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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 Feb 25. 2023

만남, 그리고 그 한마디

꽤 오래전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tv 예능프로가 있었다.

시카고 한인 tv 방송국에서도 매주 토요일마다 방영을 했다. 방송 초기에는 중년이 된 연예인들이나 유명인들의 첫사랑을 찾아 다시 만나게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가지고 있을 새콤달콤한 첫사랑의 추억으로 시청자들의 감성을 건드렸는지 첫사랑을 찾는 것이 한때 유행이 되어 가정 파탄의 한 원인 되었었다고도 하니 방송의 위력이라는 것이 참 대단하기는 하다.


나 역시 토요일이면 TV 앞에 앉아서 혹시 어렸을 때 나를 짝사랑하던 그 누군가가 유명인이 되어 찾아 주지는 않을까 하는, 중년의 신데렐라 같은 상상을 해 보고 피식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나보다도 더 열심히 그 프로를 즐기던 남편도 내 음침한 상상을 눈치챘는지 아니면 은근히 자신도 그런 꿈을 꾸고 있었던지,


“ 연예인 중에 혹시 당신을 찾을 만한 사람 없어? 방송국에서 갑자기 연락 오면 곤란하니까 부지런히 몸매 관리 잘해 두라고 “


“ 왜? 당신은 짚히는 사람이라도 있수? “


우리는 재미 삼아 서로 놀렸지만 사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었다. 그 시절 그 프로그램이 꽤 인기가 있었던 걸 보면 아마 이 세상에는 우리 부부같이 주책스러운 사람들이 제법 많았던  모양이다.     

 

그런 인기를 업고 그 프로그램은 꽤 오랫동안 방영이 됐다. 그러나 첫사랑 얘기로만 오래 끄는 것도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중년의 첫사랑 찾기가 사회적인 문제까지 되어 꽤 시끄러웠다. 그래서인지 미혼 연예인들의 첫사랑 찾기로 바뀌더니 그들을 억지로 연결해 주려는 듯하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 나중에는 학창 시절 영향력을 주신 스승님이라든가 아니면 친했던 친구, 또는 이웃 등 그 대상의 폭이 넓어졌다.

자기 인생에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해 주셨던 선생님, 선배 또 이웃들의 얘기가 나와도 나름대로 색다른 재미가 있어 토요일이면 여전히 우리 부부를 TV 앞에 앉게 했다.



이제는 성공하고 유명인 이 된 그들이, 학창 시절에 자신의 진로를 찾아 주어 꿈을 잃지 않고 성공의 기초를 만들어 주신 선생님, 힘든 환경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을 때 도와주신 지인, 또는 청소년기에 방황하던 자신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어 지금의 자신이 될 수 있게 해 주셨던 분들을 찾은 뒤 눈물로 만나는 장면들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생각해 보면 한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 그 삶의 고비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은 참으로 많이 달라진다. 세상에 태어나 첫 만남인 부모님, 부모가 올바른 사람이냐 그렇지 못한 사람이냐, 부자이냐 가난하냐만 가지고도 한 생명의 운명과 삶의 질이 완전히 달라진다.

어느 정도 자란 뒤 정규 교육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진로가 바뀌는 사례들을 우리는 많이 목격한다. 성인이 되어 만나는 배우자는 또 어떠한가. 일생의 행, 불행이 좌우된다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리라.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사람들이 우스개 삼아 하던 말들이 생각난다. 미국에서의 삶이 평탄하기 위해서는 좋은 변호사, 좋은 회계사, 좋은 정비사를 만나야 한다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도 있었다. 어찌 변호사, 회계사, 정비사뿐이겠나.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은 누구나 그만큼 내 인생에 크고 작은 영향을 주게 돼 있다.


그동안 내 삶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들은 누구일까, 새삼스레 생각해 본다. 당연히 부모님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내가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작은 지방 도시였다. 많은 사람이 가난해서 먹고 입고 자는 삶의 기본적인 것도 힘이 들어 허덕이던 시절이었다.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물려받은 토지도 조금 있어 내 삶의 기본적인 세 가지가 빈궁했던 기억은 없다. 내 인생의 첫 만남이 행운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학창 시절에 이렇다 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선생님이 없다. 잦은 병치레로 학교생활이 불규칙하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전학을 많이 다녔으니 선생님들과 인간관계를 맺을 만한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선생님과 함께 만든 추억이 없는 내 학창 시절은  참으로 삭막하고 쓸쓸하다.   



꼭 긴 인연만이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고등학교 졸업반 무렵의 해였다. 내 삶 속에서 힘이 들 때마다 기대고 붙들 수 있는 커다란 버팀목을 만들어 주신 한 분을 만났다. 안타깝게도 나는 지금 그분의 얼굴은 물론 성함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그분은 내 친구의 친척이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친구 집엘 놀러 갔다가 마침 서울에서 다니러 오신 그분께 인사를 드렸다.


“너는 군계일학(群鷄一鶴)이 되겠다.”


앞뒤의 대화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생각나지는 않는다. 고교 졸업반이었으니 아마 진학과 장래 진로 문제 등을 얘기하지 않았을까? 그때 그분께서 어떤 의미로 그런 말씀을 해 주셨는지는 모른다. 그 말은 ‘함부로 살지 말고 자존심이 있는, 그리고 존경받을 만한 인생을 살라’는 뜻으로 나는 지금껏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그 당시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미숙했고 또 막연한 말이기도 해 수줍게 웃어버리고는 잊어버렸다. 아니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낯설고 말 설은 이민자로 이 만큼 살아오는 동안 자존감이 땅 밑까지 내려가 숨쉬기조차 버거울 때나 마음이 너덜너덜 남루할 때 그리고 한 치 앞이 안 보여 아득했던 상황에서도 이 말은 비굴하게 살지 않을 수 있는, 그리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힘이었다. 가슴속 어디인가에 숨어있다가 슬그머니 떠올라 그곳이 어디였든 어떤 상황이었던 그 자리에서 그냥 나인 채로 살아 낼 수 있는 버팀목이 돼주기도 했다.   

   

나는 그분이 말씀하신 군계일학(群鷄一鶴) 같은 삶을 살고 있는가? 부끄럽게도 군학일계(群鶴一鷄)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내 인생은 아직 진행형이고 남아있는 시간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그분이 주신 그 네 글자는 여전히 내 삶의 이정표가 되어 적어도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려고 노력은 할 것이다. 그 한 마디가 없었다면 나는 다른 삶을 살았을까, 가끔 생각해 볼 때가 있다.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 같다.

허나 살아내는 데 더 많은 상처로 마음이 피폐해 회복해 내는데 힘들었으리라, 짐작은 된다. 정말 감사할 뿐이다.



잠깐의 만남에서 지나가듯 한 한마디가 이토록 한 사람의 삶을 이끌어가는 힘이 될 수도 있으니 인생에서 만남이란 얼마나 소중한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그 수많은 사람에게 평생 지워질 수 없는 상처를 주는 만남이 아니고 희망과 힘을 줄 수 있는 소중한 사람으로 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가장 사랑하는 내 가족에게 그동안 나는 어떤 사람이었으며 지금 어떤 사람이고 있을까, 소중한 친구, 친척, 그동안 만났던 셀 수도 없는 그 많은 인연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에 만나게 될 새로운 인연에게도 소중한 만남으로 남기 위해선 나의 말 한마디가 어떠해야 하는지 이 기회에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As soon as you trust yourself,

you will know how to live.

-Johann Wolfgang von Goethe-


인생을 막 시작하는 젊은이에게 그리고

나이를 핑계로 자꾸 안주하고 싶어 하는

나 자신에게 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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