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9시엔 집을 나섰다.
타인의 얼굴을 굳이 애쓰지 않고는 알아보기 쉽지 않은 시간.검은 야구모자에 위 아래 검정 트레이닝복을 그림자처럼 맞춰입고,딱 60분의 산책을 수행했다.
나는 다닥다닥 숨막히게 붙어있는 빌라들 중에서도 여기저기 벽에 실금이 간 상태로 보아 아마도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우정’ 빌라 2층 201호에 살고있었는데 빌라 현관을 나서서 약간 경사진 내리막길을 보통의 걸음으로 십여분 걸으면 신호등 없는 짧은 횡단보도가 나오고,횡단보도 건너편엔 나즈막한 상가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그 상가 건물들 중 단연 눈에 띠는 건,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맞닦뜨리는 2층짜리 통유리 건물 ‘맥도날드’였다.그 옆에 한결 낮은 자세로 겸손히 늘어선 ‘미래’ 부동산과 ‘행운’ 부동산,그리고 ‘평강의 교회’와는 결이 다른,여기가 아주 후미진 동네는 아니라는 상징같은 가게.이름모를 외계에서 불시착한 듯 왠지 필요이상 크고 생뚱맞아보이는 그 공간은 낮이 계속되는 밤처럼 24시간 밝은 빛을 쏘아대고 있었다.
집을 나와 혼자 살면서부터는 더더욱 모르는 사람과 마주치는 일이 극도로 힘들어진 나는 매일 그 창백한 공간과 마주하는게 싫었지만 그렇다고 맥도날드를 지나 15분만 더 걸으면 나오는 나의 최애공간인 작은 공원 산책길을 포기할 순 없었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 습하고 비가 잦았다.막 소나기를 쏟아낼 것 같던 잿빛 하늘을 창밖으로 몇 번이고 내다봤던 어느 날이었다.맥도날드에 앉아있는 덩치 큰 그 남자를 처음 본 건.가게 통유리 앞에는 긴 바 테이블이 놓여있고 주로 혼자 온 손님들이 밖을 마주보는 구조라 손님들과 눈이 마주치는게 싫어서 모자를 푹 눌러쓰곤 했는데,그 날따라 바에 앉은 그 남자와 눈이 딱 마주쳤다.남잔 내 또래처럼 보였는데 짙은 네이비색 헐렁한 티셔츠에 연한 청바지 차림이었다.
조명때문인지 약간 낮게 그림자가 드리운듯한 통유리 너머 심드렁한 표정의 알바생과 커플로 보이는 20대들이 콜라를 빨며 키득거리고 있는 시덥잖은 공간 속에서 멀뚱히 밖을 내다 보던 그 남자는, 커다란 입속으로 기름진 햄버거를 막 쑤셔넣는 참이었다.나는 양 옆으로 툭 불거진 각진 턱을 열심히 움직이며,게걸스럽게 햄버거를 먹는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갑작스럽게 묘한 경멸감을 느꼈다.예전에 보기싫어서 치워버린 거울을 다시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달까.더욱 신경이 거슬린 건 그 남자가 햄버거를 우걱거리는 중에도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나는 티 안나게 그 남잘 흘겨보고 얼른 시선을 떨궈 야구모자를 한번 더 깊이 눌러쓴채 그 자리를 도망치듯 지나쳤다.
공원쪽으로 뛰다시피하던 그 순간,늘 그렇듯 돌발통같은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즈음,자식에 관한 어떤 것에도 무관심하던 아빠가 열심히 밥알을 씹고 있는 나를 빤히 들여다보더니 소주잔을 들이키며 말했다.
“너는 꼭 돼.지.새.끼.같냐. ”
그 순간 나는 낯설고도 강렬한 욕구를 느꼈다.무언가를 먹다 토할 것 같은 욕구.
그래서 밥알을 우물우물 씹다가 몰래 휴지에 뱉어버렸다.내 거울은 그 때 깨져버렸다.그날 이후 난 거울 대신 저울을 품었다.
집 앞에 도착할 즈음 후두둑,더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책상에 앉아 생수를 조금 마신 뒤 책상 위에 나 있는 비좁은 숨구멍같은 창밖으로 뿌옇게 흩어지는 빗줄기를 오랫동안 내다보았다.방 안에서 비를 바라보는게 좋았다.흩날리든 삐딱하든 들이치든,비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내리니까.어느새 힘이 빠져버린 빗줄기를 바라보며 비가 더 세차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누군가의 화창한 마음도 꿉꿉해져 버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