학교 때라고 기억한다. 아버지가 공무원으로 전근을 너무 자주 다니셔서 중학교 때 나를 시골 큰댁에 맡기셨다. 의사의 권고도 있었다. 태어나서부터 몸이 너무 약해 과잉보호하는 부모를 떠나 시골 생활을 하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셨던 것 같다. 큰댁은 농사짓는 시골이었지만 읍내에 좋은 학교가 있어 그곳을 다니느라 나는 왕복 이 십 리 길을 날마다 걸어야 했고 까다로웠던 내 식성이 졸업 무렵에는 아무것이나 먹어도 소화를 잘 해냈으니 건강해진 것은 틀림이 없다.
그 시절 시골에서는 농사철이 되면 밀주를 몰래 담가 일꾼들에게 새참으로 내놓았다. 술이 익으면 술독에 용수를 박아 먼저 제사용으로 맑은술을 떠낸다. 그다음 물을 섞어 막걸리를 걸러내고 나면 '술지게미'라는 찌꺼기가 남는다. 이것에 설탕을 타서 먹으면 아주 맛있다는 어른들 얘기를 들은 적은 있었다. 술 거르는 냄새가 마당까지 진동하던 어느 날 사촌 동생의 꼬드김에, 어른들 몰래 둘이서 술지게미에 설탕을 잔뜩 넣어 한 조롱박씩 퍼먹고 온종일 잠만 자는 바람에 집안이 벌컥 뒤집혔다. 그 뒤로 술 항아리가 있는 골방 근처에는 얼씬 조차할 수가 없었음은 물론이다. 내 술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나 더 해 보자. 이 얘기는 아직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니 사실은 비밀이다. 전근이 잦은 아버지 때문에 교육도시에 집을 하나 사서 살림을 도와주는 언니와 의지 없는 친척 할머니 한 분에게 우리들을 맡기고 어머니는 막내만 데리고 아버지를 따라다니셨다. 고등학교 졸업식 전날이었다. 그날은 살림을 도와주는 언니가 나와 이웃집에서 하숙하던 내 친구에게 졸업을 축하하는 의미로 한턱낸다면서 불고기에 조기도 굽고 한 상을 근사하게 차려 내 방으로 들고 들어왔다. 밥상을 물릴 무렵이다. 그 언니가 슬그머니 술 한 병을 내놓는 것이 아닌가. 구멍가게에서 파는 싸구려 포도주였는데, 이름이 천향 포도주이었는지, 천양 포도주였는지, 그날 밤 내내 셋이서 화장실과 수돗가를 번갈아 다니느라 아침에는 녹초가 돼버려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딸의 졸업식 시간에 맞추어 졸업식장으로 직접 가신 우리 부모님과 시골에서 새벽같이 일어나 졸업식장으로 가셨을 친구 부모님께서 얼마나 황당해하셨을지는 상상에 맡긴다.
졸업식 사건으로 술에 된통 데서 인지 대학 시절에는 술을 마신 별다른 기억이 없다. 그 시절 남녀공학에 다니는 보통 여학생들처럼 남학생들과 어울려 막걸릿집도 왔다 갔다 해 보았고, 남편과 연애할 때는 부지런히 술집도 쫓아다녔지만, 술보다는 멍게 해삼에 낙지볶음 얻어먹는 재미가 훨씬 더 컸었으니까. 아이들을 낳고 키울 무렵에는 술을 즐기는 남편 때문에 자주 다투었다. 도대체 그 쓰고 백해무익한 것을 왜 마시느냐고 바가지도 많이 긁어 댔지만, 웬일인지 남편은 내게 술을 가르치려고 무척 애를 썼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큰 뒤 나는 부동산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어느 해 몹시 추운 겨울이었다. 그날도 온종일 바빴고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는 무겁고, 목이며 어깨며 온통 뻣뻣한데, 자동차 히터까지 고장이나 추위로 꽁꽁 얼어서 집에 들어갔다. 그때 집에는 남편의 술친구이기도 한 시누이 남편이 마침 다니러 와있었고, 두 사람은 오랜만에 신이 나 푸짐하게 술판이 벌어져 있었다.
"여보, 추울 땐 이 따끈한 청주 한잔 마시면 몸이 확 풀려 한잔 마셔봐." 꽁꽁 얼어서 들어온 마누라를 보니 따뜻한 집안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 좀 미안했던 모양이다. 공연히 실없는 농담을 걸며 눈치를 보는 남편한테 다른 때 같으면 그냥 눈 한번 흘기고 돌아섰을 내가 그날은 어쩐지 심술이 나면서 어깃장을 부리고 싶어졌다. "이리 줘 봐요." "어쭈?! 정말?" "무슨 잔이 이렇게 쪼그매, 잘못하면 술잔까지 삼키겠네." 어쩌고 하면서 나는 눈을 딱 감고 약을 먹듯 입에 털어 넣고 단숨에 꿀꺽 삼켜 버렸다. 따끈한 청주가 목젖을 타고 찌르르 내려가는 느낌이 아주 좋았다. 잠시 후 얼었던 몸이 나른 해지더니 어깨의 힘이 사르르 풀리고 잔뜩 엉켜있던 마음조차 푸근하게 풀어지는 것이 아닌가.
술꾼 아버지의 피가 어디 가랴, 그 뒤로 기회만 되면 우리 부부는 술잔을 앞에 놓고 앉아 애들 얘기를 도란도란하기도 하고, 속 썩이는 손님이 있을 때는 남편에게 두런두런 불평도 하고, 가끔은 술 한 잔 핑계로 남의 얘기를 소곤대기도 한다. 술이 들어가야 입이 터지는 남편과는 정말 이상적인 대화의 문이 열린 게 된 셈이다.
내가 즐겨 마시는 술은, 와인과 소주 그리고 청주이다. 와인은 가볍게 혼자서도 마실 수 있어 좋고, 소주는 갈비나 삼겹살 또는 생선회 매운탕 등 안주도 푸짐하고 사람들도 푸짐하게 어울려 시끌벅적 마실 때 좋아한다. 한겨울, 몸도 마음도 추워 따뜻한 것이 그리울 때 따끈하게 즐길 수 있는 청주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글이 영 안 풀리는 밤 와인 한잔 들고 뒷마당에 나가 앉아 보라. 달이 있으면 더욱 좋고 없어도 좋다. 천에 소리, 천의 냄새, 그리고 천의 느낌을 만날 것이다. 달빛 아래 장미꽃이 어찌 웃는지 보았는가? 어두운 밤 양귀비꽃이 요염하게 잠든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가? 분명 술이 들어가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미국에서 몇십 년을 살아도 우리 세대 한국 사람들이 안 바뀌는 것 중 하나가 있다. 어떤 모임이 됐든 특별히 자리 배치가 정해져 있지 않은 한,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좍 갈라져 앉는다. 특히 개인 집에 부부동반 모임일 때는 아내들은 식당에 남편들은 거실에 터를 잡는다. 낯 설은 모임에서 내가 쭈뼛거리는 눈치라도 보이면 남편은 슬그머니 술을 챙겨 들고 건너와 따라주고는 간다. 옆에서 못 마시는 척 새침하게 앉아있던 다른 여자들도 살짝 다가와 “저도 한 잔 갖다 주세요.” 남편에게 부탁하고 남편은 그날 숙녀들의 즐거운 술 심부름꾼이 된다. 조금 후면 시끌벅적, 남편 흉에 자식 자랑에 건강 강좌에 나중에는 인생철학까지 그리고 우리는 모두 친구가 되어 아쉽게 헤어진다.
최근 들어 우리 집 Wet Bar 선반에 와인이 자주 떨어진다. 요즈음은 딸내미들조차 마시니 내 와인이 자주 도둑을 맞는 모양이다. 누구의 딸들인가. 지금 Jewel에서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를 세일하던데 넉넉히 사다 놓고 몇 병은 감추어 두어야겠다. 아무리 예쁜 도둑도 도둑은 도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