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이 Dec 30. 2022

계란과 여동생

 “와! 언니가 이런 것들도 만들 줄 알아?”


동생을 먹인다고 내 딴에는 솜씨를 부려 며칠 전부터 장만한 음식들이다. 비행기 음식에 질렸었던 모양인지 탐스럽게 먹는 동생의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한없이 흐뭇하다. 맏이라는 핑계로 집안에서 손끝만 퉁겨 대던 나를 기억하는 동생은 내가 만들었다는 음식들이 영 신기한 눈치였다.


남편을 따라 미국에 이민이라는 걸 오자마자 연년생으로 아이 둘을 낳고, 공부시키랴 일을 하랴 헐레벌떡 살고 있을 무렵, 좋은 남편을 만나 잘살고 있다고 소문이 난 여동생 하나가 미국 구경도 할 겸 언니가 어떻게 사는지도 보고 싶다고 방문을 왔다. 나하고는 나이 차이가 커 한국에 있을 때는 서로 대화다운 대화 한번 못 나누었던 사이다. 그러나 몇 년 만에 공항에서 만난 동생은 내가 떠나올 때의 단발머리 소녀가 이미 아니었다. 서로 동등한 어른이 되어 만난 우리는 맥주잔을 앞에 놓고 옛날얘기에 밤새우는 줄도 모르고 깔깔댔다. 어린 시절에야 나이 차이가 많은 큰 언니가 마냥 어려웠겠지만 저 역시 나이 들어 든든한 남편까지 등에 업고 언니를 만나 보니 어쩐지 만만하고 편안했던 모양이다.  


연신 재잘대면서도 맥주를 시원스레 벌컥벌컥 잘도 넘기는 동생을 바라보며 참 많이 컸다, 대견하기도 하고 신기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동생 표정이 좀 이상해진다 싶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냅킨을 들어 두 눈을 감싸는 것이 아닌가.    

 

“뭐야, 맥주 조금 마시고 벌써 술주정이야?”  

   

어깨까지 들썩이는 동생이 의아하면서도 어쩐지 불편해 억지로 킥킥대며 놀렸다.  

    

“언니, 나 어렸을 때 엄마하고 언니한테 얼마나 상처받았었는지 모르지?”

“무슨 소리야, 갑자기?”  

    

엉뚱한 동생의 말에 맥주 몇 잔에 풀어졌던 근육들이 후루룩 제자리로 돌아와 긴장했다.


“엄마가, 아버지랑 언니랑 두 오빠한테는 매일 아침 계란을 주면서 어린 딸들한테는 한 번도 주신 적이 없어. 우리가 그때 그 계란이 얼마나 먹고 싶었었는지 알아?”      


나는 집안에 맏이다. 그것도 자그마치 여섯 남매의 맏이다. 위로 오빠가 둘이 있었지만 둘 다 어려서 백일을 못 넘기고 죽었기 때문에 그냥 맏이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바로 밑으로 남자 동생을 나란히 둘이나 보았으니 아들 둘은 잃고 딸만 건진 우리 엄마의 한이 조금은 풀린 셈이다.      


태어나서부터 어린 시절 내내 난 유별나게 몸이 약했다. 잦은 병치레에,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개근상은 물론 정근상 하나 받아 보지 못했다. 위로 서둘러 간 오빠들 때문에 부모님이 과잉보호하신 탓이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오빠들처럼 병약하게 태어났는데 천덕꾸러기 딸이라서 명줄이 길었는지, 글쎄 그건 나 역시 의문이기는 하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부모님을 떠나 낯선 땅에서 일하면서도 두 아이를 키우고 김치 한 박스를 거뜬하게 담근다던가, 쉬지 않고 한 시간 이상 수영을 할 수 있는 체력이니 아마 부모님 과잉보호 탓이었지 싶기는 하다.      


옛날 우리 집안은 그 시절답게 밥상에서 남녀가 유별했다고 한다. 남자들만 위해 차려 올린 밥상에는 가끔 고기도 올라가고 굴비도 올라갔지만, 여자들의 밥상은 항상 채소에 된장국 아니면 남자들이 물린 상에서 남은 것이 고작 이었다고 가끔 엄마가 하소연하셨으니까. 막내였던 우리 아버지는 그래도 시대에 깨이셔서 큰댁으로부터 분가하신 뒤에는 커다란 두레 반에 아들 둘, 딸 넷을 거느리고 상을 받으셨다. 그렇다 해도 좋은 반찬은 언제나 아버지 앞쪽에만 몰려있었고, 아버지가 잡숫고 일어나신 뒤 남은 것들이 아이들 차지였다. 아버지가 어렵고 무섭기도 했지만, 감히 아버지 앞에 놓인 반찬을 집어다 먹는다는 건 생각조차 못 하던 시절이었다.      


동생의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엄마가 아침마다 계란 프라이를 내 앞에 놓아주셨던 생각은 난다. 그러나 남자 동생들 밑으로 나란히 태어난 어린 여동생들 셋은 계란을 전혀 못 먹었었다는 하소연인데 왜 내 기억에는 없을까.


“정말이야?

“아니 너는, 그때 계란을 못 먹었다고 지금 그게 억울해서 우는 거야?”


몇십 년 전 철없던 시절 이야기라지만 어쩐지 무안해져 얼렁뚱땅 동생을 윽박질러 보았다.

     

“언니는 절대로 우리들 마음을 이해 못 할 거야. 언니가 나를 위해 이렇게 음식을 손수 장만했다는 것도 정말 감격스러워. 내가 기억하는 언니가 아니거든. 매일 아침 언니가 먹던 계란이 너무 먹고 싶어서 우리 셋이서 그렇게 쳐다봐도 말 한마디 없이 혼자 다 먹어버리던 언니가 갑자기 떠오르는 거 있지.”      


밑으로 남자 동생을 둘씩이나 본 공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몸이 약해서이었을까, 남자라는 것 자체가 벼슬인 집안 내력에도 불구하고 난 두 남자 동생과 함께 음식에 관한 한 동등한 대우를 받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때는 다른 여동생들과 달리 나만 남자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걸 느꼈던 것 같지는 않다. 으레 그냥 다 같이 먹는 줄 알았으니까. 근데 왜 제 오빠들이 먹는 건 당연하고 이 언니가 혼자 먹는 건 원망스러웠느냐고는 묻지 않았다.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었으면서도 어린 동생들이 무얼 먹는지도 몰랐던 언니였다는 것이 민망한 탓도 있었을 게다.     


내가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 옛날얘기에 마음이 찡해 왔다. 훌쩍거리는 동생한테 무엇이라 변명을 해야 좋을지 몰라 얼굴만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 그랬었구나.”

“근데 엄마는 왜 그러셨지...?”


우물쭈물 당황하며 엄마 핑계로 어물쩍 넘어가는 내 모습이 보기 좀 안 되었는지 동생은 빨개진 눈을 가늘게 뜨면서 배시시 웃었다,

     

“언니, 이제 괜찮아. 종윤 아빠(동생의 남편)한테 그 얘기를 일렀더니 달걀을 볼 때마다 삶아 먹으래.”      


배를 잡고 깔깔대는 소리에 자매끼리 회포를 풀라고 먼저 올라가 자던 남편이 눈을 비비며 내려왔다. 늙어가는 언니랑 아직은 젊은 동생이 마주 앉아 우는 건지 웃는 건지 영문을 몰라 멀뚱 거리던 남편이 엉거주춤 서서 하품을 하고, 어느새 밖은 희뿌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이전 06화 찌그러진 눈 찌그러진 마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