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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 Dec 23. 2022

바보의 벽

인지부조화

                                                                                             딸애를 시집보내고 나름대로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모양이다. 몇 년 전, 골프 치다 삐끗한 허리가 가끔 뜨끔 거리는 걸 그동안 무시하고 지냈더니, 큰일 치르고 맥없이 있는 나를 그 보란 듯이 본격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한의원한테 침 한두 번 맞으면 깨끗이 낫는다는 친구 말만 듣고, 이제부터 각종 모임이 시작되는 연말인데 이 허리로는 너무 고생스럽겠다 싶어, 생전 처음으로 침이라는 걸 맞으러 간 것이 화근이었다.  


  모든 병의 근원이 음식에서 온다는, 수염이 하얗고 풍채 좋은 그 의원님의 말씀이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다. 부황에 쑥뜸에 침에, 거의 세 시간 동안 정성껏 치료하는 자세에서도 신뢰가 같다. 의심하려 들면 중국 사람 저리 가라이지만 한 번 믿으면 미련을 파는 내 성격이다. 허리도 허리지만 몸이 너무 부실해 보약을 좀 먹어야 하겠다며 내일부터 치료도 계속 받고 약도 가져가라는 말에 토 하나 달지 않았다. 제법 만만치 않은 돈을 내고 치료받기 전보다 훨씬 더 통증을 느끼면서도 희망에 차서 돌아왔다.    


  잔뜩 구부리고 들어오는 나를 본 남편이 놀라서 뛰어나왔다. 침을 맞았으면 더 나아졌어야지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다. 침 맞는다는 것을 처음부터 반대하며 척추전문의에게 가라 했던 남편이었으니 이 상황을 무어라 대꾸하기가 궁색하기만 했다. 처음에는 치료받기 전보다 더 아픈 것이 정상이고 치료 전과 상태가 같으면 효과가 없는 거라고 그 의원님에게 방금 들었던 말을 한의학 공부라도 미리 해 둔 듯이 자신 있게 설명했다. 몸이 부실해서 보약도 먹어야 한다더라는 말에는 더 힘을 주면서 치료도 서너 번 더 받아야 한다고, 호기 있게 남편의 잔소리를 미리 차단해버렸다.


  세상은 온통 연말 분위기로 들떠 있었다. 그러나 내 상태는 좋아지기는커녕 치료 횟수가 거듭될수록 통증은 더 심해지고 급기야는 걸음 걷는 것조차 너무 힘들어졌다. 근사하게 차려입고 오래간만에 이 모임 저 모임 다니는 꿈이야 접었다 해도, 한 해를 보내면서 인사 다녀야 할 데도 많은데 꼼짝도 못 하고 집에 앉아 TV나 보는 신세가 되어 버렸으니 어쩌면 좋으랴.


  그동안 의원님 말씀에 끽소리 한마디 못하던 내가 드디어 견디다 못해 투덜대기 시작했다. 빨리 낫고 싶은 욕심에 남편 모르게 여섯 번이나 더 다녔으나 서너 번만 다니면 깨끗이 낫는다던 통증이 낫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지니 정말 지치고 힘이 들었다. 보통 그 정도 치료하면 아픈 곳이 밖으로 나오고, 나와야 이놈을 잡아내는데, 나는 이상체질이라서 더 꼭꼭 숨는다나? 성격이 체질을 만들기 때문에 결국은 내 성격이 이상하다는 의원님의 자신만만한 대답이시었다.


  내 평소의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론임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받을수록 더 아픈 허리를 참아가며, 남편 눈도 속여 가며 계속 다닌 건 그 양반이 보여주던 성실성에 대한 믿음이었는지, 아니면 신령님 같은 하얀 수염이 신비한 힘이라도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건 아닌지, 나 역시 모르겠다. MRI 라도 찍어 본 뒤 정확히 어디가 왜 문제인지 알고서 치료를 받아도 받으라며 남편이 불같이 화를 내고 나간 날 아침, 여전히 느긋한 의원님께 남편 말을 전했다. 그리고 이왕 왔으니 오늘까지는 치료를 받고 결과가 나오면 그때 다시 오마고 공손하게 말했다. 그 양반이 평소와 어떻게 다르게 치료를 했는지는 모른다. 그날, 내 등과 허리는 온통 부르터서 물집으로 뒤 덥혀버렸다. 내 피부가 약한 탓이지 자기 책임은 아니라면서 어쨌든 조금만 더 참으면 허리가 나을 거니 몇 번은 더 와야 한다고 그 의원님은 위엄 있게 목소리를 깔았다.


  그 후 더는 가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에 모인 가족들이 모두 남편 편에 서서 내 미련함에 대해 어이없어하며 성토대회를 연 탓도 있지만, 치료를 중단하니 오히려 견딜 만도 했고, 허리 고치려다 등판을 다 벗겨 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흉이나 지지 않으면 좋으련만, 나이가 들었어도 여자인데 깨끗한 등이 당연히 좋다.      


  만일 내가 짜증 부리지 않았더라면 그 양반은 서서히 내 허리를 고쳐 줄 건데 내가 참지를 못해 서두르느라 내 등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아니면 실력은 없고 돈만 아는 노인네가 내가 짜증을 내기 시작하니까 당황해서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짜증 부리는 내가 괘씸해 ‘너 맛 좀 봐라’ 한 짓인가. 물집이 터져 옷에 닿을 때마다 쓰라리고, 새 물집 잡히느라 근실 대는 등 때문에 반듯이 누워 잠을 제대로 못 자면서도, 실력 있는 의원님한테 내 허리를 고칠 수도 있었는데 참을성 부족으로 등판만 고생시키고 중단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쪽으로 마음이 더 기우는 자신이 어이없기조차 했다.


  ‘인지 부조화 현상’ 이라던가, 일명 ‘바보의 벽’이라고도 심리학자들은 말하는 모양이다. 믿었던 인식에 부조화가 일어나도 행동을 바꿀 수가 없는 현상이다. 자기의 실수를 인정하고 싶지가 않기 때문에 긍정적인 정보에만 마음이 끌리게 된단다. 사회 문제에서도 나타나는데, 한번 내린 결정에 대해 인지적 부조화가 나타나면,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되도록 자신의 결정을 합리화하는 쪽으로 몰고 가게 되고, 내가 한 결정이니까 옳은 결정일 수밖에 없다는 믿음은, 옆을 돌아보지 않게 만들어 대화를 통한 의견수렴의 길을 막고, 그래서 의사소통에 단절이 오게 되어 잘못된 결정을 밀고 나간다는 이론이다. 숙명여대 강미은 교수의 칼럼에서 읽은 내용이다.      


  자기가 믿었던 일들이 설령 틀렸다는 것을 알아도 옳은 쪽으로 생각을 바꾸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합리화를 하면서 정당화시킬 만한 이유를 찾아낸다는, 어쩌면 지난번 선거에서 국민의 꿈을 이루어 주리라 믿어지는 어느 특정 후보를 열광적으로 지지하던 많은 국민이, 계속 터져 나오는 그 숱한 의혹 속에서도 그 의혹들은 외면한 채 자기들이 그에게 걸었던 꿈들만 바라보며 계속 그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던 그 상황도, 알고 보면 ‘인지 부조화’라는 이 심리상태에 기인하진 않았을까?      


  이제 내 등은 꾸덕꾸덕 말라 딱지도 떨어졌다. 하지만 그동안 운동은 못 하고 먹기만 한 탓에 몸은 두툼해지고 무거워져 마음조차 무겁다. 허리통증에 좋다는 수영이라도 다시 시작해야 할 텐데 울긋불긋한 흉터가 군데군데 벌겋게 남아있는 등을, 거울로 흘긋거릴 때마다 이 노릇을 어찌하나 쓴 입맛을 다시면서 강은미 교수가 글 말미에 던진 질문들을 가끔 나 자신한테 진지하게 던져보고는 한다.      


내 속에 ‘인지 부조화’는 얼마나 되는가?

‘인지 부조화’가 있을 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용기는 있는가?

‘바보의 벽’ 속에 자신을 스스로 가두는 일은 없는가?      


   나의 ‘인지 부조화’로 내 등에 상처가 나는 거야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나의 ‘인지 부조화’가 작게는 내 가정에, 크게는 내가 속해있는 단체나, 나아가 사회에까지 상처를 입히는 일은 혹시 없는 지 이 기회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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