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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럭키젤리 Nov 18. 2024

21. 인류가 멸망해도 우주에서 옷 무덤은 보일거야

나의 봉사활동 이야기

얼마 전 브런치 '틈'이라는 코너에 봉사활동에 대한 짧은 단상을 적어보았던 글이 소개되었다. 나름 다음 모바일 메인에, 그 것도 아주 잘 보이는 위치에 자리해서, 소위 '조회수 떡상'을 기대해보았는데 생각만큼 반응이 뜨겁지는 않았다. 물론 나의 글재주가 부족해 많은 분들을 설득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봉사활동'이라는 주제가 여전히 한국의 젊은 사람들에게 크게 흥미로운 주제가 아니라 클릭을 유도하지 못한 것만 같았다. 그래서 오늘은 그간 3개월동안의 나의 봉사활동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풀어볼까 한다. 이번에는 조금 더 재미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내가 일하는 곳은 한 교회에서 운영하는 '기부 물품 상점'이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아름다운 가게'와 운영방식 마저도 아주 흡사하다. 시민들로부터 안 쓰는, 하지만 충분히 재사용할 가치가 있는 물품을 기부 받고, 이 물건들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판매를 한다. 손님들, 특히 저소득층 손님들은 좋은 물건을 부담 없는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고, 자원의 재사용을 통해 환경 보호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참 의미있는 상점이다. 또한, 수익금 일부를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를 하니, 여러모로 일석삼조가 아닐 수 없다. 


우리 가게에서 주로 판매하는 품목의 80% 이상은 옷이며, 나머지는 생활 잡화 및 주방용품(그릇 포함)들이다. 가구는 취급하지 않는데, 매장에 진열할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부 받은 물건들은 기부 받을 때 1차적으로 걸러진다. 겨울에는 겨울 옷만, 즉 시즌에 맞는 옷만 기부할 수 있으며, 너무 상태가 좋지 않은 것들은 다시 돌려보낸다. 그렇게 기부 받은 옷들은 자원봉사자들이 꼼꼼히 검수해, 판매 상태가 양호한 것들만 실시간으로 매장에 진열이 된다. 판매하기에는 오염 등의 하자가 있지만, 그래도 아직 입을만한 옷들은 따로 모아 노숙자들에게 기부가 된다. 그리고 판매하기도, 기부하기도 너무 낡고 오염된 옷들은 '파란 봉투'에 버리면, '누군가' 와서 수거해 간다. 


물건을 기부 받고, 분류하고, 매장에 진열하는 일은 동시다발적으로 빠르게 진행되는데, 자원봉사의 인력 없이 이렇게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까 싶다. 물건들도 꽤나 괜찮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운영되고 있는 가게라 그런지, 기부자들도 단골도 많은 편이다. 옷은 진열되자마자 거의 동시에 팔리는 경우가 많다. 어떨 때는 옷을 들고 가는 나를 붙잡고 그 옷을 사겠다고 하는 손님도 있었다. 그래서 '갓 들어온' 좋은 상품을 먼저 쟁취(?)하려는 손님들로 인해 늘 오픈런을 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그 어떤 명품샵도, 맛집도 아닌 기부 물품 상점에서의 오픈런이라니 참 이색적인 광경이다. 


늘 손님이 많다보니, 나는 슬슬 하루 매출이 궁금해졌다. (역시 나는 돈이 제일 중요한가보다.) 솔직히 정말 저렴한 가격이다보니, 이렇게 많이 팔아도 남는게 있나 싶기 때문이었다. (여성복 기준으로 블라우스 2유로, 치마 4유로가 기본 가격이다. 물론 브랜드 상품 등은 좀 더 가격이 높긴하다.) 그리고 얼마 전, 하반기 자원봉사자 전체 총회를 다녀왔고, 그 곳에서 연 매출과 비용 등 전반적인 재무상황을 알 수 있었다. 우리 가게는 1년에 대략 100,000유로를 벌었다. 동네에 있는 작은 가게인 것을 생각하면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십만 유로 중에서 우리가 기부할 수 있는 금액은 고작 10,000유로였다. 매출의 10% 정도만 기부 할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생각보다 적은 기부 금액에 조금 놀랐다. 물론 천만원의 돈도 절대로 적은 액수는 아니다. 하지만 몇천만원부터 몇억씩 기부하는 유명인들의 미담을 많이 봐온터인지라, 만유로의 금액은 너무나도 작고 소중해보였다. 도대체 비영리단체에서 돈 나갈 일이 뭐가 있길래 매출에 10% 밖에 기부를 못하는 것일까. 


우선 가장 많은 비용을 차지한 것은 인건비였다. 우리 가게의 인력은 모두 자원봉사자이지만, 2명의 상주 직원이 있다. 이 상주 직원들은 급여를 받는 정식 직원으로, 가게의 전반적인 행정/사무 업무와 자원봉사자 관리 등 실질적인 가게 운영을 책임지는 꼭 필요한 사람이다. 2명을 고용하는데에 매출의 40%가 지불되니, 새삼 자원봉사 인력들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또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 다음 항목은 놀랍게도 세금이었다. 매출의 22%를 세금으로 납부하고 있었다. 세율이 너무 높아 찾아보니, 한국의 비영리단체 세율은 고작 9% (매출 2억이하 기준)이었다. 정식 직원들이 받은 급여에서도 세금을 만만치 않게 떼어갈텐데, 도대체 비영리단체에게서도 이렇게 높은 세금을 걷어간다니... 역시 독일은 세금의 나라다. 


가게 월세(18%), 기타 수선비(10%) 등을 제하고 나니 기부할 수 있는 돈은 정말 순수하게 10%가 남았다. 그리고 이 돈을 어디에 기부할지는 자원봉사자들의 선택에 달렸다. 이 작은 도시 내에서도 도움이 필요한 곳은 정말 많았다. 여성쉼터(Frauenhaus), 난민 청소년 교육시설, 이주 여성 교육시설, 노숙자 시설, 한부모 가정 지원 등등... 어느 하나 독일 사회에서 중요하지 않은 곳은 없어보였다. 모든 자원봉사자가 3표씩을 행사할 수 있었고, 여성쉼터가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나 또한 여성쉼터에 한 표를 행사했는데, 예전에 즐겨보았었던, 독일에 살았던 어느 한국인 유튜버가 힘들었던 시절 여성쉼터에 머물며 작은 안식을 얻었던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다른 2곳에도 투표하였지만, 나는 가장 많은 표를 받은 한 곳에 모든 금액을 기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가뜩이나 작고 소중한 금액을 굳이 쪼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독일인 자원봉사자들은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여성쉼터에 6천 유로를, 차순위 4곳에 천 유로씩을 기부하여 여러 곳에 도움이 되기를 원했고, 그렇게 최종 결정되었다. 기부처가 결정되고 나니, 내 마음에는 무언가 뿌듯함과 벅참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일주일에 3시간, 그냥 나는 옷을 분류하고, 매장에 진열하는 아주 단순하고도 단순한 노동을 했을 뿐인데, 필요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 독일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아주 작지만 소중한 성취감을 맛보았다. 


총회의 막바지, 한 남성이 회의실을 방문하였다. 그는 재판매할 수 없는 기부물품을 '파란 봉투'에 담아두면, 수거해가는 '그 누군가'였다. 나는 일하면서도 내심 버려지는 옷들이 신경쓰였기 때문에, 그가 하는 일이 궁금했다. 기부 받은 물건 중 어림잡아 1/3 이상은 재판매 되지 못하고 버려졌다. 하루에도 몇 자루씩 파란 봉투가 나왔다. 그 옷들의 행방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리고 조금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는 파란봉투를 다른 도시에 있는 '의류 재활용 업체'로 운반해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가 버린 옷들을 그 업체로 가져가면 1kg 당 20센트를 받는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자원봉사자들 모두 운반비용(유류비, 인건비)이 만만치 않을텐데 1kg 당 20센트로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지를 의아해할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우리 가게 말고 다른 가게에서도 물건을 수거하기도 하며, "워낙 양이 많기 때문에" 1kg 당 20센트로도 유지가 된다고 했다. 도대체 얼마나 버려지는 옷이 많으면 1kg당 20센트를 받아도 그 높은 비용들이 다 충당되고서 이윤까지 남는 것일까. 


그 '의류 재활용 업체'의 정체도 궁금했다. 그 업체는 kg 으로 구매한 옷들을 폴란드로 보낸다.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폴란드에서 옷들은 재분류되고, 동유럽 중고 시장으로 보내진다. 그리고 거기서도 상품성이 없는 옷들은 아프리카 케냐로 보내진다. 아무래도 케냐로 보내진 옷들은 거르고 걸러져서 상태가 제일 안좋은 옷들만 남게 되지 않았을까? 자, 그렇다면 거기서도 재판매되기 어려워 버려지는 옷들은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일까. 그 순간 어느 기사에서 본, 어느 다큐에서 본 옷 쓰레기 더미가 떠올랐다. 이제는 우주에서도 보인다는 거대한 옷 무덤. 


시내의 H&M 에는 늘 사람이 붐빈다.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가격에 트렌디한 옷을 구매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이다. 나 또한 20대 때 SPA 브랜드를 애용하였던 시절이 있었고, 외형을 꾸미는 것 또한 내면을 가꾸는 것만큼 중요한 마음을 이해한다. 그래서 마냥 SPA 브랜드를 욕하고 싶지만은 않다. 다만, 우리 가게에 기부되는 옷들 중 대부분은 Zara나 H&M 의 옷들이란 사실은 부인할 수가 없다. 그리고 버려지는 옷의 대부분도 SPA 브랜드의 옷들이다. 좋은 옷은 기부자도 관리를 잘해 입어서, 상태가 좋고, 상태가 좋기 때문에 금방 재판매가 된다. 하지만 SPA의 옷들은 기부자도 조금은 버리는 마음으로 기부를 하고, 원래 원단도 좋지 않기 때문에 그런지 상태가 크게 좋지 않다. 그래서 결국 쉽게 버려지고, 재판매가 잘 되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그 옷들은 이 곳 저 곳 돌고 돌아 저 멀리 개발도상국에 최종 정착하게 된다. 독일에서 친환경과 기부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뿌듯함을 느끼고 있는 사이, 다른 한 편에서는 소위 말한 선진국들이 버린 쓰레기를 떠안고 있다. 나는 봉사활동의 보람을 느꼈던 찰나와 동시에 무덤만큼이나 거대한 부채감을 느끼게 되었다. 독일이나 한국이나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묵직해졌다. 


그래서 다시 다짐을 하게 된다. 옷을 불필요하게 사지 않겠다고 말이다. 다행히 이 다짐은 아직까지는 잘 지켜지고 있다. 독일에 온 지 1년 동안, 보온을 위해 안에 껴입을 긴팔 얇은 티 하나를 구매한 것 이외에는 아무 옷도 사지 않았다. 우리 가게에서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매주 7유로의 바우처가 제공는 혜택이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바우처를 사용해본 적이 없다. 마음에 드는 것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 있는 옷들도 다 입지도 못하고 있는데 굳이 사야하나 싶었다. 오히려 내가 살 바에야, 더 필요한 사람이 '득템'하는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옷을 사지 않겠다는 다짐은 내가 독일에 있기 때문에 잘 지켜질 수 있는 것 같다. 굳이 멋부리지 않아도 되고, 한 옷을 오래오래 입어도 아무도 관심 없다. 집에 있는 시간이 더 길고, 직장에 다니지 않아서 옷차림에 신경쓸 일도 없다. 이 다짐은 한국에 다시 돌아가게 되었을 때도 계속 지킬 수 있을까.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럴 때면 인류가 멸망해도 우주에서도 보일 거대한 옷 무덤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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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독일 뒤셀도르프의 한 플리마켓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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