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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 Jan 12. 2023

찌그러진 눈 찌그러진 마음

'내로남불'

“여보, 내 눈이 이렇게 크면 어떨까?”


“무슨 짓이야? 도깨비처럼!”  

    

눈두덩에 연필 끝을 눌러 눈까풀을 커다랗게 만들어서 운동경기 보느라 정신없는 남편 얼굴에

바짝 디밀었더니 남편의 퉁명스러운 대답이 나를 머쓱하게 만든다.

     

“Mrs. Lee가 나랑 같이 눈까풀 수술하자는데

나도 이참에 늙은 김희선이 만들어봐?”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나?”  

    

어디에서 들은풍월인지 그것도 마누라한테 할 수 있는 농담이라고 TV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불쑥 던진다.      


“수박 되나 안 되나 볼래?”  

    

그제야 내 목소리가 심상찮았는지 고개를 돌린다.

     

“그 연필 좀 내려놔 찔리면 어쩌려고 그래?

나이 먹어 가며 애들처럼 무슨 주책 같은 소리야?”

     

“눈이 짝짝이라 눈화장하기가 너무 불편해.

이참에 Mrs. Lee 하고 함께하면 돈도 깎아주는 모양이던데…. “   

  

“어? 당신 눈이 짝짝이야? 허허 여태 속고 살았네.

까짓것 됐어! 마음만 짝짝이 아니면 돼.”   

  

이 말 같지 않은 대화에서 빨리 벗어나 운동경기에 집중하고 싶은 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얼렁뚱땅 넘어간다.

     



내 눈은 짝짝이이다. 어려서 사진을 보면 쌍꺼풀진 눈이 제법 커다란데 언제부터인지 오른쪽 눈꺼풀이 자꾸 풀어진다. 화장하기가 영 불편할 때는 스카치테이프를 속눈썹 위에 부쳐서 20분 정도 있다가 떼면 감쪽같이 왼쪽 눈과 같아진다. 그러니 좀 무심한 사람이라고는 하나 남편이 몰랐다는 것도 사실 무리는 아니다. 내 비밀을 알고 있는 Mrs. Lee가 자기는 나이가 드니 눈이 자꾸 처진다면서 대통령도 마누라랑 나란히 누워 눈까풀 수술받는 세상인데 우리 같은 평민도 수술받아, 좀 젊어지겠다 한들 무엇이 문제냐며 자꾸 날 꼬드기는 중이다.    

 



요즈음 어쩌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소위 잘 나가는 연예인들 어렸을 때 사진과 최근 사진들을 나란히 놓고 어디를 고쳤네, 안 고쳤네, 네티즌들끼리 시끌벅적 난리도 아니다. 그냥 비교하는 정도면 괜찮은데 어떤 때는 완전히 인신공격이다. 딸 둘을 낳아 키워보니 아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서 어떻게 변해가는지 알고 있다. 낳아 놓으니 얼굴은 빨갛고 눈은 떴는지 감았는지 구별 안 되던 큰아이가 흰 피부에 제법 오뚝한 콧날로 멀쑥하게 자라자 그 못난이가 어디서 저런 인물이 나왔는지 모르겠다며 가끔 흐뭇해하는 남편이다. 그러니 그런 글을 대할 때마다 네티즌들의 억지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물론 연예인들이야 좀 고치기도 했으리라. 당연하지 않은가. 요즈음은 칠십 넘은 할머니들도 눈꺼풀이 처져 불편하다는 핑계로 예쁘게 고쳐놓고는 거울 볼 때마다 소녀처럼 수줍게 웃는 세상인데 외모가 중요한 연예인들이야 자기 비즈니스를 위해 이것저것 투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자기들이 고치는 것은 유행이고 연예인들이 고치는 건 부도덕인가?  

    



요즈음 한국은 성형 붐으로 너도나도 고치다 보니 정상으로 잘생긴 사람들도 성형 의혹에 시달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2세나 어렸을 때 온 1.5세들은 ‘우디알렌’과 결혼한 ‘순이’처럼 대부분 한국인의 전형적인 외모인 데 비해 오히려 한국에서 나서 한국에서 자란 젊은이들은 완전히 서구적인 모습으로 변한 것을 보고 한국의 뛰어난 성형술을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이유야 무엇이든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이 우리 시대와 비교해 외모가 뛰어난 걸 보면 놀랍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가끔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의 마구잡이 글들을 읽을 때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외모만 말고 마음도 서구인들처럼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남의 사생활도 존중할 줄 아는 넉넉하고 둥그런 마음으로 바뀐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크고 둥그런 마음과 남을 바라보는 작고 찌그러진 마음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던가. 아마 대표적인 짝짝이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요즈음 한국의 정치권에서 가장 많이 풍자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가끔 신문 방송을 보면 이 말이 정말 찰떡같이 어울려 나도 모르게 무릎을 친다. 정치인들의 말 바꾸기야 동서 어느 나라나 비슷비슷하겠지만 한국 현 정치권은 명불허전이다. 까짓 평민들이 눈꺼풀 수술을 했네, 안 했네, 내가 한 건 불가피해서였고 네가 한 것은 부도덕이라고 소리 높여 봤자 콧방귀 뀌고 지나가면 그뿐이겠지만 나라를 좌지우지하시는 분들의 ‘내로남불’은 국민 모두가 상처를 받고 어지러워지니 문제가 크다.

    



“여보, 당신도 좀 다른 집 남자들처럼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하다못해 마누라 데리고 오페라는 못 가도 뮤지컬 정도는 가는 문화생활 좀 해 봐요.

허구한 날 TV 앞에서 운동경기나 보며 맥주나 축내니, 아휴 원 답답해.”   

   

“허허, 사돈 남의 말씀하시네요. 밤새워 한국드라마나 보는 당신은 문화생활인이고 운동경기 좀 보는 나는 잡 생활인인가?”   

  



내 찌그러진 눈에 ‘딱’인 스카치테이프처럼 남을 바라볼 때 찌그러지는 내 마음이 둥그렇고 넉넉한 마음으로 바뀔 수 있는 내 마음에 ‘딱’인 스카치테이프는 없을까? 오늘부터 열심히 연구해 보아야겠다. 이 연구가 성공하면 아마 내 인생은 ‘대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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