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Valentine's Day 고백

i love you

어느 해이었더라…

나는 보통 저녁 늦게까지 이일 저일 부스럭대고는

아침 늦게야 일어나는 습관이 있다.

그날 아침에도 느지막하게 일어나

어슬렁어슬렁 아래층에 내려가니

부엌 테이블 위에

얼핏 보기에도 싸구려 장미꽃 한 다발이

빈 김치병 속에 아무렇게나 꽂혀 있었다.

아휴 계집애도,

이왕 꽃을 가져왔으면 예쁘게 꽂아 놓기라도 하지.

꽃병을 찾아 꽃을 꽂으면서 그래도 남편보다는

새끼들이 낫구나, 생각하니

기특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살면서 Valentine's Day이라고

그렇게 요란하게 떠들썩 해도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날이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랬다고,

마누라 생일도 잘 기억 못 하는 남편이

발음하기도 이상한 발, 뭐라고 하는 날을 기억해 줄 리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니 말이다.

"꽃 고맙다. 엄마 잘 때 다녀갔니?"

집을 두고 나가서 코딱지만 한 방을 친구와 룸메이트 해

살고 있는 작은 애가 가끔 연락도 없이 슬그머니

다녀가고는 해 작은 애이려니 했다.

"무슨 꽃? “

“와~ 아빠가 엄마 꽃 사줬어?"

"행여나 느이 아빠가…”

아침 일찍 출근하는 사람이 전날 가만히 있다가

꼭두새벽에 그걸 사다 놓고 갈 리가 만무하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멀리 나가있는 큰 애가 나 몰래 다녀갔을 리도

없지 않은가.

"여보, 김치병 속에 있는 꽃이 무슨 꽃인지 당신 알아요?" "그거 장미꽃 아니야?"

"누가 장미꽃을 몰라서 그래요?”

“웬거냐구요, 웬거…“

"밸런타인 인지 주먹타인 인지 마누라

꽃 사주는 날이라 메?"

사연인즉슨,

전날 밤 친구를 만났던 모양이다.

"내일이 Valentine's Day인데 꽃 사러 안 가요? “

"애들처럼 낯간지럽게 꽃은 무슨 꽃?!"

자기는 해마다 부인에게 꽃을 선물한다면서

들어가는 길에  꽃 사러 간다는 친구와 헤어져

돌아와 잠을 잤단다.

새벽녘에 누가 벨을 눌러 나가 보니

어젯밤 만났던 그 친구였다.

근데 그 친구가 불쑥 장미 한 다발을 내밀면서

"김 형 대신 샀으니 이거라도 와이프한테 주쇼."

얼떨결에 받고 보니 꿈이라!!

그 길로 주월에 가 잡히는 대로 한 다발 사서

빈 김치 병에 꽂아 놓고 일을 갔다는 사연인데

꼭 남의 얘기하듯 들려준다.

내 Valentine's Day 장미는 이렇게 시작이 됐다.

놀랍게도 남편은 매 해 조금씩 세련돼 갔다.

어느 해는 먹지도 않는 초콜릿도 곁들이고

어느 해는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와인도 곁들인다.

또 어느 해인가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하트 풍선까지 들고 왔다.

"아휴, 아빠 닭살~"

입으로는 제 아빠를 놀리지만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

"근데 말이야, 당신 공주병이야? “

“왜 항상 나만 당신한테 줘야 되는데?"

남편의 불만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나도 무엇인가

이벤트를

준비해야 지 싶었는데 까짓것, 돈도 안 들겠다

오랜만에,

‘사랑해요.’라고 속삭여 봐?!

돈도 들지 않는 그 말을…

그가 떠날 때까지

나는,

끝내하지 못했다.

그에게 갈 때마다 장미 한 다발 놓으면서

퉁명스럽게 물어본다.

“이제 가만히 누워서 받기만 하니 좋우?”

쑥스러워 씨익 웃기만 할 그 모습이 잡힐 듯 떠오른다.

올해도 Valentine's Day가 오고 있다.

누구에게는 설렘으로,

또 누구에게는 아픈 추억으로

나는 올 해도 여전히 장미 몇 송이 들고 가서는

늦어도  한참 늦어버린 고백은 가슴에 담은 채

퉁명스럽게 한마디 던지겠지,

“가만히 누워 받기만 하니 좋우?”

그리고는 평소 그가 변명삼아 즐겨하던 말을

등 뒤로 느끼면서 돌아올 게다.

"괜찮아 이 사람아,

사랑은 입으로 말하는 게 아니야

서로 가슴으로 느끼는 거지 "

아니,

이제는 더 늦기 전에 용기 내어 말하고 싶다.

“Happy Valentine's Day Everyone! “

“l Love You, I love you, I really love you!”

내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고백이

너무 늦지 않게 닿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