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곰팡이>

by 스타맨

<엄마>


아빠에게 몸에 관한 폭언을 처음 들은 이후 언젠가부터,나는 내 몸을 혐오하기 시작했다.아빠의 말을 그저 무시할 수 있었을텐데 불행히도 그러지 못했다.다람쥐같이 불룩한 볼살과,잡으면 족히 5센티는 늘어나는 뱃살,통나무같이 굵고 튼실한 허벅지가 싫었다.내가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걸 안 아빠는 욕을 하고 화를 냈다

"아주 아주 지랄났네.지랄났어.저게 먹여주고 재워주니까 배가 불렀지 미친년" 반면, 엄마는 "밥을 먹어야지" "너 그러다 쓰러진다"같은 판에 박힌 잔소리를 했을 뿐,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눈치였다.


엄마는 아빠와의 관계에서뿐 아니라 나에 관해서도 늘 시큰둥했다.그저 집안을 온종일 왔다갔다하며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때론 깊은 한숨을 짓는, ‘조용한 불행’이란 미션을 수행하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내가 중 2때, 근근이 이어가던 아빠의 사업이 망해 집안에 딱지가 붙기 시작하면서 엄마는 더 이상 심드렁한 일상을 보낼 수 없었다.오래된 주택에서 시 외곽의 맨 끝줄에 자리잡은 방 한 칸의 반지하 월세로 쫒기듯 이사한 후 상심한 아빠는 아예 술잔을 끼고 집에 들어앉았고 당장의 생계를 위해 보다못한 엄마가 돈을 벌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나는 우리집에서 일어난 일들,익숙한 클리쉐로 점철된 철 지난 아침드라마같은 이 상황을, 그저 묵묵히 자기역할을 하는 비중없는 등장인물처럼 견뎌낼 수 밖에 없었다.엄마는 늘 늦은밤 지친얼굴로 들어왔고,나는 엄마에게 더 이상 ‘더 먹지 그래’라는 잔소리를 듣지 못하자,더욱 열심히 몸을 통제했다. 1킬로그램 증가,700그램 감소,300칼로리 소비등 매일 조바심치며 단타에 올인하는 주식쟁이처럼,변화무쌍한 ‘자기 학대 지수’에 울고 웃었다.하지만 멈출수는 없었다.매일 몰아치는 차고 스산한 공기에 얼굴을 할퀸채 절벽을 향해 내달렸다.


그 무렵 ‘개말라’까진 아니지만 ‘말라보이는 아이’가 된 나는 어느 날 뜬금없이 집에 찾아 온, 젊을 때부터 얼굴에 잔주름이 잔뜩 껴있던 체구가 작은 막내고모가 "살이 많이 빠졌네"란 말을 했을 때 격렬한 성취감을 느꼈고,"살 빠지니까 좀 사람같구만"이라는 아빠의 말에,부정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그렇게 내 몸의 지방이 빠져나가는 사이,마음은 점점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학교에선 ‘적당히 밝은 아이’로 지냈고 친구가 아주 없진 않았지만 너무 가까이 지내는 것은 경계했다.급식실에서 음식을 받을 때마다 숨막힐 것 같은 불안감에 옴싹달싹 못했던 나는 ‘도저히 입에 당기지가 않아서’ 최소한의 음식만 덜어 먹었는데,어느날은 내 옆에 섰던 아이가 자신의 흘러 넘치는 식판을 턱끝으로 가리키며, “나 정말 돼지같지 않니?크크”하는 소리가 트리거가 돼 도저히 음식을 씹을 수가 없었다.게다가 나보다 적게 먹는 아이가 있으면 미칠듯한 비교의식에 온몸이 교살 당하는 느낌이었다.사실 짝꿍 Y는 눈치채고 있는지도 몰랐다."너 일부러 안먹는거야?"Y가 물었을 때,나는 순간 "아니."라고 얼버무렸지만,심장이 덜컹,하며 속이 울렁거렸다.


먹지 않으니 에너지가 늘 부족했고 학교를 오가는 일과 몸을 ‘관리’하는 것 외에 나머지는 내 삶에서 모두 빼버려야 할 잉여,군살,군더더기로 여겼다.엄마는 말라가는 날 보면서도 별 말이 없었고 술에 취해 불콰한 얼굴로 고장난 라디오처럼 똑같은 신세한탄을 해대는 아빠한테 그 흔한 악다구니 한 번 하지 않았다.엄마의 성실로 아빠는 더욱 안정적 술꾼이 되어갔다.아빠 때문에 엄마로부터 받아야할 내 몫의 관심이 줄을대로 줄어버린 느낌이었고,그것은 아빠를 더 격렬하게 미워할 이유가 되었다.그러는 사이 자꾸 아팠던 엄마는 눈에 띠게 말라갔다.엄마가 돈을 벌기 위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아마도 경력없는 아줌마들이 쉽게 도전할 수 있는,그렇지만 몸을 갈아넣어 해야하는 일들이 아니었을까 지금에서야 추측만 할 뿐.엄마 몸의 세포들은 그 때부터 서서히 ‘변이’되었는지 모르겠다.나는 그저 나날이 말라가는 엄마를 보며 부러워 했는데,그 때의 감정을 지금도 후회한다.


<곰팡이>


그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꼭 먹고 싶은 걸 사서 들키지 않도록 책상 서랍에 넣어두곤 꺼내보곤했던게.남이 게걸스럽게 먹는걸 지켜보는건 구경에 지나지않았지만 스스로 맛을 상상하고 그 상상을 음미하는건 ‘창의적인 행위’였고,그래서 훨씬 만족감을 줬다.


어느 날엔간 유투브에서 빵지순례하는 걸 보곤 학교 앞 빵집에서 ‘크루아상’을 샀었다.이름마저 달큰하고 귀족적인 ‘크루아상’.그 소중한 크루아상을 서랍에 ‘전시’해두었었는데 그만 한쪽에 곰팡이가 피고 말았다.그 때, 크루아상에 들러붙은 곰팡이를 조금씩 떼어내다 깨달았다.눅눅한 반지하 방에 눌러앉은,칙칙한 낯빛의 아빠가 긁어내고 뜯어내도 잘 없어지지 않는,그 곰팡이와 꼭 닮은 것을 .나는 가차없이 크루아상을 쓰레기통에 처넣었다.그 후로 한번도 크루아상을 사거나 먹지 않았다.

불어터진 엉덩이마냥 뚱뚱한 버터덩어리,극.혐.


하지만,중딩 여자애의 기이한 ‘길티 플레저’는 지금은 서랍이 아닌 침대 밑 박스로 장소를 옮겨,더 은밀하고 풍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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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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