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IT3
<사진 출처 로이터 통신>
2021년 3월 1일.
영국 남부 버크셔의 폐쇄된 감옥 붉은색 벽돌담에 누군가가 그림을 그렸다.
줄무늬 죄수복을 입은 죄수가 침대보를 묶어 감옥을 탈출하는 모습을 그린 그라피티였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죄수가 매달려 있는 침대보의 끝 부분에 타자기가 묶여 있었다.
외신들은 그림 속 죄수가 1895년부터 2년간 레딩 감옥에 수감됐던 오스카 와일드일 거라 추정했다.
창의적이면서 유머러스한 이름 모를 그라피티의 작가는 실제 오스카 와일드와 많이 닮아 보였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재치와 외모, 언변과 문학적 재능까지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인생의 정점에서, 오점을 찍는 “세기의 재판”을 받게 되었다.
16세 연하 귀족인 알프레드 더글러스 경과의 동성애 스캔들 재판이었다.
동성애를 나누었던 와일드는 결국 재판에 회부되었고 레딩 감옥에서 2년형을 살게 됐다.
감옥에서 나온 와일드는 자신의 수인번호 C.3.3을 필명으로
“레딩 감옥의 노래 The Ballad of Reading Gaol”이라는 책을 냈다.
책은 감옥에서의 고통스러운 삶을 묘사한 시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오스카 와일드를 알게 된 건 대학 영미문학 수업 때였다.
영국 문학을 다루면서 자연스레 다뤄진 아일랜드 출신 작가들.
제임스 조이스와 오스카 와일드의 글을 접하면서 나도 모르게
아일랜드 더블린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됐다.
오스카 와일드는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이지만 영국 문단에서 주로 활동했기에
영국 작가의 범주로 분류된다.
문학적 재능을 넘는 화려한 외모와 언변도 인해 와일드는 늘 주목받는 인생을 살았다.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유미주의”에 탐닉한 그는 깃털 장식의 모자를 쓰고,
멋들어진 스타킹을 신고, 아름다운 실크 정장을 입곤 했다.
“허세”와 “탐욕”이 있었던 그의 모습은 그의 글 곳곳 자신을 닮은 캐릭터로 녹아져 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대표작 중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란 소설이 있다.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 그 아름다움과 젊음에 반한 도리언은 초상화 속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려 한다.
소설 속 캐릭터 도리언의 소원은 이뤄진 듯했다.
현실 속의 자신은 초상화 속 젊은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름답던 초상화는 자신을 대신해 늙어가고 있었다.
영원한 현실의 젊음을 얻은 그는 타락과 방종의 삶을 산다.
그럴수록 초상화 속 자신의 모습은 점점 더 추악하게 변해만 갔다.
결국 도리언은 심장에 칼을 꽂고 그 순간 초상화 속 자신의 모습은 아름다웠던 젊은 시절로 변해간다.
“나이 든 사람의 비극은 늙었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여전히 젊다는 데 있다.
The tragedy of growing old is not that one is old but that one is young.” 와일드가 말했다.
와일드는 “행복한 왕자”를 쓴 동화 작가이기도 하다.
안데르센의 동화만큼이나 유명한 “행복한 왕자”의 저자가
오스카 와일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스카 와일드의 다른 작품 “살로메”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과는 결이 많이 다른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복한 왕자”에서도 와일드를 닮은 왕자가 등장한다.
마을 광장 높은 탑 위에 금과 보석으로 치장한 행복한 왕자.
화려한 삶을 살았던 왕자는 죽고 나서야 비로소 세상에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된다.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왕자는 제비의 도움을 받아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몸에 장식된 금과 보석, 그리고 사파이어 눈까지 떼어주게 된다.
결국 볼품 없어진 왕자의 동상은 철거되고, 제비 또한 추위 속에 죽음을 맞는다.
철거된 동상은 불길 속에 던져졌지만 심장만은 녹지 않았기에 죽은 제비와 함께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빅토리아 시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오스카 와일드는 인생의 정점에서 불행을 맛보았다.
왕자의 동상은 오스카 와일드가 꿈꾸던 그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어서라도 사랑하고 지키고 싶은 무언가.
그게 그가 갖게 된 아이였는지 사랑했던 연인이었는지 아니면 그의 현실이었는지는 모른다.
어쩜 행복한 왕자의 결말은 그가 예측하지 못한 불행한 그의 미래였을 수도 있다.
오스카와일드와 제임스 조이스를 좋아하던 내가 입사 10년 차 만에
아일랜드 더블린에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더블린에 간 나의 사적인 목적은 딱 2개였다.
오스카와일드와 제임스 조이스. 그리고 기네스 흑맥주.
더블린의 파넬 광장에 도착해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당연히 와일드의 생가였다.
메리온 스퀘어 공원 쪽 비교적 잘 보이는 그의 생가에 발을 딛고 집에 들어섰다.
와일드가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 들어가기 전 약 20년간 살았던 더블린의 생가에서
유쾌하고 독특한 그의 생전 모습과 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모델 못지않은 옷차림과 자세의 사진들, 그의 부모님의 흔적과
당시 오스카 와일드의 인기를 입증하던 자료들과 문서들.
더블린에서의 오스카 와일드의 청년기는 행복해 보였다.
3층 창문에서 내려다본 메리온 스퀘어 공원엔 그의 동상이 있었다.
평소의 그의 모습처럼 화려한 정장을 차려입은 그가 퇴폐적인 모습으로 편하게 바위 위에 누워 있다.
행복의 시간 속에 멈춰 있는 듯했다.
이처럼 모든 것이 탄탄대로일 것 같았던 오스카 와일드의 화려한 삶의 끝은 초라했다.
동성애 스캔들과 재판으로 부와 명예를 잃은 와일드는
부인과도 이혼하고 사랑하는 두 아이들마저 볼 수 없이 조국인 아일랜드에 돌아오지 못하고
쓸쓸히 프랑스 한 호텔 방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 “행복한 왕자와 다른 이야기”라는 동화를 썼던 그는
결국 자신의 아이들을 영원히 만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인생 총량의 법칙이란 말이 있다.
인생에 행복과 불행의 양은 정해져 있는데 일찌감치 불행의 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후에 행복을 겪게 되고
분에 넘치는 행복을 겪은 사람들은 추후 불행을 겪는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런 예를 주변에서 이미 많이들 봤다.
세상을 다 가진 듯 부와 명예를 지닌 사람들이 건강을 잃는가 하면
젊은 시절 인생의 정점을 찍었던 사람들이 말년에 불행해지곤 했다.
따라서 현재 불행이 나를 에워싸고 있다고 해도 그 불행의 시간이 마냥 고통스럽지만은 아닐 것이다.
현재의 불행은 미래의 행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비단 최고의 황금기와 불운의 노년기를 보낸 오스카 와일드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불행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결국은 생각의 차이가 불행을 행복으로 바꿔낼 수 있을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말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이 가는 곳마다 행복을 만들어내고,
어떤 이들은 그들이 떠날 때마다 행복을 만들어낸다.
Some cause happiness wherever they go, others whenever they go.”
인생에 불행과 행복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면
불행도 행복으로 만들어버릴 “Some”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