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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 Jan 24. 2023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삶의 위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옛날 글들을 정리 중이다

기억해 보니 이 글은 2008 9년 경 쓴 글이고

Subprime Mortgage Crisis로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던 때이다.

경제위기가 10년 주기로 온 다는 말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경제에 문외한이니 이 말이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얘기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그러나 살아온 세월을 가만히 뒤돌아보면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닌 듯싶다.

어떤 위기도 견디다 보면 지나가기 마련이고,

물들어 올 때 너도나도 정신없이

노만 젖다 보면 또다시 위기가 오는 것이 삶의 간단한

이치가 아닐까 싶다.




바람의 도시에서 30년을 넘게 살고 있다.

시카고에 이민 가방을 푼 뒤로 잠깐씩 여행을 한 적은

있으나 이곳을 떠나 다른 도시에서 살아 본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다른 도시에 비해 이곳이 정말 바람이 많은 도시인지 아닌지를 비교해 볼 기회는 없었다.

30년 전 한국을 떠나기 전 이곳저곳 인사를 다닐 때,

시카고를 좀 안다는 이들이 시카고는 ‘갱의 도시’이고

‘바람의 도시’라는 말을 해주어 새로운 세계에 대해

막연히 불안했던 기억이 난다.

이 도시에서 한 시대 악명을 떨쳤던 알 카포네 때문에

‘갱의 도시’로 불린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시카고가 ‘바람의 도시’로 불린다는 것은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작은 섬들이 물 위에 옹기종기 그림처럼 떠 있는

서해바닷가에 외가가 있다.

그런 바다만 보아온 내게 망망한 푸른 물이 거칠 것 없이 이어진 미시간 호수는 충격이었다.

이 넓은 미시간 호수를 끼고 세워진 시카고 다운타운은

불과 얼마 전까지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이라고

알려졌던 Willis Tower를 비롯해 건물 하나하나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의 작품들이어서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꼭 들르고 싶어 하는

 곳이기도 하다.

미시간 호수로부터 아름다운 건물들 사이사이로

불어오는 청량 하면서도 강한 바람은

건물 구경에 정신 놓은 관광객들의 옷자락을

사정없이 흔들어댄다.

아마 ‘바람의 도시’라는 별명은 그래서 그 관광객들로부터 얻어진 건 아닐까 혼자서 짐작할 뿐이다.  

    



   큰딸 아이를 시집보내고 작은 아이도 따로

독립시키고 나니 팽팽하게 당겨졌던 30년 이민 생활이

갑자기 느슨해지면서 매사에 의욕이 없어졌다.

사느라고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밤잠을 설치게 한다.

매번 매해마다 지금의 나이가 내 인생에서 제일 열심히

살아야 할 때라며 순간순간 마음의 고삐를 힘껏 쥐고

30년을 버틴 그 투지들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갑자기 의식하게 된 나이 앞에서 이때다, 하고

온몸 마디마디마다 투덜댄다.

나의 진정한 인생은 이제부터라고 아무리 주문을

외워대도 한번 축 늘어진 몸과 마음은 무겁게 젖은

무력감으로 추슬러질 기미가 없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제목만 훑던 신문 읽기가

요즈음은 첫 장의 첫 글자부터 마지막 장의

마지막 글자까지 한자라도 놓치면 큰일이라도

일어나는 양 꼼꼼하게 읽는 것이 거의 취미가 돼버렸다. 그동안 그냥 무덤덤하게 눈으로만 스쳤던

그 많은 글들이 무색하게,

찢어진 광고지 한구석에서 우연히 읽게 되는

평범한 한 구절에서도 이제야 인생을 깨달은 듯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이의 ‘해변의 묘지’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며칠 전 신문에서 어느 시인이 이 구절을 인용해서 쓴

글을 읽고 어쩐지 마음에 닿아와

인터넷에 들어가 이 시의 전문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몇 번을 읽어보아도 내가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좀 난해한 시여서 어쩐지 실망스러웠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세찬 마파람은 내 책을 펼치고 또한 닫으며

물결은 분말로 부서져 바위로부터 굳세게 뛰쳐나온다.

날아가거라, 온통 눈부신 책장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뛰노는 물살로 부숴버려라.

돛배가 먹이를 쪼고 있던 이 조용한 지붕을!     


   그러나 꽤 긴 ‘해변의 묘지’의 이 마지막 연만은

잔뜩 움츠려져 있는 요즈음 나에게 신선한 자극이다.

올가을은 유난스레 스산스럽다.

낯익은 이들의 자살 소식,

벼랑 끝이 안 보이게 추락하는 경제,

서로 옳다고 목청만 돋우는 정치인들,

내일의 불안으로 한숨 쉬는 이웃들,

그 어디에도 희망의 소리는 없다.

미국의 금융시장으로부터 시작된 거대한 태풍이

(Subprime Mortgage Crisis) 전 세계로

휘몰아치고 있다.

그동안 흥청댔던 경기에 기고만장했던 많은 사람들도

갑작스러운 회오리바람에 우왕좌왕 정신들이 없다.

관광객들의 바바리 자락을 흔들고 멋쟁이들의 스카프와 모자를 날려버리던 짓궂은 미시간 호수의 바람이 아니다. ‘바람의 도시’ 시카고의 진정한 바람을 견뎌낸

내 30년의 이민 생활도 이 바람에 휘청한다.

    



   달착지근한 봄 햇살에 맥을 놓고 있다가

갑자기 뒤돌아와 휘몰아친 겨울의 끝자락에 후다닥

정신이 돌아오듯 오감이 깨어 팽팽해진다.

늘 척하게 처져있던 몸과 마음이 이 위기에 긴장한다.

 ‘위기가 기회’라던가, 그래, 이 위기의 긴장감을

제 이의 삶을 탄력 있게 살아낼 수 있는 원동력으로

만들 수도 있겠다.

     



  겨울을 견뎌본 적 없이 봄의 찬란함만 알고 있는

젊은이들의 신음소리가 훨씬 더 크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살아내고 나이가 들었다는 건

얼마나 큰 힘인지 이제야 알겠다.

 겨울이 지나면 틀림없이 봄이 온다는 걸 믿을 수 있는

나이란 얼마나 든든한가.

겨울을 견디는 자만이 봄을 맞이할 수 있음을

못 견디겠다고 신음하는 젊은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그렇다 바람이 분다.

그것도 무시무시한 태풍이다.

우리는 모두 살아내야만 한다.

더 찬란한 봄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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