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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럭키젤리 Nov 11. 2024

20. 한국어가 어설퍼도 웃지 말아주세요

이제 어언 20년이란 시간이 흘러버렸어도 가끔 처음 독일어를 배웠던 날이 기억이 나곤 한다. 외고에 합격했다는 기쁨도 잠시, 주위에서는 공부 잘 하는 친구들이 가는 영어과,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중국어과를 가지 못하고 독일어과에 진학하게 된 것을 내심 안타까워했었다. 장래가 유망한 영어, 중국어에 비해 독일어는 소위 "쓸데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이후로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요즘도 한국인들에게 독일어는 여전히 쓸모없는 언어로 여겨지고 있는 것 같다. 독일에 온 이후 열심히 독일어 공부에 시간과 정성을 쏟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남편은 항상 그 열정으로 영어를 공부하는게 훨씬 더 이득인데, 왜 독일어를 공부하며 시간을 '낭비'하냐며 잔소리를 하기 때문이다. 


처음 독일어를 배우던 날, 나는 독일어가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믿었다. 남이 안하는 길을 가다보면, 나에게 더 특별한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며, 독일어 무용론자들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 때만해도 독일은 의심할 것 없는 경제 강국이었기 때문에, 배워두면 꼭 쓸모 있을 것이라는 순수한 학생의 마음이었다. 스무살, 배낭여행으로 처음 독일땅을 밟았을 때, 나는 왜 독일어 공부가 굳이 쓸모 없는지 바로 알게 되었다. 독일 사람들은 웬만해서 다들 영어를 잘했기 때문에, 굳이 독일어를 알지 못해도 의사소통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더이상 독일어를 공부하지도 않았고, 사용할 기회도 없었다. 졸업하고, 취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는데 한 번도 독일어가 필요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내 독일어 지식은 어느 정도 문법과 단어는 알고 있지만, 자기소개 이상의 회화를 하기 어려운 수준에서 아주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마음 속으로는 늘 아쉬웠다. 영어만큼이나 독일어도 비즈니스 회화 수준 정도로 끌어올리고 싶었다. 하지만 퇴근 후, 영어 공부도 겨우하기 벅찬 상황에서 독일어를 공부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독일에 온 후, 나는 독일어 공부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 같아보였다. 솔직히 영어공부는 나중에라도 할 기회가 많지 않은가. 


한국에서도 쓸모 없는 독일어가 막상 독일에서도 딱히 쓸데가 없었다. 여기서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많은 독일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니라서, 배운 독일어로 말할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마트에서 '카드로 결제할게요! (Mit Karte, bitte!)'를 제일 많이 사용했다. 어짜피 나는 이 곳에서 3년만 살다가 떠날 이방인이었다. 남편 말 대로 영어를 공부하는게 현실적으로는 더 맞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독일어가 계속 배우고 싶었고, 잘 말하고 싶었다.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왜 독일어를 계속 배우고, 잘 하고 싶은지... 단순히 스펙 쌓기를 위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이유가 없었다. 그냥 독일어 그 자체가, 그 어려운 문법 자체가 내게는 그냥 축구, 뜨개질 등등과 같은 누군가의 취미처럼 그냥 재미있어서 하는, 나의 취미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독일어 문법은 소위 말해 아주 그지같다. 문장이나 단어도 상당히 길고, 문장구조도 복잡하고, 이래저래 예외가 많아서 암기해야하는 것들도 많다. 그 중 내가 회화할 때 제일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문장구조이다. 한국어는 주어가 처음에 오고, 동사가 맨 나중에 온다. 영어는 주어가 처음에 오고, 그 다음 동사가 온다. 독일어는 - 아주 불친절하게도 - 주어 다음에 동사가 올 때가 있고, 동사가 문장 맨 나중에 갈 때가 있다.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다르다. 그 경우를 늘 조합해야하는데, 그게 참 잘 안된다. 한국어는 모국어라 당연하고, 영어는 조기교육 덕분에 익숙하다. 하지만 독일어는 자연스럽게 문장 구조가 머리와 입에 새겨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늘 한 마디 할 때마다 내 뇌는 아주 열심히 굴러간다. 그리고 희안하게도 이 헷갈려서 짜증나는 문장구조를 짜맞추는게 참 재미가 있다. 마치 5000개의 퍼즐을 맞추듯, 스도쿠를 풀 듯 말이다. 


그렇게 늘 머리를 굴리는데도, 항상 문법에 맞춰 정확하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다행히 여태까지 독일인들 대부분 내가 '나. 먹었어. 밥을' 이라고 말을 해도, 다들 찰떡 같이 알아들었다. 당연히 쿠사리를 주거나, 비웃는 사람도 없었다. 발음도 마찬가지다. 내게 독일어에서 가장 어렵다고 느껴지는 발음은 R 발음이다. 혀를 떨면서, 목청을 끓는 발음인데, 한국어엔 없는 발음이다. 연습할 때는 잘 되다가도 막상 실전회화 중에서는 발음을 완벽하게 구사하기가 어렵다. 나도 모르게 L이나 ㄹ에 가깝게 발음을 해버리면, 알아듣는 독일인들이 꽤나 많은데때면 그들은 다시 말해줄 있냐고 역시나 정중하게 물어봐주었다. 그리고 늘 잘한다는 칭찬도 아끼지를 않았다. 다만, 그렇게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독일인들은 나를 "신기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독일에 왔으면 독일어를 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누가 봐도 작은 체구의 검은머리 여성에게 -독일어를 당연히 모를 것 같이 생긴 사람에게- 당연하게 독일어로 말을 걸었다. 난 한국에선 파란머리 백인을 보면 무조건 먼저 영어로 말을 걸었는데 말이다. 


최근 10년 사이에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국인들이 이래저래 많아졌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그들을 "신기해한다"는 것을 느낀다. 조차도, 한민족과 외관이 다른 조나단이 귀여운 입담으로 구수한 방언과 은어들을 구사하는 것을 보았을 때, 처음에는 신기했다. 신기함에는 외국인은 한국어를 일이 없다는 생각에서부터 출발했다. 마치 내가 길거리의 외국인에게 영어로 먼저 말을 걸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또, 조나단처럼 외양은 '한민족'과 다르지만, 성장과정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보낸, 그래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사회에 점점 많아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한국인의 범위에 대해선 좁게 인식하고 있기도 했다. 파란 눈의 서양인들이 유창한 한국어로 시사, 경제와 같은 어려운 분야를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모습에는 신기함을 넘어서서 국뽕을 느끼기도 했다. 한국어를 '배울 필요 없는' 사람이 한국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하다니,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었구나, 그래서 서양인들도 우리 문화에 관심이 많아졌구나라는 다소 사대주의적인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들의 유창한 한국어에 대한 칭찬 속에는 묘한 감정의 신기한 감정이 늘 섞여 있었다. 


유창한 사람에 대한 칭찬은 아주 후한 반면,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서툰 한국어를 구사하거나, 유창하지 않을 때면 쉽게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린다. '사장님, 나빠요' 하는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가 나오는 개그의 본질은 착취하는 불편한 기업문화에 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의 어눌한 한국어에 크게 웃었던 기억들만 회자되었다. 올바른 기업문화를 위해 아이돌 멤버가 국정감사에 서는 일도 있었다. 그 이후 그녀가 호소한 내용의 본질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내 기준에서 충분히 유창하다고 생각되는) 그녀의 한국어 발음만 개그프로에서 패러디 되기 바빴다. 외신기자가 정성스럽게 한국어로 준비해온 질문을 못 알아들었다며 - 다시 한 번 정중하게 요청하는 대신 - 그를 아주 무안하게 만드는 사람이 한국이란 국가를 대표한다.


나는 독일에 왔으면 당연히 독일어를 구사해야한다는 독일사람의 태도가 그리 무례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잠깐의 여행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의 장기체류, 취업, 이민 등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남편이 남미로 발령 받았다면, 난 영어를 공부하라는 남편의 반대에도 무릎쓰고 스페인어를 배웠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 온 외국인들도 한국어를 배우려는 최소한의 노력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하는 일은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다. 원어민처럼은 고사하고, 간단한 회화를 실생활에서 시도하는 일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배우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사람은 뭐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한국어를 조금이라도 배우는 단계에 있는 사람에게는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아야하고, 혹여 못 알아들었어도 정중하게 재질문하거나 교정해주는 자세는 기본이지 않을까.


독일인들도 내가 '나.먹었어.밥을' 이라고 말했을 때, 속으로는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누구도 겉으로 그런 내색을 한 사람은 없었다. 되려 한참 부족한 내 독일어를 참 잘한다고 격려해주거나, 틀린 문법이나 발음은 기분 나쁘지 않게 교정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더 용기내어 독일어로 말할 수 있었고, 덕분에 실력이 1년 전에 비해 정말 많이 향상되었다. 하지만 가끔 생각해본다. 용기내어 겨우 독일어로 말을 건넸는데, 상대방이 못 알아들었다며 언짢은 표정을 짓는다면, 내 R발음이 우습다고 비웃는다면, 이 그지같은 문법의 독일어를 계속 배웠을까. 아닐 것 같다. 오히려 그러한 태도를 보이는 독일인들에게 인종차별자가 아니냐며 분개했을 확률이 높다. 


내 이름은 조금 독특해서 한국인들도 처음 들었을 때, 한 번에 인지하지 못하고 두세번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어렸을 때는 이게 너무 싫어서 개명하고 싶기도 했다. 나에게는 이름이 애증의 컴플렉스와도 같았다. 심지어 외국인에게도 어려운 발음이라, 외국에 나갈 일이 있으면 무조건 영어식 이름을 먼저 사용하곤 했었다. 하지만 몇몇 외국 친구들은 관계가 깊어질수록 내 가명(?) 대신 진짜 이름으로 불러주고 싶어했다. 그게 더 진실된 관계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는 애매한 영어이름 대신 늘 진짜 이름을 사용하고, 독일에서도 그러고 있다. 독일어로는 더더욱 발음하기 어려운 내 이름을 독일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발음해본다. 전혀 한국어 같지 않은, 우스꽝스러운 발음이 나올 때도 있지만, 난 웃지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 불리워도 상관이 없었다. 대충 내 이름처럼만 들리면 된다. 내 이름 컴플렉스는 조금 너그러워졌다. 그냥 그들이 가장 한국적인 내 이름을 최대한 잘 불러보려는 노력만으로도 나는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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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완연한 가을날, 독일의 한 수도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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